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막글
나의 ‘지금’을 사계절에 비유한다면, 아마 봄이다.
적절한 온도, 맑은 날씨처럼 좋은게 좋은 것이지, 맛있는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먹고, 누군가를 적당히 미워하고 화도 내면서 즐겁게 대화하고, 인생이 편하기만 하면 무슨 재미냐 생각하면서 주어진 일들도 꾸역꾸역 하다가 과자 하나 뜯어먹고 잘 준비를 한다. 조금 힘들면 쉬었다 가고, 더 달릴 체력이 된다 싶으면 뛴다.
충분히 만족스럽고 평안한데, 겨울을 지내고 있는 너를 보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무엇을 원하길래, 그렇게 힘들어하면서 꽁꽁 언 강을 파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여름엔 뛰어들 수 있는 바다가 있고, 가을에는 달달한 감과 배도 있는데, 왜 겨울을 선택했을까.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서있는 너를 보면서, 말이라도 걸어보고 싶은데, 내가 가진 봄이 괜히 방해가 될까 싶어 모른척했다.
하루는 따뜻한 기온에 기분이 좋아져, 마음에 드는 옷을 샀다. 차가운 기온과 매서운 바람 때문에 멋없이 두껍게 껴입는 패딩은 너무 우습고 입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나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털모자를 쓰고 목도리도 귀마개도 아닌 요상한 마스크를 쓰고 여전히 얼음을 깨고 있는 너를 보면서 비웃었다. 가끔은 비웃은 것이 미안해서 쓸 일이 없어 뒹굴고 있는 장갑 하나를 주기도 했다. 내 하루가 심심하다 싶으면 나는 너를 보러 간다. 아직도 강을 뚫고 있으려나, 아니나 다를까 쪼그려 앉아서 탕탕- 얼음을 깨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퐁-하는 소리와 함께 동전 하나 크기에 모양으로 강이 뚫렸다. 콸콸 역류하는 강물은 보고만 있어도 차갑고 시렵다. 다음에는 무얼할까. 낚시라도 하려나, 이렇게 추운데 뭐가 잡히려나, 아니나 다를까 작은 낚시대를 가져오는 너를 보면서 나는 김이 팍 식었다. 언 강을 뚫어 낸 작은 구멍에서 실하나 달린 낚시대를 넣은 너는 그렇게 한참 바람을 맞으면서 또 다시 기다린다. 갑자기 낚시줄이 위 아래로 흔들거렸다. 너는 다급히 줄을 당겼다. 괜히 그 상황이 긴장되어 무엇이라도 올라왔으면 좋겠다고 나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통- 하고 올라온 작은 정어리 한 마리. 긴 겨울 바람을 맞으며 힘들게 뚫은 노력의 결과물이 작은 정어리라니, 팔딱팔딱 뛰고 있는 정어리를 한참을 쳐다보던 너는 또 다시 두껍게 언 강을 또 새로 뚫는 것이다. 참 이상하게, 나도 그냥 나의 계절을 살면 되는 터인데, 빨개진 볼과 추위에 떨고 있는 몸을 보자니 나 혼자만 누리는 봄이 민망해서인지, 죄책감인지 도와주고 알려주고 싶었다.
"그만하고 나랑 놀자, 고작 그거 잡으려고.. 고생이다."
나의 말에 너는 대답했다.
"혹동 고래는 정어리를 먹고 살아"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리고 우연히 본 프로그램에서 바다를 헤엄치는 흑동 고래를 보았다.
너가 있는 곳은 언 강이 아니라 바다였구나,
바다까지 얼릴 거대한 추위를 너는 보내고 있었구나. 앞으로 작은 동전 보다 더 큰 구멍을 뚫으려면 더 오래 걸릴 텐데, 더 차워진 바람에도 너는 너의 일을 시작한다.
나는 이제 너를 비웃을 수도, 도와줄 수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봄에만 머물고 스스로 겨울을 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혹시나 지금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는 너가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너의 겨울이 부럽다고, 아니 어쩌면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는 고래를 생각하며 홀로 겨울을 열심히 보내고 있는 너의 용기가 부러운 것이다.
누군가는 언 바다에서 고래를 어떻게 잡냐고 비웃어도 부끄럽고 오만한 응원이지만 나는 너가 고래를 꼭 잡았으면 좋겠다.
아니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