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처없이 떠도는 우리? 어쩌면 유러피안 같을지도?
효둘과 효삼의 극적인 화해로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이 밝았다. 전날 가지 못했던 온천을 갈까 했지만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다. (각자 여행 예산이 300만 원씩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격을 늘 신중하게 고려해야 했다.) 우리 셋은 머리를 맞대고 한참을 고민한 끝에 "차라리 그 돈으로 더 재밌게 놀자!"는 만장일치 결론에 도달했다.
부랴부랴 수영 가방을 싸고 있었는데, 온천을 가지 않게 되니 아침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우리는 느긋하게 버터에 빵을 구웠고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고 햄을 구워 풍족한 아침 식사를 즐겼다. 배를 든든하게 채웠더니 새로운 하루를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간만에 한껏 꾸미고 나니 자신감도 붙고 마음이 들떴다. 날씨마저 좋았다.
전날 효둘은 혼자 다니면서 쇼핑을 했다고 했다. 숙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쇼핑 거리가 있었다. 효둘은 그곳에 저렴하고 질 좋은 옷이 많았다며 다시 가 보자고 했다. 효일, 효삼은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드렸다. 효둘과 효삼은 마음에 드는 원피스를 하나씩 득템했다.
거리에는 활기가 넘쳤다.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고, 곳곳에서 웃음꽃이 피어났다. 사람들은 충만해보였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구경하며 걸었다. 예쁜 풍경을 마주칠 때마다 우리는 멈춰 서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사진 백만 장 정도를 찍고 수다를 떨다보니 금세 국회의사당 앞에 도착했다. 어젯밤 반대편에서 본 야경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국회의사당이라는데, 문득 저 건물로 출근하는 사람들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자신의 직장을 둘러싸고 감탄하는 사람들을 보며 뿌듯함을 느낄까, 아님 일반 직장인들처럼 피로함과 무료함을 느낄까? 우리는 이에 대한 가벼운 토론을 하다 다시 산책을 이어갔다.
(추가 꿀팁 : 헝가리 국회의사당 내부도 구경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도 있다고 하니 미리 예약해서 방문하시면 좋을 듯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효삼이가 먹고 싶어 하던 간식도 사 먹었다. 굴뚝빵에 초코를 바르고 아이스크림을 잔뜩 채워넣은 디저트였다. 딱 봐도 칼로리 폭탄이라 하나를 사서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너무 커서 먹을 때마다 입 주변이 엉망이 되었다. 우리는 초콜릿 범벅이 된 서로의 입가를 보며 낄낄거렸다. 달콤한 행복이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화장품 가게에 들러 얼굴 크림을 두 개나 샀는데, 생각보다 지출이 적어서 공금이 꽤 많이 남았다.
우리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파스타를 만들고 고기를 구웠다. 맥귀(맥주귀신) 효둘이는 시원한 맥주를, 효삼이는 달콤한 애플 주스를, 효일이는 비엔나에서부터 챙겨온 코크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 했다.
사실 밥을 먹고 나가서 야경을 보기로 했었는데, 다들 피곤해서 포기하고 말았다. 크로아티아 여행 일정을 짜고 짐을 챙기다 보니 새벽 한 시가 넘었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 갈까 하다가 '스플리트'라는 아름다운 해변 도시를 가보기로 했다. 헝가리에서 크로아티아로 가는 기차가 오후 3시에 하나뿐이고, 자그레브에서 스플리트로 가는 기차도 오후 3시에 하나뿐이라 자그레브에서 어쩔 수 없이 1박을 해야만 했다. 유레일도 하루 치를 더 써야하고, 가는 시간만 30시간이 걸리는 긴 여정이지만, 품이 많이 들어서 가는 곳인 만큼 마냥 좋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헝가리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