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헤매는 중이지만,
나의 육아 중심에는 늘 책이 있다.
내가 만든 책 육아라는 환경 속에서
아이와 10년을 살았다.
첫째가 2살이 되던 해,
어머니께 아이를 맡기고
벌 수 있을 때까지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맞벌이의 일상을 살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대학교 때 친했던 언니집에 놀러 가게 되었다.
그 언니로 말할 것 같으면
과 상위권에, 뛰어난 사교성과 유머감각으로
교수, 선후배, 친구 할 것 없이
교내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극 외형형의 사람이었다.
물론
졸업과 동시에 높은 연봉을 주는
금융회사에 입사를 했고
사회적으로도 역시나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결혼과 출산으로
서로 바빠지면서 연락이 뜸해졌고,
어느날 불현듯 연락이 온것이다.
회사를 그만뒀다고.
요즘 맨날 아이와 집에만 있다며
놀러 오라는 말에 놀러 갔었다.
그 언니 집에 들어서는 순간
당황을 금치 못했다.
거실 양 벽은 책장이 두개가 세워져 있고
그 거대한 책장을 가득 매운 많은 양의 그림책들.
책장 사이의 거실 바닥은
책들이 널브러져 있어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펼쳐진 책, 찢긴 책, 물에 젖은 책...
그리고 그 바닥 위로
3살짜리 남자아이가 기어 다니며
언니에게 끊임없이 책을 배달한다.
그 책을 받아 든 언니는 1초의 머뭇거림도 없이
글자들을 읽고 또 읽어준다.
읽다가 다른 책 가져오면 또 그 책 읽고,
아이가 책장을 넘기면
넘기는 페이지의 글을 읽는다.
마치 책 읽어주는 기계처럼.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느라
어디 앉으라는 말이 없었다.
바닥에 책들을 조금 치우고
언니 옆에 쭈그려 앉았다.
몇 년 만에 나라는 손님이 왔지만
집을 치우기는커녕
후줄근한 옷차림에 씻지 않은,
아니, 씻지 못한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끊임없이 책을 배달하는 아이에게
나와 대화를 하다가도 잠깐씩 책을 읽어 준다.
처음엔 당혹스러웠지만
무슨 이유가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언니의 육아를 지켜보았다.
대학 시절 활력이 넘치고
반짝반짝 빛나던 언니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언니 잘... 지냈어?"
"... 응"
"잘 지내고 있는 거 맞아?"
어수선한 집안이며,
파김치가 되어 있는 언니의 모습이며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리고 대뜸,
"너 회사 그만뒀어?"
그 언니의 첫 질문이었다.
우리는
처절한 취업 전쟁시기를 같이 보냈다.
어떻게 들어간 회사인데
회사를 그만두다니?
악착같이 육아와 돈벌이를 병행하며
고군분투하며 살고 있는 나에게
회사를 그만뒀냐니..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들.
"너 아이 잘 키우고 싶지?"
"응.. 그걸 말이라고 해, 나중에 사교육비 많이 들 거 생각해서 지금 벌어서 모아놔야지"
지금 생각해 보면 저 생각이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막연한 방식이었나 싶다.
"사교육 하나도 없이
아이 명문대학 보내고 싶지 않아?"
"그럴 수 있다면 너무 그러고 싶지"
"그럼 회사 그만두고,
지금부터 아이 붙들고 책 읽어줘"
"회사를 그만두라고?
회사를 그만두면 생활이 빠듯해..
우린 아직 집도 없어"
초가삼간이어도
책과 아이만 놓고 살아. 3년만.
파김치가 되어 있던 언니의 조언은 칼 같았고,
비장했던 눈빛은 잊을 수가 없다.
"군대 간다는 마음으로,
유아기 되기 전, 그렇게 3년만, 책만 읽어줘."
"......"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조언이었다.
책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나였기에
책의 중요성을 알리가 만무했고,
그런 나에게 돈벌이를 포기하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라니,
아니 책만 읽어주라니.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가진 것 없이 월세방에서 시작한 신혼생활에
수입을 반토막 내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상하게 언니의 말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난 정말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다.
자신의 삶을 사랑할 줄 아는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아이로.
'까짓것 해보지 모' 라며 용기를 낼 수 있는 아이로.
이런 열망을 마음속에만 품은 채
난 지금 당장의 먹고사는 밥벌이에
직장이라는 곳에서
아이와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10년 뒤에 나타날
아이와 나와의 관계를
엉성하게, 되는대로 쌓이게 할 거라는 걸 몰랐다.
그렇게 언니는 나에게
퇴사와 책 조언을 짧게 하고
그다음은 너의 몫이라며
몇 가지의 책들 추천해 주었다.
하은맘의 군대육아, 달팽이육아, 불량 육아..
하지만 조심히 읽으라고 했다.
그 책을 읽으면 정말 당장 한시라도 빨리
아이에게 책만을 읽어 줘야 한다는 강열함에
퇴사를 결단하지 못하는 현실이
감당 안될 수 있다며.
그렇게 난 언니 집에 다녀온 후
며칠간의 고민 끝에 남편에게 퇴사를 하고 싶다고 말하였고,
지금 당장은 안된다며 본인이 자리 잡을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하였다.
길어도 3년이라고 했다.
난 그 후로도 3년을 더 직장에 나가야 했지만,
아이와 나의 일상은 달라졌다.
당근마켓에서 중고책을 사 들이기 시작하였고,
아이에게 보여주던 모든 미디어는 끊었다.
(보여줘야 할 때는 영어로만 보여주었다.)
주말이면 교외로 놀러 다녔던 일상은
주말에 문연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심심하게 보냈다.
그리고,
나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모든 육아서를 읽어볼 작정이었고,
수많은 육아서를 읽었다.
2학년과 5학년이 된 두 아이에게
지금도 가장 공들여하는 일은
책을 읽게 하고,
책을 읽어 주는 일이다.
피아노 플륫 이외
사교육장에 아이들을 보낸 적이 없고,
주말 오전 10시면
동네 공원 도서관으로 어김없이 향한다.
돈이 없어서 학원을 보낼 수 없었고,
불안할 때마다 더욱 책만을 읽어 주었다.
씻지 않고, 집을 안 치우고,
끼니를 집밥으로 대충 챙겨 먹어도
내가 절대 대충 하지 않는, 그것
가장 정성을 들이는 그것은
여전히, 책육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