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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 Sep 25. 2024

비엔나의 하이라이트
'오페라 하우스'

비엔나 사람들의 슬픈(?) 호의 받은 썰

우리는 여행을 계획하면서 각자 어디에서 무얼 하고 싶은지 이야기했었다. 효삼이는 비엔나에 가 보고 싶다고 했다. 효둘이는 비엔나에 가면 오페라 하우스에 가면 좋겠다고 했다. 효삼이는 너무 좋은 생각이라며 들뜬 얼굴로 설레어했다.


그리고 대망의 '오페라 하우스 가는 날'이 밝았다. 따로 예매를 해둔 건 아니지만, 뭐 할 건지 미리 일정을 정해둔 몇 안 되는 날이었다.


효둘이는 너무 걸어서 다리가 아프다며 더 이상 걷고 싶지 않다고 했다. 효둘이는 준비하는 동안 인터넷을 찾아봤고, 마침내 현명한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공유 자전거!

우리는 'nextbike' 어플을 사용했다. 회원가입을 하고 결제 수단을 등록하면 언제든지 가까이에 있는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

효삼이는 한국 유심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회원가입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한 계정으로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할 수 있어서 효삼은 효일의 계정으로 자전거를 빌려 탔다.

비엔나는 자전거 도로와 보행도로가 잘 나뉘어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움직이기 수월했다. 여행지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는 건 처음이었다. 열심히 걸어 다니던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리니 짜릿했다. 아름다운 비엔나 도시의 풍경을 감상하며 상쾌한 바람을 맞으니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는 쉬지 않고 열심히 페달을 굴려 카를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 근처 풍경

부활절을 앞둔 시기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저번의 실패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부활절을 위한 기도를 하기 위해 왔다고 했고, 성당 안에 있는 작은 기도실로 안내받았다. 우리는 떨어져 앉아 조용히 각자의 기도를 올렸다. (효일은 효자매의 여행이 무사히 끝날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효삼이는 무슨 기도를 하는지 정말 오랫동안 기도했다. 기도하는 효삼의 모습이 낯설고 신기해서 효일과 효둘은 효삼의 기도가 끝날 때까지 그 모습을 구경했다.

성당을 나서면서는 내부를 잠시 둘러볼 수 있었는데, 웅장하고 신성한 공간에 어쩐지 숭고한 느낌이 들었다.


다음은, 오늘의 메인이벤트 '오페라 하우스'였다. 우리는 예약을 따로 하지 않아서 입석을 위한 줄을 섰다. 입석 줄이 생각보다 길었다. 하우스 오픈까지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갔던 터라 줄을 서는 동안 배가 고파졌다. 효둘이를 세워두고 효일, 효삼이는 근처에서 간식거리를 찾아 나섰다. 효둘이가 '감자 귀신'이라 불릴 정도로 감자튀김을 좋아하는데 마침 감자튀김을 파는 곳을 발견했다. 작은 사이즈와 큰 사이즈가 있었는데 우리는 망설임 없이 큰 사이즈를 달라고 했다. 커 봤자 얼마나 크겠어, 했는데 감자튀김이 진짜 한 다발이었다. 거기에 케첩까지 듬뿍 짜줘서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불렀다. 기뻐할 효둘을 상상하며 효일이와 효삼이는 빠르게 효둘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효둘은 상상한 것만큼 기뻐했고 우린 신나게 감자튀김을 먹었다. 일상의 소소한 기쁨이 여행지에서도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줄을 기다리는 동안, 앞에 있던 남자들과 조금 대화를 나눴다. 둘은 연인 관계였다. 한눈에 봐도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것이 느껴졌다. 형태는 달라도 사랑의 본질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본 공연은 드보르자크 오페라 <루살카>였다. 다들 잘 알고 있는 인어공주에 대한 이야기였다. 오페라는 아름답고 재밌었지만, 스탠딩석에서 장시간 서 있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리가 점점 무거워졌다.


인터미션 때마다 그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효둘과 효삼의 버킷리스트이기도 했고 티켓을 사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을 기다렸기에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 장면까지 끝내고 나서야 홀가분한 마음으로 오페라 하우스를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캄캄한 밤이 되어 있었다. 허기가 졌다. 자전거를 타고 한참 달리기 전에 배부터 채워야 할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다 근처에 있는 케밥 포장마차(?) 같은 곳으로 갔다.
성격 급한 효일은 빨리 먹고 버리려고 쓰레기통 앞에서 서둘러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낯선 여인들이 효일에게 롤초밥 도시락을 건넸다.

"이거 먹을래?"

"왜 날 주는데?"

이유를 물었더니, 너무 많이 사서 나눠준다는 것이었다.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침에 오페라를 본다고 한껏 꾸미고 나왔지만 하루종일 자전거를 타고 움직이고 계속 서 있어서 꼴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괜히 베베 꼬인 생각을 하게 되는 효일이었다. 정말로 음식을 많이 사서, 별 이유 없는 선의를 베푸는 걸까? 아니면 부활절이라서 불쌍해 보이는 이웃에게 음식을 나눠주려는 것일까?
당황한 효일이 우물쭈물하자 그들은 효일에게 도시락을 주고는 사라졌다. 효둘과 효삼은 효일이 그들과 시비가 붙은 줄 알았다고 한다. 함께 싸우고자 단단히 벼르고 왔다가 효일의 이야기를 듣고는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한참 고민하던 효일은 결국 그 음식을 버렸다. 유럽에서 낯선 사람이 주는 음식을 먹지 말라는, 마약 같은 유해 성분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게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친절함을 받았으면서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가 조금은 씁쓸했다. 우리는 잠깐 그들의 안녕과 행복을 빌었다.

자전거 타고 집 돌아가기

우리는 밤길을 가르며 다시 자전거를 한참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완전히 녹초가 되어 간신히 엘리베이터에 탔다. 거울을 본 우리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머리를 산발한 도적 셋이 거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우리의 모든 에너지를 비엔나의 거리와 풍경에 내어준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날이 우리에겐 소중한 추억이 되었음을 알았다. 모든 순간이 나를 더 깊게, 더 풍부하게 만들어줬다. 결국 여행은 사람과 장소의 조화 속에서 더 넓은 시야와 마음을 얻게 되는 과정이란 걸 비엔나에서 다시금 깨달았다. 감사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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