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에 천사가 있었구나 ①
70세를 훌쩍 넘기고 나서야
은퇴를 하신 아빠는
손주들 보러 집에 가끔 들르신다.
익숙하게
냉장고에서
북어포와 소주를 꺼내어 드시며
손주들의 웃음꽃 향기에 취하신다.
할아버지의 소주 한잔은
우리 아이들에게
익숙한 풍경이고
소주는
할아버지 최애 음료쯤이라고 생각한다.
몇달 전,
아빠를 모시고 아이들과
점심을 해결하러
동네 순댓국집에 간 날이었다.
아빠는 여느 때처럼
소주 한 병을
시키고 기다리고 계셨다.
소주가 나오기 전,
앞에 앉아 있던
8살 손녀는 무언가를
할아버지 앞에 갖다 둔다.
소주잔
앞에 손녀가 놓은 소주잔을 보고
아빠는 할 말을 잃고
멋쩍은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에게
필요한 그것,
늘 곁에 있었던 그것을
어리디 어린 딸이
기억하고 있었다는게
참으로 기특했다.
곧이어 나온 소주병을
자기 앞에 가져가더니
작은 두 손으로
그 작은 소주잔에
정성껏 술을 따라서
할아버지에게 건넨다.
아빠에게 소주란
그 모진 세월
누구 하나 따라주는 이 없는
쓸쓸한 밤을 함께 보내준 벗이다.
홀로 잔을 채우고 비우기를
수만 번,
얼마나 고독한 밤을
술로 달래셨을까.
잠시라도 현실을 잊고
조금이라도
편하게 잠들게 해 줬을
한모금의 쉼이었을 것이다.
그런 아빠에게
그날
어린 손녀가 건넨 그것은
쓰디쓴 소주가 아니었을 것이다.
고단한 삶을 살아오신
할아버지에게 건넨
사랑 한잔이었을 것이다.
술냄새가 나는 할아버지가
싫을 법도 한데도
그런 할아버지에게
정성스럽게 건넨
손녀의 따뜻한 온기는
사랑한다는 백마디보다
더 따뜻했을거다.
아빠는
손녀의 온기에 취해
식사를 마칠 때까지
그 순간을 곱씹으며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아빠가
이토록
따뜻함을 느낀지
얼마나 오랜만이셨을까.
난 이날
아빠에게
큰 효도를 했지싶다.
딸이 건넨 사랑 한잔으로.
아이에게
효심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
예의를 알려줄 필요가 없다.
그저
어미가
그의 부모를 극진히 여기는
딸이기만 하면 된다.
매일 전화를 걸어
아버지께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어미를 보고 자란 자식이
어찌
효심을 모를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