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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 가는 기차에서 만난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들

인복 많은 워니고니 전사들

by 사과

드디어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 가는 기차에 올랐다.


집채만한 캐리어의 바퀴가 고장나 끌지 못하고 들고 다니는 마당에, 추적추적 비까지 내려 기차에 탑승하기까지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티켓 구매를 도와준 친절한 청년과 최선을 다해 우리를 접객해준 카페 직원 덕분에 마음은 고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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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날 찍은 사진이지만... 바퀴 상태가 정말 심각했다.


기차에 올라 표를 확인해 보니 한 명은 다른 칸을 써야했다. 우리는 가위바위보로 누가 다른 칸으로 갈지 정했다. 결국 효둘이 져서 혼자 다른 칸에 탔다. 열차 칸은 떨어졌지만 근처였다. 효일과 효둘은 혼자 떨어진 효둘이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워니 고니의 전사로서 별일없이 늘 그렇듯 잘 해낼 거라 믿었다.

효둘이는 어떤 모자와 함께 방을 썼는데, 조금 시끄러웠다고 했다. 효일과 효삼은 할아버지 한 분과 남자 청년 한 사람과 같은 칸을 썼다. 할아버지도, 청년도 아주 섬세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거의 5분에 한 번씩 흡연을 하러 나갔다. (흡연실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복도에서 창문을 열고 피는 것이다.)
처음엔 문을 꽉 닫지 않고 가서 칸 안으로 담배 냄새가 그대로 들어왔다. 비흡연자인 우리는 죽을 맛이었다. 할아버지와 청년은 우리가 담배 냄새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을 눈치채곤 문을 꼭 닫고 다녔다. 심지어 문이 잘 닫혔는지까지 꼼꼼하게 살폈다.


우리가 탄 기차는 마주보고 있는 좌석을 붙여 침대처럼 이용할 수 있었다. 사람은 네 명인데 좌석은 여섯 개였다. 즉, 침대처럼 이용할 수 있는 건 단 세 개 뿐이었다. 청년과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침대를 양보했다. 두 사람은 이동하는 내내 눕지 못하고 서로 마주보고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괜찮다며 양보하려고 했지만, 두 사람은 괜찮다며 편하게 자라며 배려해 주었다. 잠든 효삼이 불편함에 뒤척이자 청년은 가지고 있던 자신의 후드를 접어 베개처럼 만들어 주었다. 효삼은 그의 후드 베개를 배고 꿀잠을 잤다.


할아버지가 먼저 내리고, 우리는 용기를 내어 청년의 이름을 물었다. 이름은 니콜라였고, 28살이었다. 그는 몬테네그로 사람으로, 줄곧 기계를 다루다가 커피를 좋아해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했다. 우리는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재미있었다.

니콜라는 아버지의 묘지에 쓸 커다란 돌을 사러 세리비아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세르비아인들이 되게 괜찮다고 했다. 그러면서 불가리아인들은 '뒤에서 칼 꽂는 애들'이라는 농담을 던졌다. 몬테네그로 사람들은 불가리아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터키인들을 안 좋아하는데 우리나라와 일본처럼 불편한 역사가 얽혀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지인한테 듣는 새로운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니콜로가 우리나라와 일본의 역사를 알고 있는 것 또한 신기하게 느껴졌다. 효삼과 니콜라는 인친(인스타그램 친구)이 되었다. (효일이는 인스타 아이디가 없어서 함께하지 못했다.)


IMG_6020.JPG 우리의 니콜라


니콜라는 우리보다 먼저 내렸다. 우리는 그에게 조심스레 악수를 청했다. 그는 자신의 손에 땀이 났다며 괜찮냐고 물었다. 우리는 '전혀 문제 없다'고 대답했다. 그럼에도 니콜라는 자신의 바지춤에 손을 몇 번 닦고 우리의 손을 잡았다. 세심하고 배려깊은 니콜라. 우리는 그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니콜라도 끝까지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우리는 정말 인복이 많다. 과묵하지만 우리를 세심하게 신경 써주신 할아버지와 밝고 친절한 니콜라 덕분에 편안한 기차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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