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도 전사처럼.
헝가리로 떠나는 날이었다. 전날 저녁, 효둘이가 '체크아웃 전에 슈테판 대성당 보러 가면 좋을 것 같은데. 어때?'하고 물었다. 빠듯한 일정이긴 하지만 비엔나에 왔으니 유명한 대성당은 꼭 가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일단 일어나는 시간 보고, 갈 수 있으면 가자'고 마무리되었지만, 효일과 효삼 모두 효둘의 바람을 이뤄주고 싶었다.
다음날 아침, 우린 효둘이 가고 싶어 했던 슈테판 대성당을 위해 모두 일찍 일어났다. 하지만 효삼이는 감기 기운이 심해져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터라, 결국 숙소에서 좀 더 쉬고 있기로 했다.
마음이 급했다. 짐도 다 싸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체크아웃 시간까지 왔다 갔다 하려면 있는 힘껏 서둘러야 했다. 효일과 효둘은 눈곱만 떼고 빠르게 외출 준비를 했다.
이제는 우리의 신체 일부라고 할 수 있는 자전거를 빌려 움직였다. 평소 같으면 비엔나의 고풍스러운 거리와 풍경을 만끽하며 감상했겠지만, 이날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지도를 잘 보는 효둘이 내비게이션을 맡았고, 효일은 그녀의 뒤를 쫓았다. 가는 동안 두 사람은 대화도 하지 않고 페달만 밟았다. 간간히 효둘의 방향 지시만이 유일한 소통이었다.
슈테판 대성당은 압도적이었다. 높은 첨탑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고, 성당 앞 광장에 햇빛이 부서지듯 쏟아져 있었다. 시간을 아껴 가며 서둘러 온 보람이 느껴졌다. 성당 앞에 서서 한참을 올려다봤다. 우리는 성당의 웅장함을 배경으로 서로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지나가던 커플이 우리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그들도 우리 사진을 찍어줬다. 관광지에서 자주 일어나는 사진 품앗이었다.
성당 안에는 그리 오래 머물지 못했지만, 높은 천장과 시간의 흔적이 엿보이는 구조물들이 짧은 순간에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슈테판 대성당을 훑어본 후, 효일과 효둘은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다. 전철도 두 번이나 갈아타며 정신없이 움직였다. 효삼이가 미리 짐을 좀 챙겨놨으면 해서 움직이는 중간중간 연락을 남겼는데 도착하기 직전까지 연락이 안 돼서 너무 답답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다시 잠들었다고 했다. 효일과 효둘, 자다 일어난 효삼까지 부랴부랴 못다 싼 짐을 챙겼다. 짐을 싸는 동안도 시간에 쫓겨 쉴 틈이 없었다.
헝가리로 가기 전, 효둘과 효삼이 배고프니 뭐라도 먹고 가자고 했다. 우리는 역 안에 있는 샌드위치 가게에 갔다. 수제 햄을 사용한다고 하는데 평점도 괜찮고 손님도 많았다. 다만 맛있어 보이는 비주얼은 아니었기에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문 순간, 우리는 다 같이 감탄했다. 진짜 진짜 맛있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엔 푸석하고 뻑뻑해 보이는데 실제로 먹으니 햄이 정말 부드럽고, 빵은 고소하게 씹혀서 입안 가득 따스한 풍미가 퍼졌다. 햄버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주소 : Am Hbf 1, 1100 Wien, 오스트리아 / Leberkas-Pepi
기차 시간에 맞춰 일찍 플랫폼으로 향했다. 하지만 기차는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연착되었다는 방송이 들려왔다. 추운 날씨에 붉어진 얼굴, 몸체만 한 캐리어를 끌고 산발이 된 머리와 꾀죄죄한 몰골. 거지가 따로 없었다. 우리는 서로를 비웃으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얼마 뒤 기차가 도착했고, 별 탈없이 무사히 탑승할 수 있었다. 운 좋게 4인석에 앉아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함께 바라보며 소소한 수다를 떨 수 있었다. 미리 사둔 간단한 요깃거리를 나눠 먹으며 장난치다 서로의 어깨에 기대 쪽잠을 자기도 했다. 이동시간은 3시간 정도로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헝가리에 도착한 후, 숙소 체크인 때문에 엄청 애를 먹었다. 온라인 체크인을 하려는데 인터넷이 너무 느린 데다 동행자 여권을 모두 스캔해야 하는 번거로운 시스템이었다. 심지어 한 부분에서 계속 중단되어서 결국 효삼이가 멀리 있는 오프라인 카운터까지 가서 직접 체크인하고 돌아왔다.
효둘은 캐리어를 맡아 기다리고, 효일이는 근처 환전소를 찾아 헤매었다. 헝가리는 현금을 받는 곳이 많아서 현지 화폐가 꼭 필요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찌어찌 환전을 하긴 했지만 수수료가 너무 많이 붙어 속상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우리는 같은 돈이라도 더 알차게 쓰면 된다며 서로를 위로했다.
숙소는 첫인상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오래된 건물 특유의 수동식 엘리베이터와 하수구에서 나는 찌린내가 조금 거슬렸다. 그리고 더운물을 쓸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어서 앞사람이 샤워를 조금이라도 길게 하면 뒷사람은 갑작스러운 냉수마찰을 경험해야 했다. 다시 뜨거운 물이 나오기까진 2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여행의 피로를 풀기엔 다소 아쉬운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숙소가 넓어 각자 원하는 자리에서 휴식할 수 있었다.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근처 피자 가게에 갔다. 비엔나보다 확실히 물가가 저렴한 게 느껴졌다. 우리는 피자 두 판에 맥주를 시켜 먹었다. 음식이 맛있기도 했고, 배고프고 힘들었던 터라 더욱더 꿀맛으로 느껴졌다.
저녁을 먹은 뒤, 우리의 필수 코스인 장을 보러 갔다. 무슨 일 났나 싶을 정도로, 슈퍼마켓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바글바글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물건을 가져오는 것도 일이었지만 제일 심각한 건 계산이었다. 계산 줄은 마치 성수기 놀이공원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린 나름의 전략을 세웠다. 인원이 많기 때문에 유리했다. 효삼이가 먼저 계산 줄을 서 있는 동안, 효일과 효둘이 후다닥 살 것들을 챙겨 합류했다. 그래도 한참이 걸렸다. 겨우겨우 계산을 마친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길고 고된 하루를 마무리했다.
바쁘고 쉽지 않은 하루였지만, 그 속에서도 서로가 있어 웃을 일이 많았다. 척박한 순간들을 같이 견뎌내면서 전우애(?)가 더 깊어진 것 같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