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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Jul 21. 2022

뇌파 검사실 앞에서 슬로우(두 번째 이야기)

메신저를 만나다

뇌파 검사실 앞에서 만났던 친구와 전화번호 교환 후,

나는 그녀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전화하겠다고 한 것도 그 친구였고, 나는 원래 전화하는 거 사람 만나는 거 안 좋아하는 편이라서 

굳이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인지 잊어버렸다. 


그렇게, 며칠 후 전화가 걸려왔다. 친구였다.

반가운 목소리. 

오!

연락 줘서 고마워!

여차저차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꼬부기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고민이 그냥 흘러나왔다. 나는 내 고민을 다 말해버린다. 가만히 담고 있질 못한다. 옛말에 아픈 데는 자랑하라 했는데, 그렇게 자랑하듯이 여러 사람들에게 얘기하다 보면 치료 방법을 찾을 때도 있었다. 


꼬부기 얘기가 흘러나왔다. "병원에서 대두증 의심된다며 뇌척수액 검사를 하자고 했는데 어찌해야 할지 몰라 고민 중이야. 그리고 간질약을 먹이자고 하는데, 그것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랬더니 친구가 갑자기 정답을 알고 있다는 듯 아니 신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듯 단호하고 명쾌하게 말한다. 

"류영아, 애기는 아무 문제없어. 검사 안 해도 될 거 같아. 그리고 뇌 관련 약은 함부로 먹는 게 아니야."

"??, 어떻게 알아??.. 아니 어떻게 확신해"

"나 그 병원 임상병리사로 일하기 때문에 늘 의사들하고 함께 있어. 의사들이 좀 더 긍정적으로 말해주면 좋겠지만, 일의 특성상 그렇질 못해. 

내가 그날 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눈을 마주쳤는데, 아무 이상 없더라. 뇌압이 높으면 그 정도만 만져도 아파해. 그리고 약은 정말 부작용이 많아서 조심해야 해. 내 사촌이..."


그러면서 자신의 사촌 이야기를 들려줬다. 사촌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갔는데, 직장을 다니면서 언제부턴가 갑자기 쓰러지는 일들이 생겼다고 한다. 긴장을 하면 쓰러져 병원에 다니며 신경과 약을 먹기 시작했단다. 그런데도, 계속 쓰러졌다. 이제는 긴장하지 않아도. 한 번은 출근을 안 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아 집으로 갔더니 현관문 앞에서 쓰러져 있었단다. 출근 준비 다하고 나가려던 순간 쓰러진 거다.

그렇게 자주 쓰러졌는데, 쓰러지면서 머리를 다쳐서인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나 깨어나서 가족들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단다. 기억상실증이 왔단다. 

부모들이 아들을 끌어안고 울며 이름을 애타게 불러보았지만, 아들은 낯선 사람들이 자신을 붙들고 우는 모습이 당황스러워서 그냥 놀란 채 보기만 했다고 한다. 

그렇게 지금은 사회생활이 어려워져서 직장도 그만두고 집에서 요양 중이라고 한다. 이모는 그제야 아들이 먹었던 약 성분들을 알아보던 중 약 성분들이 뇌에 주는 영향들이 크다는 사실과 약의 부작용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단다. 그래서 먹던 약을 끊었단다. 


그런 긴 얘기를 해주면서 뇌 관련 약은 아주 조심해야 한다며 아이에게 약을 먹이는 것은 아주 신중하게 해야 하고, 부작용을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약을 안 먹이면 안 되는 문제가 아니라면 안 먹였으면 좋겠단다. 


그렇게 친구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려고 나타난 천사와 같았다. 친구는 뇌척수액 검사를 하지 말아야 할 것과 간질약을 먹이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말해줬는데, 하필이면 그 대학병원의 임상병리사였다. 

아마 의사 선생님이 이 사실을 아셨다면 노하셨겠지만, 

나는 그날 친구를 만나면서 참 신비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기도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해  

방황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은 메신저를 보내주셔서 갈 길을 알려주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다른 병원에도 가볼 마음이 생겨서 서울에 있는 가장 큰 병원들을 몇 군데 찾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이를 이제 그냥 내버려 둬라는 얘길 듣고서야 끝없는 검사들을 멈출 수 있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아이는 대두증의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고(느린 발달이 계속 걱정이 되는데)

아이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뭐, 꼬부기의 사회성 부족 이유가 대두증과 연관이 있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서 남들보다 더 걱정을 했었다.  꼬부기가 무슨 문제가 생기거나 뭔가를 잘 못하는 것을 보면 순식간에 옛날 기억들이 다 끄집어내 지면서 무서운 상상들이 이어진다. 


나의 그런 신경증 환자 같은 반응으로 인해 오히려 아이는 불안해했고, 자존감도 낮아지며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도 주저하게 되고 있었다. 이것은 풀 배터리 검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의 지능은 높았으나 아웃풋이 잘 안 되는 이유는 심리적인 이유에서라고. 

우리는 아이를 보면서 아이의 미래를 기대하며 아이가 꿈을 꾸고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응원하고, 돕고 싶다. 그런데, 나는 아이를 보며 꿈을 꾸지 못했었다. 불안해할 때가 꽤 많았다. 항상은 아니지만, 종종.

그래서 그 대가로 아이는 나에게서 멀어지고 싶어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걱정 많은 엄마 곁에서 머물면 안전할 거라 생각하며 나와 밀착돼있던 꼬부기가 이제는 엄마가 과도하게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엄마의 생각과 달리 나는 잘할 수 있어!라고 외치는 것 같다. 


이제는 나만 변하면 된다. 나의 생각이 변해야 한다. 아이가 잘 지낼 때는 생각하지 않는데,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생길 때면 모든 일들이 대두증과 연관된 건가?, 내가 약을 안 먹여서 그런가? 하는 끝없는 반성과 자책이 있다. 

아무튼 엄마는 정말 어렵다. 엄마라는 역할이 십자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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