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것들이 하루에 다 이뤄졌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숙소 근처에 부다페스트의 유명한 전통시장, '그레이트 마켓홀'이 있어 아침도 해결할 겸, 다녀왔다.
다양한 먹거리를 기대하며 설렜지만, 푸드코트에서 파는 음식들은 생각보다 비쌌다. (식자재는 모르겠지만, 푸드코트에서 파는 음식들은 꽤 비싼 느낌이었다.)
일단 배가 고파 셋이서 메뉴 두 개를 시켜 나눠 먹었다. 굴라쉬와 헝가리식 소세지가 들어간 핫도그 같은 걸 사 먹었다. 특별하게 맛있진 않았다. 핫도그는 기대했던 핫도그 맛이었고, 굴라쉬는 짜고 맵게 먹는 우리에겐 어딘가 부족한, 밍밍한 맛이었다.
허기를 달래고 1층 식재료 매장들을 구경했다. 바나나와 방울토마토를 사서 돌아가려는데 감자 귀신, 효둘이가 '트러플 감자칩'을 발견했다. 큰 기대없이 사 먹었는데 진짜 맛있었다. (발견하면 꼭 한 번 드셔보시길!)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효둘, 효삼이가 버블티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근처 버블티 매장을 찾아 갔는데 중국 음식도 파는 전문 차이니즈 레스토랑이었다. 버블티 종류가 많아 효삼이 고민을 하고 있으니 중국 유학을 다녀온 효둘이 추천을 해줬다. 효둘의 추천대로 버블티를 시키고, 우린 야외 테이블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날씨가 좋았다. 효일이는 버블티를 좋아하지 않아 마시지 않았고, 효둘과 효삼이는 하나의 버블티를 사이좋게 나눠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숙소에서 잠시 쉬었다 나와서 '공포의 관’을 찾았다. 공포의 관은 헝가리가 사회주의에서 벗어난 역사를 담고 있는 박물관이다. 그 시대의 어두움과 잔혹함, 그리고 그 안에서 빛난 희생을 보여주는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국어 설명은 없어서 사전 지식이 부족한 우리가 접근하기엔 쉽지 않았다. 열심히 파파고를 돌려 보았지만, 오류가 많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역시와 비슷한 부분이 있어 시대의 고통과 희생의 가치를 공감할 수 있었다. (헝가리어나 영어가 능숙하지 않다면, 미리 어느 정도 공부를 하고 가시는 것을 추천!)
그리고 하이라이트! 헝가리 국립 오페라 하우스에서 발레 <Mayerling> 공연을 보았다. 다른 공연 일정을 물어보려고 간 거였는데, 당일 발레 공연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망설임없이 스탠딩석을 예약했다. 매표소 직원 분이 세 명 모두 학생 할인을 해줘서 저렴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공연 시작까지 시간이 남아서 조금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효삼이 찾은 베트남 음식점에 갔다. 대성공이었다. 맛도, 양도 풍성했다. 우리는 그 어느것도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 먹었다.
<Mayerling>은 1889년에 자신의 연인을 살해하고 스스로 권총 자살한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루돌프 이야기인데 정말 재밌었다. 서서 보는 거라 다리가 좀 아프고, 공연 매너가 없는 사람들 때문에 살짝 괴로웠지만 인내하고 관람할만한 가치가 있었다.
무용수들의 섬세하고 우아한 동작은 공기처럼 가벼웠고, 모든 장면이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발레의 아름다움에 눈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공연의 깊은 여운에,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 내내 발레 동작들을 따라했다. '돈 많이 벌어서 다음에는 꼭 앉아서 보자'고 다짐하며 서로의 엉성한 모습에 깔깔 웃다보니 금방 숙소 근처에 다다랐다.
효둘이 맥주를 마시고 싶다고 했다. 슈퍼를 찾아 한참을 돌아 다녔는데, 헝가리는 밤 10시부터 아침 7시까 술을 팔지 못한다고 했다. 실망하고 돌아가려는 찰나, 직원이 우리를 불러 세웠다.
"숨겨서 갈 수 있겠어?"
그는 계산대 밑에 있던 개인 냉장고에 있던 술을 꺼내 주었다. 완전 오브콜스, 와이낫이었다. 어쩐지 우리는 그와 엄청난 비밀을 공유하는 친구가 된 것 같았고, 예상치 못한 행운에 행복해졌다.
효일은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효둘과 효삼은 배가 고프다고 했다. 숙소에 도착한 효둘과 효삼은 금세 콘치즈를 만들었다. 그걸로는 부족해 육개장 사발면에 물을 부어 허겁지겁 맛있게 먹는 둘을 본 효일은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효둘, 효삼이 배고프다고 할 때마다 '뭐가 배가 고프냐'며 타박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효일은 한정된 시간과 재화에, 제일 먼저 자신의 식사시간을 포기하는 사람이었기에 식사시간이 불규칙했다. 굶는 게 익숙한 효일은 때마다 배고프다고 하는 효둘, 효삼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먹는 것은 단순한 욕구가 아니라, 그만큼 중요한 일상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은 효일이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효둘, 효삼이 배고프다고 하면 그게 몇 시든 맘껏 먹을 수 있게 해줘야지, 먹는 걸로 치사하게 굴지 말아야지'하고 결심했다고 했다.
맛있는 음식, 멋진 전시와 공연, 그리고 작은 깨달음으로 채워진 부다페스트에서의 하루가 그렇게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