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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 Oct 02. 2024

신라면 세 봉 때리고 시작한
비엔나 마지막 날!

쇤부른 궁전, 벨베데레 궁전, 아시아 푸드 맛집까지!

굿바이, 비엔나!


비엔나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우리는 일어나자마자 신라면 세 봉지를 끓여 라죽까지 순식간에 해치웠다. 그날따라 효일이가 라면을 기가 막히게 잘 끓였다. 안성재 셰프가 먹었어도 '면발의 익힘 정도가 적당하고, 라죽의 밥알이 이븐하게 익어 맛있다'라고 평가했을 것이다.


유럽에서 신라면? 생존입니다.


사실 외국에서 먹는 신라면은 사나이뿐만 아니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눈물 흘릴 감동적인 맛이다. 효일과 효둘은 라면과 함께 맥주를 마셨고, 효삼이는 오렌지 주스를 곁들였다. 후식으로 야무지게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나니 다시 한번 비엔나 곳곳을 돌아다닐 힘이 나기 시작했다. (역시 한국인은 밥심이다!) 


전날처럼 자전거를 빌려 쇤부른 궁전으로 향했다. 이스터 마켓이 크게 열린다고 해서 우리 모두 기대가 컸다. 자전거로 16분 정도를 달려 도착한 마켓에는 정말 귀여운 소품들이 가득했다. 달걀 모양의 장식품과 그릇, 엽서, 초콜릿 등 부활절을 기념하는 다양한 물건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효일과 효둘은 무교이고, 효삼인 교회를 다니긴 하지만 종교 활동을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니라 구매는 따로 하지 않았다.



현지 사람들은 여유롭게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며 마켓을 둘러보고 있었다. 우리도 그들의 느긋함을 흉내 내보려 푸드코트에서 음료를 하나 시켰다. (혹시 맛이 없을까 봐 일단 하나만 시키자고 의견을 모았다.) 음료는 그럭저럭 맛있었지만 우리는 즐길 수 없었다. 모래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었기 때문이다. 날씨는 따뜻했지만 모래가 온몸 구석구석 파고 들어서 오래 있을 수 없었다. 현지인들한테는 큰 문제가 아닌 것 같았지만, 황사 시즌만 되면 기관지를 위해 마스크를 끼고 다니던 우리로서는 너무 큰 문제였다. 우리는 모래 바람이 덜 부는 구석으로 이동해서 한 잔을 후다닥 나눠 마셨다. 그리곤 다음 목적지를 향해 이동했다.



다시 한번 '엄복동의 후예'답게 쉬지 않고 25분을 달려 벨베데레 궁전에 도착했다. 상궁에서 클림트와 모네, 쉴레의 그림을 보았다. 미술 교과서에서만 봤던 그림을 실제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한국어 도슨트는 지원이 되지 않아 우리끼리 그림 해석을 공유하며 감상했다.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감상에 빠져 있었는데, 어느새 마감 시간이 다가왔다. 서둘러 나머지 전시를 보려고 했지만, 7시가 되기도 전에 직원들이 나가라고 재촉했다. 다 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지만, 특별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밖으로 나가니 날씨가 추웠다. 기온이 떨어진 데다가 바람이 많이 불어 추위를 많이 타는 효둘은 괴로워했다. 맛집으로 소문난 립을 먹으러 갈 계획이었는데 따로 예약을 하지 않아 40분을 기다려야 했다. 배도 고픈 데다 효둘이가 몹시 추워해서 다른 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아름답지만 너무 추워서 정원을 즐길 수가 없었다.


결국 근처에 있는 평점 높은 중국 식당에 가기로 했다. 하지만 이곳 역시 예약 없이는 식사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비도 내리기 시작해서 우리는 음식을 포장해 가기로 했다.
포장 주문을 하려는데 사장님께서 다정하게 '다음 예약 손님이 올 때까지 식사를 마칠 수 있겠냐'라고 물어보셨다. 넉넉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너무나 가능하다'라고 대답했고, 사장님은 웃으며 테이블을 내어 주셨다.



음식은 정말 훌륭했다. 우리는 감탄을 거듭하며 모든 음식을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우리는 이 식당 이야기를 종종 했다.) 음식은 물론 술도 저렴하고 괜찮았다.



효둘이 시킨 진은 향이 너무 좋았고, 효일이가 선택한 스파클링 화이트 와인, 효삼이가 시킨 내추럴 와인도 음식과 잘 어우러졌다. 52유로가 나왔지만, 사장님은 50유로만 받으셨다. 돈도 돈이지만 사장님의 마음이 너무나 감사했다. 비엔나의 마지막 날, 값진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주소는 Salesianergasse 20, 1030 Wien, 오스트리아 / Restaurant-hu


사장님께서 챙겨주신 초콜릿까지 완벽!


비도 내리고, 추운 밤이었지만 마음은 따뜻했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와 씻고 짐을 싸며 비엔나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고되고 피곤했지만, 충만한 하루였다. 굿바이, 비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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