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금빛으로 반짝이던 포르투를 추억함

감자요리와 포트와인으로 혼자서도 행복했던 그날 밤

병가 후 처음 맞는 일요일. 7시쯤 눈이 떠졌으나 굳이 다시 자서 10시가 다되어 일어났다. 국선보다 늦게 일어나다니. 나사가 풀어지기 시작했다면 애경이 칭찬도 해주었다. 자기는 아침에 일어나 러닝 후 다시 잤다면서.

느지막히 일어난 가족들의 기척이 들려 어제 아침 채쳐놓은 감자를 꺼내고 먹던 스팸(뜨거운 물에 데쳐놓은)을 작게 잘라 섞고 달걀 3개를 풀어 넣었다. 소금과 후추 약간. 남자들에게는 케첩을 곁들여주고 내것은 샐러드와 함께 내어 먹었다. 애경 요거트도 한그릇씩.

감자를 채쳐서 만든 감자 오믈렛

포크와 나이프로 우아하게 잘라 먹다보니, 어? 이거 어디서 먹어본 맛인데? 싶었다. 잘 생각해보니..

2019년 2월에 갔던 포르투가 떠올랐다. 낡은 도시 포르투. 스페인 마드리드를 며칠 돌아다니다가 문득 번잡스러운 현대적 도시가 지겨워져서 계획도 없던 포르투행 비행기표를 끊고 숙소를 검색해 예약하고 바로 그 다음다음날 떠났다.

급히 떠난 여행이었는데도 놀랍게도 내가 예약한 숙소는 포르투강의 야경이 직빵으로 보이는 고풍스런 건물이었고, 다양한 여행지로 곧바로 연결되는 버스도 타기 편한 지역이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온 포르투 강변은 너무 아름다웠다. 지중해 국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나른하고 밝고 아름다운 풍경. 강가 건물 2층에 있는 레스토랑에 앉아 멋지게 음식을 시켰다. 좋아하는 화이트 포트와인도 시켰다. 유럽 여행 중에 이런 제대로 된 식당에 들르는 일은 별로 없는데, 여긴 웬지 그래야 할 거 같아서 좋아하지도 않는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겹겹이 쌓아올린 감자밀푀유. 그 여행에서 읽었던 레베카 솔닛의 <길잃기 안내서>

스테이크 곁에 함께 나온 감자밀푀유를 먹어보곤 감탄했다. 감자를 별로 안좋아하지만, 세상이 이런 게 있구나. 레베카 솔닛의 책을 들고 갔던 거 같다. 다른 사람이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통로, 여행. 그렇게 다이내믹한 삶을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문득문득 멀리 떠났던 혼자만의 여행 덕이었던 거 같다. 말은 최소한으로 하면서 낯선 것을 보고 낯선 음식을 먹고 낯선 생각을 하면서 돌아다니다보면 어느새 머릿속에 새롭고 깊은 생각들이 피어나고 그것들을 글로 적다보면 자신이 새로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자주 그렇게 혼자 여행을 다녔다. 그렇게 다시 충전되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파두가 흘러나오던 어스름한 저녁거리, 쨍한 햇빛 아래 마신 포트와인, 감자폭탄 냉동음식

혼자 여행의 유일한 단점은 밤이 외롭다는 거다. 낯선 도시의 술집에 혼자 들어가는 것은 아무래도 좀 꺼려진다. 수다 떨 친구가 필요한 순간도 밤이다. 포르투에서도 그 낡고 멋진 도시를 어두워질 때까지 돌아다니다가 숙소로 돌아와서 저녁을 해결했다. 수퍼에서 레몬맥주(으아!! 나의 사랑 레몬맥주!)와 달걀, 간단히 데워먹을 수 있는 즉석음식을 사들고 들어왔다. 그런데 그곳의 즉석음식은 주로 감자요리였다. 레스토랑에도 감자요리가 정말 다양했다. 밤에는 즉석음식을 간단히 조리해 호스트가 웰컴드링크로 마련해준 포트와인과 맛나게 먹었다. 양도 너무 많아서 남긴 음식을 치우는 것도 일이었다.

숙소 테라스에서 찍은 파노라마 전경

포르투의 반짝이던 밤, 흥겨운 뒷골목의 음악과 춤, 포트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에서 들었던 파두, 쨍한 날 버스를 타고 닿았던 바닷가, 커피와 에그타르트를 먹으며 책을 읽던 바닷가 카페가 우르르 떠오르고 말았다. 건학의 감자가 준 추억선물이었다. 기후위기로 지중해가 끓어오를 정도라니 너무 안타깝다. 그 바다는 겨울에도 너무 아름다웠다.

포르투갈의 탐험가들이 용감하게 새로운 세상을 찾아 떠났던 그 바다


추억을 쌓아두면 이렇게 쓸데가 있구나. 혼자만의 추억이라도 나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

수술하고 나면 좀 선선할 때 푸꾸옥 바닷가 빌라로 떠나야겠다.

저녁밥은 낫도에 파를 쫑쫑 썰어 넣고 비벼 밥 위에 얹은 낫도 덮밥. 오늘도 건강하고 간단하고 맛있는 요리!








keyword
이전 01화구례에서 온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