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날 Jul 15. 2022

뇌파 검사실 앞에서 슬로되었던 시간.

꼬부기 뇌척수액 검사를 해보자는 의사 선생님의 강력한 권유가 있었다. 

척수액이 있는 척수 쪽에 바늘을 꽂아서 척수액을 빼내서 하는 검사이기에 가장 확실한 검사라고 하셨다. 

다만 아이에게 검사해야 하기에 전신마취를 위험과, 마취에서 깨어난 뒤에도 수 시간을 누워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절대 일어나면 안 됨. 아이가 누워 있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검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뇌척수액을 검사하면 뇌압이 상승해 있는지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다고 하셨고, 바늘을 찔렀던 곳에 혹여나 감염이 있게 되면 치명적인 일이 생긴다고 만약에 생길지 모를 어려움도 미리 공지해 주셨다. 

병원은 항상 최악의 상황을 말해준다. 만약에 발생하게 될 의외의 상황과 부작용들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장애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보호자에게 반드시 알려준다. 부작용만 머릿속에 남게 된다. 


그때 꼬부기가 돌이 지난 나이였는데, 말도 잘 못 알아듣는 어린아이가 검사 후 누워 있으라고 한들 누워 있겠나 싶었다. 그리고 꼬부기 머리가 큰 게 당장 해 본 뇌파검사, 뇌 mri, 뇌 초음파에서 이상 없는 걸로 나왔기 때문에 무리해서 더 검사하고 싶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비슷한 다양한 사례들을 보셨기 때문에 확인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교수님은 뇌에 대한 연구와 치료는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이런 대두증에 대한 치료와 연구 데이터가 없다고 하셨다. 그저 자신이 연구하고 진료를 봤던 사람들에 대한 데이터와 경험을 가지고 하는 거라고 하셨다. 어느 병원이든 다 그렇다고 하셨다. 

솔직한 그 얘기를 들으니 의사 선생님이 솔직하고 확실한 분이라 생각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뇌척수액 검사를 꼭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도하고 싶었다. 그냥 기도하며 이 시간들이 지나고 아이가 이상 없이 잘 자랄 것만 같은 긍정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의사 선생님께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며 나왔지만, 내가 이 작은 아이에게 전신마취와 뇌척수에 바늘을 꽂지 못하게 할 거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다음 검사일까지 3개월 내지 6개월 간격으로  찾아갈 때마다 몇 번의 마음 졸임과 충격적 이야기를 듣곤 했다. 


일단, 가면 몸무게를 재고 키를 재고, 머리 둘레를 잰다. 그리고 머리둘레가 몇 퍼센트에 해당하는지를 확인 후 지난번 검사 대비 커지는 속도가 얼마나 더 늘어났는지를 확인한다. 

아이들은 계속 자라기 때문에 커지는 게 맞지만, 지난 검사 때 98퍼센트였는데 이번 검사 때 99 퍼센트면 

커지는 속도가 늘어난 것이기에 추가 검사를 더 진행하셨다. 

이상하게도 아이의 대천문이 다 닫히지 않고 있어서 그 자리에서 바로 뇌 초음파를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응급으로 할 때는 보험 처리되지 않았다. 


 진료를 위해 대기실에 있을 때마다 다양한 아이들을 볼 수 있었는데, 대두증 아이, 소두증 아이를 보곤 했다. 정말 1초만 스쳐가며 보더라도 이 아이들은 문제가 있는 게 확실히 보일만큼 크거나 작았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행동도 눈에 띄었기에 우리 꼬부기가 대두증이면 저렇게 변한다는 건가? 하며 꼬부기를 안고서 두려워 떨었다. 

 신경외과는 정말 무서운 곳이라는 생각을 계속했었다. 병원에 오지 않고 지낼 수만 있다면 어떤 육아의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감사하며 지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때는 그런 생각을 했는데. 지금 육아가 힘들다 하고 있으니 갑자기 반성이 된다.) 



한 번은 2차 뇌파검사를 하러 왔다. 뇌파검사는 정확도가 20~3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권하셨다. 뇌파검사를 위해 평상시 수면 상태의 뇌파 상태를 확인해야 하기에 전날 아이를 잠을 적게 재우고, 졸린 상태로 도착하여 검사실에서 30분가량 수면을 하며 검사한다.

머리에 수십 개의 선을 붙여서 하는 검사인데, 검사실에서 잠들기 시작해서 깨어나는 것까지의 뇌파를 검사하셨다. 


곧장 잠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아이에게 잠을 재우지 않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차 안에서 잠들거나 잠깐의 낮잠도 자지 않게 해야 하는데, 이게 참 어렵다면 어려운 일이었다. 잠이 쏟아지는 아이, 눈꺼풀이 내려앉는 게 보이는데 자꾸 이름을 크게 불러대고 사탕을 먹여가며 잠들지 않게 수면을 방해했다. 

남편에게 휴가라도 내달라고 했었으면 편했을 것을 혼자 운전해서 가면서 뒤 자석의 아이에게 잠을 못 자게 한다는 것은 참 어렵고 긴장되는 미션이다. 


여기까지가 서두이다. 서두가 너무 길었다. 

아이 검사를 마친 뒤, 더 자고 싶은 아이 머리를 감기느라 전쟁을 벌이고, 간신히 정리하여 손을 잡고 검사실을 나섰다. 나서면서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이곳에서 나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지 못했으면 좋겠다, 검사실 바로 앞에 뇌. 신경외과 뇌파검사 이런 문구들이 큼지막하게 쓰여있어서 나와 아이가 비련의 주인공처럼 보일까 봐 싫었었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있었다. 그 시간이 점심시간이었고, 그 층에 편의점, 햄버거 가게도 같이 있고 구내식당도 같이 있어서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그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면서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서 나오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정말 1초 2초의 순간이었는데, 한 사람을 끌리듯 바라보게 되었고, 놀라운 것은 그 사람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짧은 순간이지만 서로를 바라보며 걸었는데, 낯선 사람을 그렇게 쳐다본 것도 처음이지 않았을까 싶을만치 나의 시선은 당돌했다. 

그냥 그곳을 쳐다보고 싶었고, 그 사람을 보고 싶었고, 자석처럼 눈이 그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나도 뭔가 느낌이 오는데, '맞아, 고등학교 때 친구야!'라는 확신이 생겨왔다. 

그렇게 물리적 시간은 수십 초가 지난 것처럼 슬로로 느껴졌다.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떻게 시간이 이렇게 늘어날 수 있는지. 사람이 죽기 직전에 자신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주욱 지나간다고 하는데, 

불과 몇 초 사이에 어떻게 그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우리의 두뇌가 활성화되면 초자연적인 일들이 생기게 되는 듯하다. 어떤 연구에서 실제 사람이 죽기 직전과 사망 후 몇 초동안 두뇌가 전체적으로 활성화되고 있는 것을 포착했는데, 

사람이 죽음 이후에 무언가를 보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료가 되었다. 

암튼 나에게도 그런 느낌이었다. 몇 초동안 나는 몇 발자국을 걸으면서 그 사람과 눈이 자석처럼 끌어당겨지는 것을 느끼며, 서로를 알아보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시 원래 시간속도로 돌아와서 친구가 인사했다. 

"이름이 뭐였더라!" 

"류영이"

"맞아!" 

"여기에 왜 왔어?"

"애기 뇌파 검사하러 왔어. 대두증 의심으로 계속 검사하고 있거든.."

"그렇구나! (꼬부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얼굴을 바라보면서)

나, 여기에서 일해. 내가 전화할게. 전화번호 좀 줄래?"

"응!" 

전화번호를 나누고 급하게 헤어졌다. 그 복도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있어서 오래 서있을 수 없었고, 친구는 함께 움직이고 있는 무리가 있었다. 


전화번호를 주고받았지만, 전화가 올 거라는 생각까지 못했다. 나와 친한 관계가 아니었다. 그 친구도 조용한 편. 나도 조용한 편..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 친구가 어울리던 친구들은 반에서 모범생들이 많았고, 나는 우등생들 무리와는 친하지 않았던 거 같다. 그냥 얼굴을 기억하고, 같이 함께 고3 시절 교실에서 시간을 함께 보냈던 존재였다는 것만을 기억할 뿐이다. 

(뒷 이야기는 두 번째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






 

이전 03화 '사랑하면 아프다고 하더니, 진짜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