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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Jan 20. 2023

명절증후군

명절마다 찾아오는 히스테릭! 신경증!


이번 명절에도 시작 전부터 긴장하고 있었다. 시부모님으로부터 갑자기 훅 들어오는 공격과 잽에 무방비로 당하고 괴로워하지 말고, 방어해 보자라고 다짐했었다. 

벌써 결혼 14년 차 이제는 방어도 할 수 있는 노하우가 많이 생겼다. 

그 순간 방어하지 못하면 내 마음이 뒤틀려서 다른 방식으로 상대방을 공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자녀 외모와 나의 외모로 공격을 하면(시아버님은 아이 다리가 못생겼다면서 너 닮았냐고 직접 물어보신다. 다리가 왜 이렇게 짧아? 너 닮았냐? 이런 식으로)  공격받는 당시에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방어하진 못하지만, 

다른 대화 중에 싫은 내색을 하거나 나만의 소극적인 방법으로 당신이 싫다고 표현하게 된다.(작은 반항으로) 


직접적으로 '당신들의 말에 기분이 나쁘고 속상하다'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러면 내가 약함을 나타내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내 맘을 속상하게 했다 생각할까 싶어서. 


나의 감정이 속상하고 억울하다는 것을 말하지 못하기에 자꾸 당하고 있다. 그냥,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 기분 안 좋아요"라고 솔직 담백하게 누구도 비난하지 않고, 그 어떤 부분도 건드리지 않고, 그냥 사실을 말하면서 갈등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을 알지만 한 번도 써먹어 보지 못했다. 


감정을 말할 때 "짜증 나요, 열받네요" 이렇게 말하는 것은 갈등을 일으키고, 

"기분이 안 좋네요, 속상하네요 억울하네요" 등이 좋겠다. 


그런데, 이번에도 어이없는 부분에서 공격이 들어왔는데, 이제는 시어머니와 남편이 협공으로 들어와서 남편과 갈등으로 불이 번져갔다. 

나: "(공공임대 아파트에 살고 계시는데 곧 분양받을 수 있는 시기가 오고 있어서) 요즘 집값이 떨어지고 있으니 1~2년 뒤에 분양받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요"

시엄마:"22평형 사는 사람은 분양받아서 팔 거라고 하더라. 그렇게만 해도 돈을 좀 번다고 했대"

나: "네, 그렇게 할 수도 있겠죠" 어머님도 분양받으시면 좋을 거 같아요"

시엄마: "24평은 안돼, 22평이랑 차이가 많아서 안돼"

나: "22평이나 24평이나 별 차이 안 나요"

시엄마: "아냐, 많이나"

나: "별로 차이 안 나요"

시엄마: "아냐! 많이나, 내가 22평 그 집 가봤는데, 차이가 많이 났어"

나: "저희 친정어머니도 22평 이번에 분양받으셔서 제가 모델하우스 봤었는데, 저희 집이랑 별로 차이 안 나더라고요"

이때 남편이 어디선가 등장한다. 

남편: "차이 많이나!"

나: "거의 비슷해, 요즘 짓는 아파트는 평형이 잘 빠져서 "

남: "차이 많이나!"

나: "그렇게 큰 차이 안나"

남: "아! 차이 많다고"

나: "그럼 22평은 분양받고, 24평은 분양받지 못할 차이라는 거야?"


이런 식의 대화들이 오고 간다. 이때 어머님과 남편은 한편이 되어 계속 차이가 많이 난다고 하고 있고, 나는 혼자서 별차이 안나다고 했다. 그냥 아무 말 안 하고 있기 어색해서 어머님께 말을 건넨 건데 대화 나누다가 갑자기 공격이 들어왔다. 

솔직히 이 대화에서는 문제는 갑자기 논점을 벗어나서 엉뚱한 것으로 태클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차이가 많고 적고는 사람마다 갖고 있는 생각과 기준에 따라서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적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남편은 그 이후에 핸드폰으로 2평 차이가 몇 제곱미터인지 자료를 찾아와서 설명하였다. 정말 속에서 열불이 났다. 어머님은 이렇게 남편과 함께 나에게 반박할 때 아주 기분이 좋으신 거 같다. 

나는 역시 남의 편인 남편을 보고, 어머님이 오늘도 나에게 반박하면서 '너의 말은 안 들을 거야, 너에게 난 불만이 있어'라는 표현을 에둘러하시고 계신 건가? 생각했다. '우리 아들도 나랑 같은 편이야'라고 생각하면서 기분이 좋으셨으려나. 나중에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우리가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 줄 아느냐. 대화 맥락도 모른 채 끼어들어서 무조건 차이가 많이 난다고 하느냐. 차이야 각 사람이 보기에 따라서 자신의 기준이 다르니 많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고 적게 느끼는 사람도 있는 거 아니냐. 대형평수를 사는 사람들이 보면 차이가 안 난다고 느끼는 것처럼"이라고 얘기하자 본인은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몰랐다고 한다. 그리고 그냥 차이가 나는 거니까 나는 거라고 했을 뿐이라며 끝까지 본인이 옳은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  


정말 어이없는 대화이지만, 

대화의 시작은 아파트 분양받으시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의견을 냈었는데, 주제를 벗어나서 갑자기 22평과 24평은 큰 차이가 난다고 하시며 그래서 받을 수 없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위 상황이 되었을 때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지혜롭게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니 차이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죠. 하지만, 분양받는 것에서는 둘 다 작은 평수이니 별 차이 없다고 생각해요. 혹시 분양받고 싶지 않으세요? 또는 돈이 부담이 되셔서 그러세요?'라고 다른 식으로 질문을 던졌어야 하는데, 늘 반복되는 공격에 이번에도 어김없이 패배하고 만다. 또 이런 식으로 공격하고 싶어 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이미 화가 나버려서 이성을 잃어버렸으니. 


그런데 이런 식의 대화가 자주 이어진다. 내가 남편과 대화를 나누다 의견차가 생기면 어머님이 와서 무조건 남편 편을 든다. 그리고 아닌 게 확인되면 '아니면 말고' 얼렁뚱땅 넘어간다. 

또는 내가 어머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의견차가 생기면 남편이 와서 어머님 편을 든다. 그러고 아닌 게 확인돼도 "어? 그래?" 그런 후 그냥 넘어간다. 

늘 비슷한 식이었다.  

내가 국을 반찬통에 옮겨 담고 있었다. 내가 반찬통을 하나 선택하여 여기에 담으면 되겠다고 하면, 

어머님이 "안돼! 거기 안 들어가." 하며 막으신다. 

나는 "들어갈 거 같은데요?" 하면

"안돼! 이것아 안 들어간다니까!" 그러면서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하신다. 들어갈 수 있어 보이니까 "나는 들어갈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그럼 남편도 와서 "안 들어갈 거 같은데?"라고 한다. 

내가 통에 국을 붓는다. 국이 잘 들어가고 공간도 남는다. 

그러면 "어? 들어가네.." 그러고 그냥 가신다. 


또 한 번은 어머님이 구이 김 낱개로 포장된 것을 주셨다.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김이 몇 개야? 30개인가?"라고 질문해서 내가 "45개인 거 같은데?"라고 답했다. 계산한 게 아니라 그냥 30개는 훨씬 넘고 짐짓 곱셈으로만 대략 말한 거였다. 

남편: "아니, 30개야 3개씩 5개씩이잖아 " 

김은 가로 3개 세로 5개 높이 3개로 총 45개였다 

나: "그러니까 45개지" 

라고 말하는데 남편이 "아니야 30개지"라고 대답했다. 

이때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서 등장하신 어머님은 

바로 "30개야!"라고 하신다. 다짜고짜 와서 아들 편을 든다. 

남편도 힘을 얻어서 "3개 5개니까 30개지 "

어머님도 "이거 30개 맞아" 그런다. 

내가 그냥 아무 말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잠시 뒤 남편이 계산이 되는지 "아, 45개네"라고 했다. 

그러면 어머님은 그저 "그러니?"라고 하시면 그만이다. 세본적도 없으면서 무조건 아들 편을 들면서 나를 공격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이때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무조건 아들 말에 동조하면서 나에게 '너는 틀렸어'라고 얘기하고 싶으신 듯하다. 



이런 갑자기 들어오는 공격에 어찌 방어하지 못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렇게 당하고 오면 기분이 너무나 안 좋다. 남편도 미울뿐더러 어머님은 내가 싫은가 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기운이 빠진다. 


내가 최근에서야 시어머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지에 대해 느끼게 되었는데, 그건 나의 친정엄마가 며느리에게 하는 것을 본 뒤였다. 남동생은 늦게 결혼하여 최근에 아기를 낳았다. 엄마는 결혼 전부터 며느리 칭찬을 많이 했었고, 자신은 며느리에게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고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할 뿐이라고 얘기하곤 하셨다. 그런 엄마가 최근 나에게 전화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못된 것인지 며느리가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으니 네가 한번 말해보라"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하시는 얘기가 며느리네 아파트에 한동안 온수가 안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아기 목욕시키기에 어렵고 하니 어머님댁에서 일주일 정도 지내려고 하는데 괜찮냐고 연락이 왔다고 한다. 그런데, 엄마는 그 말에 "그러면 니 남편은 어쩌고?"라고 하셨다. 며느리는 "애 아빠는 집에서 지내고 저만 가려고요" 했다고 한다. 


나는 이 대화에서 아무런 문제를 못 느꼈다. 같이 아기를 키우는 엄마이기에 공감이 되었다. 그런데, 엄마는 며느리가 자기 아들 밥 챙겨줄 생각도 없고, 자기 아기만 돌볼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말이 되냐며 화가 나셨었다.  " 남편 밥 챙겨주지도 않고, 아예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더라"라고 하시며 화를 내셨다. 


이 대목에서 나 역시도 남편 아침밥 챙겨주지 못하고, 저녁도 간단하게 챙기고 있기 때문에 우리 시어머니도 이런 걸로 화가 나셨으려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아침에 남편이 일찍 나가면 챙겨주기 힘들기도 하고, 챙겨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냉장고에 이미 넣어 놨으니 아침에 본인이 덥혀서 먹기만 하면 된다 생각했는데, 어르신들은 남편 출근 전에 식탁에 음식 차려놓고 한 술이라도 뜨고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길 원하시는 듯했다. 


입장을 바꿔서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내 아들들. 내 아들의 짝. 며느리가 내 아들의 밥을 못 챙겨 주고 있다면 나는 화가 날까? 내 아들이 아침밥도 못 챙겨 먹고 다니니 속상하고 슬플까?

음.. 전혀 슬프지 않다. 본인이 챙겨 먹을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생각이 바뀌나? 그건 모를 일이지만 나는 내 아들들이 자기 밥을 챙겨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옛날 우리 엄마도 잠이 더 고팠던 나를 밥 한 술이라도 떠먹여 보내려고 늘 식탁에 음식을 차려놓고 기다리셨다. 항상 몇 숟가락 못 뜨고 가거나 "배 안 고파" 하며 그냥 간 날도 있었다. 그런 우리인데도 엄마는 아침 밥상을 차려놓고 먹이기 위해 인생을 사는 사람처럼 정성을 다하셨다. 엄마의 밥상이 맛이 없었고,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라고는 하나 없는 건강밥상이었던 탓도 있고, 야간자율학습하고 돌아와서 좀 놀다가 잠들면 이미 12시가 넘어서 늘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었던 탓도 있다. 

그런데 우리 시어머니도 그러셨을 테고 모든 엄마들은 자녀 입에 음식 들어갈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하시는데 그래서 그런 것이겠지? 

나도 내 아이들 입에 음식 들어갈 때가 가장 기분이 좋다. 보람을 느낀다. 아들이 엄마 이 음식 다음에 또 해줘라고 말하면 식약처 인증이라도 받은 거 마냥 뿌듯하고 힘이 난다. 


친정엄마의 며느리를 향한 뾰족한 눈을 보면서 우리 시어머니도 그러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면전에 대고 다 말하지 않고 속으로 끙끙 앓으셔서 14년 동안 모르고 지낸 것이지, 엄청난 불만이 많으셨겠다 싶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공격을 예상하고 있어서 놀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그냥 내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갈등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참, 한 번은 나도 공격을 한 적이 있다. 

어머님과 통화 중에  "아버지가 장을 봐왔는데, 다 맘에 안 드는 것만 사 왔어 아몬드도 그냥 아몬드 사야 하는데, 가염아몬드로 사 오고, 블루베리도 비싼 걸로 한 통 사 오고 그래서 가서 바꿔오라고 했어라는 얘기를 하셨다.  

"어머님은 자주 그러신 거 같다. 아버님이 사 온 거에 잘 사 왔다 맘에 든다 한 적이 없다.(아버님에게 장 봐달라고 부탁을 많이 하시는데, 매번 우리 앞에서 왜 이걸 샀냐며 늘 혼내셨다) "라고 공격했다. "그냥 먹어도 되는 거 아닌가요? 가염아몬드가 더 맛있어요. 블루베리도 비싼 철이어서 그럴 거예요" 다시 가서 바꿔올 만큼 (차로 20분 가야 하기에) 큰 문제도 아니기에 그렇게 말했었는데, 그것이 싫었어서 나중에 복수하셨던 걸까? 


나는 엄마와 대화 나눌 때 항상 사실 그대로를 말했다. "엄마도 잘못한 게 많잖아. 아빠 항상 무시했잖아" 

그러면 엄마는 아니라고 하면서 아빠가 잘못한 게 더 많다고 말한다. 

한 번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 이런 식으로 인정한다. 네 아빠가 이러이러한 행동과 말을 했는데 라며 아빠의 나쁜 점을 쭈욱 나열한다. 자신의 행동은 덜 나쁘다는 것을 어필하려고 하신다. 


나도 그렇지. 생각해 보면 나도 남편과 다툰 뒤 나의 잘못을 얘기했을 때 인정은 하지만, 그래도 나를 변호하며 변명을 댄다. 내가 남편에게 잘못하긴 했지만, 남편이 그런 행동을 안 했다면 나도 그렇게 하진 않았을 거야라고 말이다. 암튼 쓰다 보니 나의 잘못만 생각나서 뭐 별로 건질 게 없다. 


명절 증후군을 한 번에 해결하게 해 준 사건이 있다. 지인과 통화하다가 명절 잘 지냈냐고 질문하게 되었다. 지인은 몇 개월 전에 유일한 친정 가족인 아빠를 갑작스레 잃어서 슬픔과 충격에서 아직 벗어 나오지 못한 상태였다. 남편이랑 두 자녀도 있었지만, 형제도 없어서 천의 고아가 된 듯한 뼛속에서 올라오는 외로움이 불현듯 찾아오곤 했다. 시간이 지나야 할 일이기에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이겨내고 있었는데, 이번 명절이 아빠 없이 맞이한 첫 명절이어서 더 괴로웠다고 했다. 

'삐뚤어질 테다'라는 마음이 생겼었고, '나는 아빠도 없고, 가족도 없고, 갈 데도 없어'.라는 마음으로 시댁 식구들에게 쌀쌀맞게 되었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고 한다. 그렇게 추석이 지나고 나니 다시 괜찮아졌는데, 추석이라서 더 심술 맞아졌었단다. 

그 얘기에 내 무릎을 탁 치면서 갑자기 내 상황도 해석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 명절이 되면 자신의 아픈 곳이 떠오르는 것 같다. 우리 시어머니도 아들을 하나 잃었었는데, 명절마다 더 생각났었으리라 싶었다. 남편 만나기 10년 전에 일어난 일이니 나는 그 사실을 들었어도 나에게는 이미 없는 존재였기에 전혀 빈자리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 시부모님 마음에는 언제나 빈자리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내가 얄밉고, 나에게 못되게 굴면서 자신의 마음을 달래 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남편 역시도. 


우린 명절이 되면 가족들을 생각하며 묵혀 둔 해소되지 않은 감정들이 올라온다. 행복하고 밝은 추억만 남아 있는 가족은 없는 것 같다. 아프고 어두운 기억들이 더 많고, 갈등이 많은 곳이 바로 가정이다. 그래서 명절만 되면 그렇게 힘이 든다. 명절 전부터도 스트레스로 힘이 들고, 지나고 나면 며칠은 명절 후유증으로 힘들다가 차츰 시간이 더 지나야 회복이 된다.   


아는 지인이 참 고상한 분이신데, 명절만 되면 몸이 아프다고 하셨다. 꾀병이 아니라 진짜 병이 난다고 하셨다. 명절에 겪을 일을 생각하다 보면 스트레스로 결국엔 명절 당일에는 몸에 병이 난단다. 지인의 남편은 좋은 남편이었다. 아내가 꾀병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구나 생각하고 아내 편을 들어주고 시댁에서 아내를 보호해 주려고 노력한다고 하셨다. 


명절이 힘든 것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고, 가족이 힘든 것은 비단 나의 경우만은 아닐 것이다. 

늘 명절을 맞이하면서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아직도 나는 여기에 멈춰져 있었구나, 아직도 묵은 감정이 용서가 아니라 그대로 있었구나 싶어서 내 마음속을 다시 정리한다. 

나의 묵은 감정과 상처와 미움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나는 그때 그 말과 행동들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았고, 상처가 되었고, 잊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난 그들을 용서하길 원한다. 아직도 그 사람들은 변하지 않았고, 변하지 않을 것이고, 이런 공격이 반복된다고 해도 나는 그냥 그들을 용서하는 것을 선택한다. 

그들의 행동과 상관없이 나의 마음이 편하고 싶어서, 그들을 놔주고 싶어서 매번 용서를 선택할 것이다. 그렇게 명절마다 내가 치르는 의식이 되었다. 

이번 명절에는 공격을 미리 예측해서 상처받지 않고 대처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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