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암 수술로 갑상선을 잃은 지 1년 반이 지났다. 우리 몸에 불필요한 기관이 어디 있겠냐마는 갑상선은 호르몬을 만들어 내는 기관으로 매우 중요하고 소중한 기관이었다.
감사하게도 호르몬 약을 통해 갑상선이 없어도 살 수 있었기에 여태껏 아무 탈 없이 지내올 수 있었다. 호르몬 약이 만들어지는 현대 사회를 살고 있음에 감사하다.
물론 수술하고 난 뒤로 쏟아져 오는 잠과 피로감은 상상이상으로 힘들 정도이다. 그나마 나는 직장을 안 다니고 있었으니 다행이지 싶었다. 어느 정도로 피로한 지 한 예로 설명해 주겠다. 밤 10시부터 오전 7시까지 통잠을 자고 일어나서 눈을 뜨는데 눈이 밤새 일한 사람처럼 뻑뻑하다. 머릿속은 밤새 일한 사람처럼 피곤해서 지금 다시 자러 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 밥을 챙겨주고 나도 아침을 먹어야 하는데, 내 몸상태는 밤샘한 사람처럼 너무 졸리다.
간신히 아침을 챙겨서 아이들을 보내고 나서 나도 밥을 먹으려 준비하는 데, 밥을 먹어야 할지 아니면 자야 할지 갈등이 온다. '밥 먹고 나서 바로 자야겠다' 결정을 하고 냉장고 문을 여는데 그 순간, '앗! 아니다. 지금 바로 잠을 자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면서 결국에 곧장 침대로 향해서 2시간 가까이를 자고 일어났었다.
이런 상황이 며칠에 한 번씩 찾아왔다. 그리고 오후 3~4시쯤이 되면 이런 상태가 되었다. 바깥에서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중에도 시도 때도 없이 이런 피로 상태가 찾아온다.. 그러면 쏟아지는 졸음을 버티며 참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확실히 안다. 무조건 잠을 자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이제는 갑상선 없는 내 몸에 적응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갑자기 찾아오는 피로감을 카페인으로도 당분으로도 충분한 잠으로도 운동으로도 해결하려 하지 않고, 잠깐 쪽잠(낮잠)을 자주면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밤에 잠을 늦게 잔다면 당연히 더 피로하겠고, 반드시 잠을 충분히 짜줘야 한다. 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생활 습관이 필요하다. 그리고 운동도 꾸준히 매일 해주어야 한다. 식사도 건강식으로 먹고, 술과 담배는 생각도 하지마다. 그렇게 관리를 해도 피로가 쏟아져 오기 때문에 수술 후 1년 이상은 이렇게 낮잠을 자면서 버텨내야 한다.
1년 반이 좀 지나니 호르몬 약에 적응이 되는지 한결 나아졌다. 낮잠 없이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그리고 중요한 팁 하나 더!
하루에 사용해야 할 에너지의 파이를 남들보다 20퍼센트 정도 못 쓴다고 생각하라.
남들보다 남은 파이가 적으니 에너지가 적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명심하고, 너무 많은 일정을 잡거나 많은 활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 하루에 에너지를 다 쓰는지 않고 얼마를 남겨 놓은 채 잠이 든다고 생각해야 한다.
아직 잠이 오지 않고 에너지가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져도 잠자리로 직행해야 한다. 그리고 거의 곧바로 잠이 들게 될 것이다.
수술 이후에는 더 사람 만나는 횟수도 줄이고, 꼭 반드시 만냐야 하는 사람이 아니면 만나지 않게 되었다. 그 한 사람을 만남으로 인해 나의 소중한 하루를 통째로 보내야 하는 것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살려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사람도 만나고, 어디도 다녀오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수 있지만, 갑상선 없는 나는 내 루틴으로 살아야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 한 번씩 일탈한 뒤에는 다시 정상궤도로 돌아오는데 시간이 한참 걸린다.
그만큼 나의 작은 시간 파이가 소중하게 느껴지게 되었다. 남들보다 줄어든 하루인 만큼 더 아끼고 아껴서 사용한다.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다. 지금은 해야 할 일들을 꾸준히 비슷하게 유지하게 한다. 루틴을 만들어서 꾸준히 하고, 새로운 것은 한 두 가지 정도로만 추가한다.
목소리도 수술 후에 확연히 달라졌다. 목이 쉬었고 노래를 부르면 고음이 잘 안 나오고 나오더라도 아주 작게 나온다. 게다가 멀쩡하다가도 목이 빨리 쉬어버린다. 말을 많이 하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고(원래 말을 많이 하면 몹시 피곤했고, 목도 잘 쉬었다) 말을 적게 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며칠 전에 아이 친구 엄마와 5시간 가까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이들이 5시간 가까이 어울려 놀게 되어서 나도 그 자리에 앉아서 함께 얘기를 나눠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얘길 나누고 온 뒤 열흘간 목소리가 안 나와서 몇 배나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일단 요정도의 어려움이 있다. 탈모, 건조, 뱃살 늘어남, 소화불량 몇 가지 더 있지만, 그것은 다음 기회가 되면 나누겠다.
그래도 갑상선 없이 살 수 있음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