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여행은 언제나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곤 한다. 이번 여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유럽에 오기 전, 우리는 한 가지 약속을 했었다. 싸우지 않기로, 아니 싸울 수는 있지만 금방 화해하기로. 그리고 정말 생각지도 못한 순간, 일은 벌어졌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전날 저녁, 효삼이가 아침으로 달걀양파전을 해주겠다고 했다. 효일과 효둘은 좋다고 했고, 그저 평범한 아침을 기대하며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 중 제일 아침 잠이 없는 효둘이 먼저 일어났다. 효둘은 효삼이가 요리하기 편하도록 밥도 하고, 양파도 손질해 놓았다. 뒤이어 효일이가 일어나고 한참 뒤, 효삼이가 깨어났다. 효삼인 효둘이 손질해놓은 재료로 달걀양파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효일과 효둘도 효삼 옆에 붙어 아침을 만드는 것을 거들었다.
효일, 효둘은 요식업 아르바이트 경험도 있고, 많은 것들을 함께 해왔다보니 호흡이 잘 맞는 편이다. 둘은 일을 '빨리 빨리' 하는 편인데, 효삼이는 천성적으로 손이 느린 편이고 뭐든지 여유롭게 한다. 심지어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할 때를 제외하곤 요리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주방일은 더욱 더뎠다.
효삼이는 평소 자신의 페이스대로 느긋하게 아침을 준비했다. 그런 효삼을 본 효일, 효둘은 속이 터질 것 같았다. 효둘이가 썰어놓은 양파를 달걀물에 넣고 섞기만 하면 되는데,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느렸다. 참다 못한 효일과 효둘이 빨리 좀 하라며 효삼을 다그쳤다. 효일은 고기를 굽는 데에 집중하고 있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효둘은 효삼의 옆에 붙어 적극적으로 돕고 가르쳤다.
결국, 모든 음식이 완성되었고 우리는 함께 식탁에 앉았다. 그러나 효삼의 표정은 어두웠고, 무슨 말을 하든 뚱하게 대답했다. 참다 못한 효둘이 효삼에게 물었다.
"기분이 안 좋아?"
효삼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를 묻자,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효둘 언니는 나한테만 짜증을 내. 나한테만 항상 뭐라고 하잖아. 효일 언니한테는 안 그러면서!"
효일과 효둘은 황당했다. 효삼은 잘 모르겠지만, 효일과 효둘도 원룸에 함께 살면서 많이 부딪히고 다퉈왔기 때문이었다. 효일과 효둘 모두 그건 오해라 말했지만 효삼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내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는데 효둘 언니가 옆에서 한숨 쉬고 다그치는 게 너무 기분 나빴어."
그 순간, 효둘도 참았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
"효삼이 너 힘들까봐 아침부터 재료 손질해놓고, 옆에 붙어서 계속 도와줬는데... 그렇게 들으니까 나도 되게 기분 나빠! 효일 언니보다 너를 얼마나 더 신경 쓰고, 잘해주려 노력했는데... 내가 효일 언니한테는 못 그러고 너한테만 큰 소리 냈다는 거야? 대체 나를 어떻게 생각했던 거야?"
효둘은 어렸을 때부터 엄마처럼 효삼이를 돌봐왔었다. 그렇기 때문에 효삼이의 말이 너무 괘씸하게 느껴지고, 크게 상처가 됐다고 했다. 효둘도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고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졌다. 효일이는 중간에서 두 사람을 화해시켜려 노력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은 주워담을 수가 없었다. 원래는 아침을 먹고 수영장에 갈 생각이었는데, 모든 게 어긋나면서 우리는 하루동안 따로 다니기로 했다.
효일은 일단 효삼의 이야기를 들었다. 효삼이는 어릴 때부터 '언니들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들어왔기에 '언니들 말이 다 맞다'고 생각하며 언니들한테 모든 것을 맞추려고 노력해왔었다고 했다.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하다보니 자신의 의견을 내기 어려웠다고 했다. 게다가 매번 효일, 효둘에게 빨리 빨리 좀 하라는 이야길 들어왔다 보니 여행 내내 자신의 행동이 폐가 될까 걱정하며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털어 놓았다. 그런 불안감이 쌓이고 쌓여 오늘 아침의 사소한 일로 폭발한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효일은 어릴 때부터 동생들에게 강압적으로 대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본인이 얼마나 동생들을 몰아붙였는지, 특히 효삼이를 얼마나 자신의 기준에 맞추려 했는지 알게 되었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효일의 여행이 편했던 것은 무심하게 받아들였던 효둘, 효삼의 양보와 배려의 결과였던 것임을 깨달았다.
효일은 거리를 돌아다니며 효둘과 효삼을 위한 작은 선물을 샀다. 마음을 눌러 담아 카드도 썼다. 선물과 카드를 받은 효둘과 효삼 모두 고마워하긴 했지만, 서로에 대한 감정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효일이는 효둘에게 산책을 가자고 했다.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유명한, 국회의사당 야경을 보며 효일과 효둘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효일이는 효둘에게 부탁했다.
"네가 언니니까 효삼이한테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어 주면 좋겠어"
효둘은 단호하게 싫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몇 번의 부탁 끝에 못 이기는 척, 결국 효삼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다. 역시나 따뜻한 효둘이었다. 절대 풀어지지 않을 것 같던 효삼도 효둘의 말에 스르륵 풀렸다.
갈등이 있었지만, 우리는 결국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며 더 단단해졌다. 여행은 단순히 새로운 곳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마음을 마주하고, 이해하며, 성숙해지는 과정이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우리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여행에서의 갈등은 어쩌면 피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있다.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그 답을 찾았다.
이 글은 마음을 담아 쓴 작은 기록이다. 앞으로 우리 자매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에게 더 따뜻한 존재가 되길 바라며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