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예쁘다, 그러니 걱정 말거라.

너의 울음소리는 어미에게는 천둥소리구나.

by 에스더

좀 벅찬 하루였다.


시간 단위로

돈을 벌 수 있거나,

아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면

앉아 있지 않는 나이다.

뭐든 할 일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그날 하루 동안 했던 모든 일들이

엉망이 아닌 것이 없는 날이었다.


잦은 실수들로 질책을 받은 회사일,

공부하기 싫어하는 공부방 아이들을 질책한 나,

신랑이 부탁한 심부름 망각으로 또 질책,

아버지 허리 디스크가 터졌다는 소식,

1주일째 밀린 빨래, 발에 치이는 바닥의 물건들,

부족한 수면, 제때 챙겨 먹지 못한 끼니,

따가운 입안의 구내염들, 며칠째 씻지 못한 몸뚱이...


지친 몸으로

8시 넘어서 늦은 저녁밥을

성급히 차리고 나를 건드린 건 첫째였다.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진

나의 화살의 타깃이 되어 버렸다.


"엄마, 오늘 독서록은 빼주면 안 돼?"


여태 놀다가 무기력한 모습으로

오늘도 공부 좀 줄여보려 다가오는

첫째의 모습은

지금까지의 하루를 망친

나의 가득 찬 유리잔에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난 들고 있던 국자를

싱크볼에 던져버리며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독서록이고 뭐고 다 때려치워.

내일부터 아무 공부도 하지 마."


사방으로 튀어 버린 설거지 오물들과

이미 괴물로 변해버린 내 모습에

첫째는 울음을 터뜨리며

"엄마 미안해"를 연발하였다.


끓고 있는 된장국이

쫄여지는 동안

휘어진 국자를 손에 들고

나도 바닥에 주저앉아

그대로 눈물이 터져버렸다.


울음이 터져버린 나를 보고

달려온 둘째가 같이 울며

나를 달래 주지만

혐오스러운 나 자신과

정말 모든 상황을

내 손으로 망쳐 버렸다는 자책감에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그 울음은

하루동안 나누어

조금씩 터졌어야 했다.


안간힘을 다해 동여매고 있다가

결국 국자를 들고 있다가 터져버린 것이다.


한동안 울고 나니

정신이 좀 들었다.

졸여진 된장국에 물을 붓고

다시 끓이기 시작했다.


첫째도 어느새

벌게진 얼굴로 독서록의 절반을

써가고 있었다.


그러다,

어디 선간 꽥꽥꽥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일그러진 마음을 추스르느라

그 괴상한 소리에도 양파를 썰었다.


그런 내 뒤로

다다다다다다다 달려가는 두 아이.

아직 눈물이 얼룩진 얼굴을 하고

두 아이는

그 굉상한 소리에 놀라

그저께 잡아온 청개구리 통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울음 주머니를 볼록거리며

꽥꽤꽤 소리 내는 청개구리를


"우리 소리가 나. 울고 있어.

암컷을 찾나봐. 수컷이었어" 하며

세상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본다.


언제 울었냐는 듯,

언제 혼났냐는 듯,

신기한 청개구리 울음 소리에

혼이 빼앗긴 두 아이는 청개구리 관찰에 여념이 없다.


아이에게 이따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하나

걱정하고 있던 나와 달리

아이들은 청개구리 울음 소리 하나면

세상이 바뀌는 순수하고 예쁜모습이었다.


내 괴물 같던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

온갖 아집이 미안함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하루를 다시 돌이켜보니,


아름답고 성공적인 하루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하늘이 무너지는 하루도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망친 것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일들은 해내고 싶었다는 것이고,

망쳤다고 느껴 괴로웠다는 것은

그만큼 잘하려고 애썼다는 것이었다.


내가 하루를 망친게 아니라

정말 완전히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서 살아 내려했던 것이었다고.


그 모습이 장하고, 기특하다고,

충분히 예쁜 것이니 걱정 말라고,

울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었다.


무엇보다 나를 닮은

청개구리 같은 천사 둘이

내 곁에 있으니

그게 축복이라고 말해주었다.


<빈방, 나선미>

너 훌쩍이는 소리가

네 어머니 귀에는 천둥소리라 하더라.

그녀를 닮은 얼굴로 서럽게 울지 마라.


나도 어떤 어미의 귀한 딸이라고

존재 자체로 예쁘고 귀하게 빚었었다고.

그러니, 다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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