내가 책육아에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

천장에 닿을 만큼 쌓았던 언어영역 문제집들의 결과

by 에스더

어려서부터 난 만화책도 읽어본 적이 없이

책과 담을 쌓은 아이였다.


의류 공장을 운영하시는 아버지와

남대문에서 새벽 장사를 하시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느라

학교 끝나면 텅 비어있는 집으로 돌아와 혼자 TV를 보거나

동네 친구들과 놀며 초등 학창 시절을 보냈다.


4학년이 되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내 가방에서 흘러나온

0점 맞은 영어 시험지를 보시고

아파트 부동산 실장님께 부탁하여

성신여대 학생을 섭외하여 과외 선생님으로 붙여 주셨다.


그 과외 선생님과의 만남은

나의 공부 인생을 바꿔 놓았다.

여대생의 소지품, 분위기, 향기, 말투 모두가

4학년 짜리 어린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고,

선생님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잘 보이고 싶어서 열심히 숙제하고,

일주일에 2번 그분과 마주하고 있는 시간이

늘 설레고 행복했다.


단어를 외우고, 시험 보고,

디즈니 영어책을 읽고 해석하는 수업을

3개월째 하던 어느 날,

교내에서 치러진 영어 경시 대회에서 만점을 맞았다.

얼떨결에 영어 빵점자가

단상에 올라가 상장 수여식을 받는

학년 대표가 되어 영예을 경험했다.


이때부터 얻는 자신감으로

영어뿐만 아니라 다른 과목의 공부들도

내가 선생님께 배운 방식으로

공부를 해나가기 시작하였다.


외우고, 문제집 풀어보고를 반복하며

틀린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시 외우고...


공부가 만만해졌고, 할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난 공부를 좀 잘하는 아이라는 정체성을 스스로 만들었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었고,

중학교 공부는 생각보다 버거웠다.

갑자기 많아진 과목수와

많은 양의 글밥이 깔려있는 교과서와

한자 어휘들로 도배되어 있는

역사, 국어, 과학, 사회 교과서의 글들은

한번 읽어도 영 머리 속에서 정리되지 않고

연결고리 없이 떠돌아다니기만 했다.


이해와 정리 자체가 어려웠던 중학시절의 공부는

시험 범위 안의 내용을 무작정 외워서

겨우 중위권과 중상위권을 왔다 갔다를 했다.

공부라는 게 다시 낯설고,

만만하지 않구나로 돌아갔다.


그리고, 고등학교 수능.

영어, 수학, 사회, 과학은 그래도 2등급 안에 들어왔지만, 언어영역은 나의 발목을 잡았다.

고2 때 봤던 전국 모의고사의 등급과 동일한 등급이 나왔고, 국어 등급을 올리기 위해

3년을 통틀어 가장 많은 문제집을 풀었지만

점수는 조금의 개선도 없었던 것이다.


2002년 수능,

시험이 끝나고 허탈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와

내 책상 주변에 수북이 쌓여 있던 문제들을 바라보았다.

새삼 무슨 문제집을 저렇게 많이 풀었나 싶을 정도로 너무 많은 문제집들이 내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문제집들을 쌓으면

천장에 닿을까 싶어 쌓아 봤다.

꺼내도 꺼내도 계속 쏟아져 나오는 국어 문제집들.

결국 천장에 닿기 몇 센티를 남겨놓고 다 쌓았다.


정말,

천장에 닿을 만큼의 문제집들을 풀었던 것이다.


허탈했다.

도대체 무슨 공부를 했던 것인가.

헛공부를 했다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난 결국

언어영역을 보지 않는

서울 중위권 대학의 경제학부에

대기 4번으로 간신히 대학에 들어갔다.


나름 외우고, 문제 푸는 방식으로

지독스러운 성실성을 발휘하여

학교의 내신은 전교 10등 안에 항상 들었던 나에게

서울 중위권 대학은 내내 아쉬운 결과였다.


언어 영역 문제집이 천장까지 닿을 만큼 쌓였는데

정작 내 점수는 거기까지 닿지 않았다.


그때 느꼈다.

문제집이 아니라 책이었다는 걸.

그 열두 배만큼의 문장과 삶을,

열두 해에 걸쳐 읽어야 했다는 걸.


내가 감히 12년, 아니 아기 때부터 매일같이

글자와 이야기 속에 파묻혀 살았던 아이들의 문해력을 단순 몇 권의 문제집으로 메꿔보려고 했구나.


그들이 3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밤세워 읽어서 만든 촘촘한 문해력을 한페이지에 나와있는 쪼가리 지문을 읽고 답을 찾는 기술로 비벼보려 했으니 게임이 안되는 경쟁이었다.


그들의 수년에 걸친 ‘세월'은

1-2년이라는 '시간'으로 채울 수 없는 것였다.

(국어 성적은 전재산을 줘도 극복 못 하는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보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대학 리포트, 입사 자기소개서, 각종 에세이 등등

개념을 정리하고 생각을 도출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 시절 책을 읽지 않은 공백에 대한 결핍은 늘 나를 따라다녔다.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보낸

생존 독서 10년의 세월을 거치니

이제 좀 글을 읽고 쓸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지식 보다 더 큰 인생의 가치를

책을 통해 깨닫고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엄마인 내가

아이게 물려주고 싶은 시간과 유산은

이것 하나뿐이다. 책을 읽게 하는 것.


적어도 초등 시절,

아직 엄마의 품을 떠나지 않은 이 아이들에게

많은 이야기 책을 들려주고,

작은 두 손에 책만을 쥐어주고 싶을 뿐이다.


배경 지식을 쌓는 학습이 아닌,

이야기를 통해 지혜와 통찰력을 배우게 하고싶다.


오늘도 책 냄새를 맡으러 갑니다.

아이와 동네 도서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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