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본디 빠릿빠릿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도 여자이기에 멀티가 가능했고, 내 눈앞에 없어도 목소리나 대화나 사건만으로도 상대방의 감정을 읽고 예상할 수 있다.
아니 난 어쩌면 토끼로 자랄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었다. 두 살 많은 언니가 있다. 그리고 한 살 어린 남동생도 있다. 내가 돌이 좀 지나자 웬만한 말을 다 할 수 있었다고 엄마는 자주 얘기했다. 이웃집 아줌마가 우리 집에서 내가 말하는 것을 보고 참 신기하다라고 하셨다는 얘기까지.
지금은 말을 참 못 한다. 말이 버벅거리며 나오고, 어휘도 아주 단순하고 쉽다. 대학 다닐 때 발표하는 중이었는데 한 선배가 그런 얘기를 했었다.
"그냥 네가 쓴 걸 읽어라. 왜 이렇게 말을 못 하냐. 선생님, 이 친구 글에는 생각이 분명 있는데 말로 하면 별로인 게 돼요"
나는 말은 어렵지만, 글은 그에 비해 쉬웠다. 글이 말보다 더 빠르고 표현하기도 좋다. 어렸을 때 말을 빨리 시작했다고 어른이 되어서도 말을 잘하거나 하진 않는다는 것을 나를 통해 증명하고 있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달라지고 있었다. 아이의 작은 울음이나 소리에도 깊은 잠에서 깨어나기도 하고, 아이의 마음이 읽히기 시작했다. 나에게 새로운 능력들이 계발되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렇게 거북이가 보기에는 토끼 같아 보이는 빠른 거북이인 내가 진짜 거북이 아들을 만났다. 첫째는 비교적 빠른 편이었다. 아니 그냥 평균이었다가 정확하겠다.
첫째 때에는 첫째를 키우는 엄마들의 공통적이며 특유한 불안으로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며 아이가 잘 자라고 있는지, 발달과 발육이 괜찮은지 늘 체크하며 지냈다.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한 뒤부터는 그런 생각을 하진 않았지만 그전까지는 계속 관심을 갖고 있었다.
둘째가 아주 애기 때, 한 번은 울면서 엄~마~~ 하고 말하며 울었다. 그 소리를 듣던 할머니가 "애기가 벌써 엄마라고 말하네"라고 말씀하시는데 들으면서 속으로 뿌듯해했다. 둘째는 빠르다 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는데, '우리 꼬부기도 빠르겠지' 하는 생각으로 첫째 때와는 다르게 편한 마음으로 지냈었다.
대두증 의심을 받고 병원을 들락날락거리고, 목 기울어짐으로 재활치료과를 다니면서 점점 불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발달이 정상으로 따라가고 키와 몸무게도 같이 크면 괜찮다는 말에 아이의 키를 키우고 싶었고, 살을 찌우고 싶어서 고열량 영양 보충제를 먹이기도 했다.
내가 먹는 신지로이드 약 때문에 아이에게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싶어서 돌이 되자마자 모유수유도 끊어버렸다. 아이를 지켜보며 늘 애가 탔고, 불안한 마음에 검색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아이가 울면서 '엄~~ 마'라고 했던 것은 단어를 말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우연히 울면서 나는 소리가 그렇게 발화가 된 것뿐이었다. 아이는 엄마라는 단어도 한 참 뒤에야 할 수 있었다.
발달 검사를 갈 때면 아이가 사용하는 단어는 몇 개인지 물어본다. 그러면 나는 최대한 봐주어서 비슷한 소리가 나면 그것도 아이가 말한 것이라고 치고, 관대해졌다. 안 그러면 아이가 사용하는 단어가 '엄마' 밖에 없는 듯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자라길 기다리면서 내 속이 새까맣게 탄 거 같다. 지금도 '꼬부기는 언제 크나? 언제 자라나?' 그런 마음으로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을 때가 많다. '약을 먹였어야 했던 건가'. 남자애가 이리도 작고 느려서 또래 아이들 틈에서 잘 버텨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지금은 생일이 지나서 6살. 만으로 5세가 되었다. (이 글은 작년에 쓴 글. 지금은 7세)
꼬부기는 학교에 안 다닐꺼라고 말한다. 모든 아이들은 학교에 가야 한다고 하면 안 갈 거라고 하며 울어버린다.
그냥 집에서 엄마학교를 다닐꺼란다. 학교에 안 가면 경찰이 오냐기에 "그럼, 경찰이 오지".
그러자 또 운다. "경찰이 와서 아이가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러 오는 거야. 너 학교 데려가려고 잡으러 오는 게 아니라"라고 얘기해준다.
그러자 며칠 뒤 그럼 "경찰이 엄마를 잡아가"라고 묻는다.
"아니, 엄마가 우리 아이랑 홈스쿨링 엄마학교 할 거예요 하면 학교 안 가고 집에서 해도 돼. 그렇지만 학교에 가서 친구도 만나고 선생님도 만나고 해야지 너는 잘할 수 있어. 형도 처음엔 친구 하나 없이 갔지만 지금은 친구도 많고 잘 지내잖아".
형이 한마디 거든다.
"처음에는 겁나는데 가면 다 할 수 있어"
그래도 둘째의 마음은 확고하다.
지금은 7살. 문득 6살 때 써둔 글을 꺼내 읽으니 우리 꼬부기가 제법 성장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지금은 6살 때처럼 학교에 안 간다며 울지는 않으니까. 또래 친구들과 비교하면 꼬부기는 한참 애기처럼 보이지만, 작년과 비교하면 분명 많이 성장했다. 이 글이 그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