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만난 세계

오십이 넘어서야 알게 된 것들

하루 한잔 소중하게 마시는 커피 원두가 똑 떨어졌다. 매일 혜화동으로 출퇴근하는 작은 아들에게 부탁했으나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에 있는 커피같지 않은 커피원두(베트남 다녀온 지인이 선물한 건데, 로부스타의 원산지인 베트남에서 이따위 기성품 원두를 사오다니. 참.)로 3일을 연명하다가 참다못해 혜화동으로 길을 나섰다. 동네에 사람이 많은 토,일요일에는 웬만하면 산을 내려가지 않는데, 오늘은 맛있는 커피를 마시겠다는 일념으로 집을 나서고야 말았다.

눈과 다리와 혀가 함께 행복해지는 학림카페-낙산공원-성북동 밀곳간 코스. 크리스마스 슈톨렌의 계절이구나

학림카페에 가서 원두를 한봉지 사고, 덤으로 주는 커피 한잔을 아주 맛있게 마셨다. 산동네에서 점심산책하러 나온 차림새라(우중충한 얇은 패딩에 오래된 운동복 바지, 꾸깃한 캡), 연말을 맞아 반짝반짝 꾸미고 나온 젊은 남녀들이 물결을 이룬 관광객들 사이에서 영락없는 동네 아줌마 행색이라 좀 부끄럽긴 했다. 커피를 다 마시고 얼른 본분에 충실하게 동네주민 산책 운동 코스인 낙산공원으로 향했다. 혜화동 뒷길로 올라 혜화문쪽으로 반바퀴 돌아 내려왔다.

저녁운동을 떼먹기로 한 이상 이 정도로는 운동량을 채울 수가 없어서 성북동까지 내쳐 걸었다. 날이 추워지자 자꾸 빵이 먹고 싶어서(핑계도 참.) 괴로워하고 있던 차에 참새 방앗간인 밀곳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들어섰다. 아름다운 빵들의 향연. 통밀과 호밀로 만든 식사빵을 사야지 하는 결심은 어느새 무너지고 다크초코와 에멘탈치즈를 넣은 빵을 사서 나와 바로 한조각씩을 먹어치우고서야 일어섰다.

먹고 나니 밀려오는 후회. 바람이 차가워져 택시타고 바로 집으로 갈 결심을 잠시 하였으나, 칼로리 소모와 소화를 위해 성북천을 따라 마을버스 정류장까지 또 걸었다.

집에 도착하고 보니 거의 2시간을 걸었다.


오늘 글의 주제는 새로 공부하고 있는 것들.

생전 돌아본 적 없는 것들을 공부하면서 생각하고 느낀 것들.


1. 이토록 매력적인 세계라니 - 인체의 신비와 의학의 간지

다시 태어난다면 의학을 공부하리라

수술 후 흥미가 생긴 인체의 작동 기전에 대해 더 공부해보고 싶어서 몇권의 책을 더 샀다. 처음 샀던 책과 함께 읽으니 이해도 잘 가고,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좋다. 남궁인 작가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본업에 충실한 책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도해와 사전으로만 보던 것을 실제 임상 의사는 어떻게 대처하고 치료하는지를 함께 보니 현실감각이 더 깨어났다. 신체 각 부위의 형상 모형을 사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궁극적으로 내가 할 것은 앞으로 더 건강하게 살기 위해 내 몸을 어떻게 관리하고 면역력을 높여야 하는가를 알고 실천하는 일.

우리가 알고 있고 수없이 들어온 건강을 위한 이야기들, 예를 들면 "운동해야 건강하다."(왜?) "설탕, 밀가루, 정제곡물을 끊어야 건강하다"(왜?) "채소를 다양한 색깔을 배합해 먹는 것은 기본이다"(왜?) "혈당스파이크를 막기 위해서는 식후 조금이라도 걸어야 한다"(왜?).... 을 접할 때 늘 뭔가 납득되지 않는 것들을 서서히 이해하고 있다. 활성산소는 어떻게 생기고 왜 나쁜가 같은 것을 인체의 작동원리를 통해 이해하게 되니, 내 몸을 더 아껴주어야 겠다고 생각하게 된달까. 자연스러운 몸의 능력을 보조하기 위해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알게 되니 좋다.


2. 이 나이에도 겪을 수 있다, 가치관의 혼란 - 주식과 자본주의 경제

지난 10월쯤? 코스피 지수가 4000이 넘었다고 난리가 났을 때,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몰랐다. 주식은 위험한 것이고 일상생활을 위협하거나 자신의 역할을 나태하게 대하게 한다는 오래된 편견(나중에 알았지만, 이런 시절을 닷컴버블이라 부르더라)을 가지고 살아와서, 그쪽으로는 기사도 잘 보지 않고 지냈다. 그 세월이 벌써 25년쯤.

공무원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라 연금에는 관심도 없었다. 벌써 25년 동안 내 월급의 많은 부분을 뭉텅 떼어가는 공무원연금과,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액수를 늘렸다 줄였다 하기는 해도 해지하지 않고 있는 교원공제회 저축이 나중에 내가 늙으면 나를 먹여살리겠지 막연하게 생각해왔다.

사람들이 저렇게 열광하고, 젊은이들이 특히 목숨을 걸고, 국가도 많은 세제혜택을 주면서까지 늘리려고 하는 '투자'가 대체 어떤 작동기제를 통해 움직이는지 궁금해서 주식 관련 뉴스와 유튜브들을 조금씩 보기 시작했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운영하거나 초대되는 유튜브 채널들이 정말 많았다. 나의 알고리즘에는 한번도 뜬 적이 없었던 것인데, 이 세상이 이렇게 크다니.

내가 한번도 통해보지 않았던 렌즈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화폐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고, 기업의 투자는 개인의 투자들이 모여 이루어지며, 화폐가치가 폭락하는 시대에 15년쯤 후 받게될 내 연금은 지금의 가치를 따라갈 수 없고, 수명이 100세를 넘어가는 시대가 되면 그 연금으로 살아가기란 힘들 것이며, 우리가 믿고 있는 예금 적금도 결국 화폐기치 폭락으로 지금의 액면가만큼 매래의 구매력이 높을 수는 없을 것이란 이야기가 바탕에 깔렸다.


코로나 이후 경제성장을 위해 금리를 낮게 유지하고 있는 현재, 예적금의 금리는 2%대인 데 비해 장기적인 주식투자의 수익률은 매우 보수적으로 잡아서 7%이고, 수익을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복리의 이익을 누릴 수 있고, 은퇴 후에는 배당을 높게 주는 주식으로 환매하여 연금 이외의 현금흐름을 만들 수 있고, 더 중요하게는 원금도 지킬 수 있다. 게다가 정부도 세제혜택을 주면서 연금저축펀드를 적극 권장하고, 심지어 몇년 전부터 일반기업은 퇴직금을 연금펀드에 넣어서 운용하다가 그대로 개인연금펀드로 옮겨 은퇴자에게 지급하고 있었다. 미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퇴직금은 연금펀드로 지급하고 재직시에도 10% 정도를 펀드에 투자해 회사차원에서 운용하고 그 수익금을 퇴직금과 함께 지급한다는 것이었다. 며칠 전에는 그렇게 현금만 믿고 보수적인 일본에서조차 오랜 국민교육의 결과 점차 그런식의 전환을 이루어내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좀 충격적이었다. 정직하게 일해서 번 돈으로 씀씀이를 줄여 살아가면 된다고, 이것이 지구에게도 도움되고 역사의 변화에도 부합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재테크 따위 빈부격차만 늘이는 나쁜 것이라며 단순하게 살아온 나의 세상이 놀라웠다. 나같은 사람이 있어도 빈부격차는 늘어나고 있었고, 오히려 기업의 성장을 저해할 수도 있었다. 기업이 성장해야 일자리가 느는 것은 당연하고, 이미 글로벌화 되어 있는 우리나라 대기업의 성과가 한국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도 국내 주식투자의 힘이 큰 것이었다.

한 주 정도 공부하다보니, 머리로는 조금씩 이해가 가면서도 실감이 안나서, CMA 계좌라는 것을 처음으로 만들고 ISA와 연금저축계좌, IRP도 만들었다. 증권회사의 앱에 가입하니 한방에 만들어주었다. 물론 벼룩의 간만큼 적은 돈을 넣어두었다. 그냥 아직은 실습용이라서. 그리고 코스피 4000이 넘은 판국에 무슨 돈으로 투자를 하겠냐는 말이다. ㅎ 여튼 주식을 사고파는 실습을 하고, CMA에 넣어둔 돈의 끝자리가 매일마다 변하는 (커지는) 것도 보았다.


친절한 '박곰희 TV' 채널을 통해 기본 개념들을 익히고 있는 중이다. 채권이란 무엇이고, ISA와 연금계좌는 어떤 혜택이 있고,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가 뭐 이런 정말 기초적인 것들을 이해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되었다. 공부하고 있는 중에 코스피 지수가 떨어지고, 미국에서 AI버블론이 불거지며 미국시장도 하락하는 시기가 한참 지속되었다.(지금 생각하면, 이 시기에 좀 샀어야 하는데. ㅎ 뭐 돈이 있어야 말이지. 전문가의 의견뿐 아니라 우리가족의 경험을 통해서 확신하는데, 빚내서 하는 투자는 절대 금물이다.)

젠슨황이 10여년 만에 직접 한국을 방문하여 삼성과 현대를 만나고, APEC에서 트럼프한테 왕관까지 선사하며 관세문제를 타결하고 나자 코스피는 급격히 상승세를 탔다. 그러다 젠슨황이 채권을 통해 돈을 끌여들여 재투자하는 걸 보고 AI는 버블이다 아니다 한참 논란이 일어 주가가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곤두박질 치고(아, 이때 샀어야 하는데!), 구글이 제미나이3.0을 공개한 후 GPU와 TPU 사이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중이다. 챗GPT 열풍에도 유료계정 전환을 하지 않던 나도 구글(구글 포토의 기능을 첨 봤던 몇년전, 나는 확신했다. 미래는 구글이 지배할 거라고)의 제미나이3.0 6개월 무료특전에 유료계정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새로운 공부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GPU와 TPU와 HBM의 개념과 관계를 정말 쉽게 설명해준 것도 제미나이였다.


지수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걸 보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유튜브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이런걸로 이렇게 온세상이 시끄러워지는 게 놀라웠다. 세상을 보는 새로운 렌즈에 서서히 다가갈 수 있었다. 삼성전자 한 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맘 속 깊이 삼성전자의 성장을 응원하는 내 자신에게 깜짝 놀라기도 했다. 두산 야구경기를 보러 갔을 때, 내 입에서 나오는 '최강 두산!'이라는 외침에 깜짝 놀랐듯이. 대기업과 한몸이 되어가는 이 이상한 기분.


나의 새로운 렌즈를 갈고 닦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신한은행 무슨 팀장이라는 오건영이라는 분의 설명이었다. 이 분은 대부분의 유튜브 출연자들과 달리 주식 전문가가 아니고, 자신도 늘 그것은 먼저 내세운다. 경제공부를 참 좋아하고 경제라는 렌즈로 세계역사를 관찰하는 분인데, 내가 그래도 좀 알고 있는 현대사를 경제적 개념들을 이용하여 설명해주니까 알아듣기가 훨씬 쉽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라는 4분야를 통해 역사를 정리하고 이해하는 데 익숙한 나인데, 현대사를 공부할 때는 한번도 경제적 측면에서 충분한 이해를 한 적이 없었다는 걸 이 분의 책과 강의를 통해 깨달았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 경제지식(환율, 금리, 수출 등의 단선적 관계)만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는 뒤늦은 자아인식. 객관식 시험문제를 푸는 데 최적화된 교과서 내용만으로 세상을 보려 했으니, 그렇게 이해하지 못한 것들이 많았고, 결국 외면하고 있었던 거다. 경제적 코드를 가미하니 세상이 한데 뭉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하는 것들이 눈에 보였다. 아. 이럴 수가.


아직도 계속 공부할 것들이 생기는데, 주식투자에 뛰어들어 돈이라도 좀 벌 수 있을까 싶지는 않고, 그냥 아직은 내 시야가 확장되는 느낌에 기분이 좋다. 물론, 이런 자본주의 경제가 그 부수적인 문제들(부수적이라니. 인간 사이의 빈부격차와 계급차이가 부수적인 것인가 말이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런 사회가 지속할 수는 있을지.


요즘 대통령의 경제적 푸시도 우려스럽다. AI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적극적인 발언과 세일즈를 하고 다니고, 국민들에게 자신이 매수한 ETF까지 공개하며 투자를 독려하고 있다. AI는 결국 전력소비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게 되니 이 기회에 가동을 중단했던 원전을 다시 가동하고, 원전 세일즈를 하고 있다. 대체에너지는 전세계적으로 인기도 식고, 실효성도 없어 정책이 폐기되는 분위기다. 강정싸움 때 그렇게 우려했던 핵추진 잠수함은 우리가 나서서 미국의 허락을 받았고, 이와 함께 김진숙 씨 등 수많은 노동자를 희생시켰던 조선업은 하청노동자를 양산하면서도 부활의 시대를 맞았다. 대통령은 순방길에 대대적인 방산세일즈를 겸하고 있어 주식하는 사람들이 지금 최대 관심을 두고 있는 '조방원(조선, 방산, 원자력)'은 주식시장의 대표주자다. '금반지(금융, 반도체, 지주회사)'도 금융자본주의 시장의 꽃이다. 아무래도 내가 생각한 '진보'의 개념은 노무현에서 끝난 거 같다.


일단, 얼떨결에 관심을 갖게 된 주식시장과 금융시장을 조금씩 알게되는 즐거움이 있다. 하지만, 내가 여태 살아오며 가졌던 생각을 얼마나 수정해 나가야 하는지는 아직 잘은 모르겠다. 물론, 10년 후 나의 은퇴를 준비하려면 이 물결에 올라타야 한다. 모든 것의 전제는 "자본주의는 망하지 않는다. 미국은 망하지 않는다."라는 명제다. PD도, NL도 틀렸던 것이다. (지금 현 시점에서는 말이다.)

평등도 자주도 자본주의가 해결해주는 것일까? 나 같은 사람은,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역할은 무엇일까?

좀 더 공부를 해보자 싶다.


3. 하면 할수록 빠져든다 - 일본어

만년핑르 다시 꺼내게 만든 일본어. 광고카피마저 이렇게 멋있다
3시간의 러닝타임이 언제 지났나. 아름답다. 이 영화. 일본어로 읽고 싶다.

오늘은 JLPT N2 시험날이었다. 안갔다.

수술 후 공부를 빡시게 해서 척 붙을 거야. 라고 생각했었는데. 공부를 전혀 하지 못해서 포기했다.

대신 문형공부를 꾸준히 했다. 공부만 하고 외워지지 않았다는 건 문제지만, 문형공부를 하면서 만년필로 문장들을 적을 때 뭔가 행복이 느껴진다. 한자, 가타카나, 히라가나를 쓸 때는 그림 그릴 때와 비슷한 몰입감을 느낀다. 음악도 영화도 드라마도 대부분 일본 것을 듣고 본다. 딱히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뭔가 '사색'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TalkMe로 AI와 대화하는(물론 나의 발언은 매우 저급한 수준이지만) 것도 점점 재미를 붙여간다. 여유와 체력이 된다면 1월에는 페라페라를 시작해보고 싶다. 서서히 쌓아서 아름다운 문장, 예를 들어 미야자와 겐지라든지 하루키라든지, 나의 센세 우치다라든지 그런 분의 유려한 문장을 원문으로 읽게 되고 싶다.

단, 천천히 가야지


4. 스틸하트클럽

그러나, 에너지 넘치는 순수한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서로 팀을 이루어 함께 조금씩 나아져가는 젊은이들을 보는 것만큼 나를 들뜨게 하는 건 없다.

역시나 제일은 한빈킴과 마샤다.

그래서 요즘 나는 또, 화요일 밤 10시를 기대한다.

(JTBC는 수퍼밴드를 부활하라! 어째서 싱어게인만 부활한 거냐! Mnet은 고등래퍼도 부활해라!)


스탠딩공연은 꿈도 못꾸는 나이가 된 나.

나이들고 늙어가는 건 좀 서운하지만,

나이들고 늙어가는 과정에서도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참 다행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