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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Dec 21. 2021

뇌를 검사하는 곳이 신경외과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둘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모든 게 여유로웠던 것 같다. 첫째 때에 이미 경험해 본 터라 미리 예측할 수 있었고, 출산을 위한 과정과 병원과 병원 침대 모든 게 익숙해서였다.  '나는 갓난아이를 잘 돌 볼 수 있고, 모유수유도 해낼 수 있어' 하는 자신감도 있었다. 출산을 했던 경험은 너무도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웠고, 죽음을 경험하는 것 같았으나 아이를 키우면서 점점 잊혀 갔다. 트라우마가 잊혀 가는 게 말이 안 되는 듯하지만, 출산의 고통은 트라우마이면서도 나를 뛰어넘는 도전과 같은 시간이었기에 승화되었다. 그런데, 다시 출산을 앞두고 기다리고 있자니 첫째 때보다 더 무서웠다. 더 아픈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의 감각은 상대적인 듯하다. 


  둘째를 보는 시선이 첫째 때와 너무도 달라서 놀랐다. 둘 다 자연분만을 했는데, 첫애 때는 아이가 쑤욱 나와서 내 품에 안기는 장면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커서 깜짝 놀랐었다. 아기가 크다 라는 생각을 계속하며 아이를 돌보았다.. 

하지만, 둘째가 쑤욱 나와서 안기는데 '어, 아기가 작다'라고 느꼈다. '머리도 이렇게 작은데 왜 크다고 겁을 줬지?'까지 생각했다. 

실제 둘째는 첫째보다. 200그램이나 더 컸고, 머리둘레도 훨씬 더 컸었다. 그럼에도 내 눈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키우는 동안에도 아이의 손과 발이 입이 얼마나 작고 예쁜지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첫아이를 출산 후 독립된 생명체가 우리 집에 있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하여 하루 종일 들여다보고 있었다. 가만 자는 아이를 내 가슴 위에 올려놓고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첫째 때는 생명에 대한 신비감에 더해 이전에 꺼져있던 모성애 스위치가 켜지는 바람에 잠도 안 자고 아이를 지켜볼 정도였다. 

둘째가 생겼을 때 기쁘긴 했지만, 첫째 때처럼 기쁘진 않았다. 그냥 첫째와 있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고 좋아서 뱃속의 아이를 잊고 지내다시피 했다. 그런데, 둘째를 눈으로 처음 보는 순간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 말이 맞는 거 같다. 그냥 아이의 모든 게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인생선배들은 육아에 대한 여유가 생겨서 더 보이기 시작하는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마법에 걸린 것만 같다. 첫애를 낳고 마법에 걸렸다가 둘째를 낳고 나서 다른 마법에 걸렸다. 지금도 이 마법이 풀리지 않아서 첫애는 큰 애 같고 둘째는 마냥 아기 같다. 가끔 둘째가 많이 자란 게 보일 때마다 깜짝 놀라곤 한다. 

'이제 아기가 아니네?'


둘째 임신 중 초음파 하러 갈 때마다 "머리둘레가 한 달 이상 크다"라는 얘기를 들었다.  '머리가 왜 큰지는 태어나고 나서 정밀검사를 해보아야 알 수 있다' 라는 얘기까지 하셨다. 그래서 겁이 좀 났으나 쉽게 잊어버렸다. 첫 애도 머리는 큰 편이었으니까. 


아기가 6개월이 되어 영유아 건강검진을 갔을 때, '머리둘레 98 퍼센트 정밀평가 요망'이라 적힌 서류를 받았다. 선생님은 대학병원 가서 한 번 검사해보라고 하셨다. '네? 머리가 크다고 검사를? 머리는 뇌를 검사하는 것인데, 뇌가 얼마나 신비한 영역인가. 뇌에 대한 연구도 짧고 아직도 연구 중인 뇌를 검사한다고?' 그런 불안한 생각이 앞섰다. 뇌를 검사하는 곳이 신경외과라는 것도 그때서야 알았다. 


병원에 남편과 갔다. 아이를 아기띠에 맨 채 병원을 걸어 다니고, 병원 수유실에서 수유를 했던 일들이 아직도 기억난다. 

의사 선생님이 " 걱정하지 마세요. 머리둘레는 신경쓰지마세요" 웃으며 따뜻하게 말해줄 거라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 밖의 상황이 펼쳐졌다. 선생님은 아주 심각하셨고, 아이에게 여러가지 검사를 해보자고 하셨다. 받아야 할 검사로는 뇌 mri 검사, 뇌파 검사, 뇌 초음파,(뇌척수액검사:이게 가장 정확한데 아직 어리니 다른 검사를 먼저하자고 하셨다) 여러 가지 검사 일정이 있었다. 지금은 어느 것을 먼저 했는지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그냥 무서운 느낌의 검사들이 잔뜩 잡혀 있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병원에 입원해서 아이에게 수면제를 먹여서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날 아이를 맨 채 병원 복도를 걸어 나오자 바깥은 햇살이 쨍하고 아름다운 날씨였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보는데, 갑자기 사운드 오프 되면서 나와 아이가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예전에 어릴적 절망적이었던 어느 날 그런 기분이 들었었는데,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그때가 다시 생각나서도 더 힘들게 느껴졌다.  

그래도 '아직 검사 전이니까 별 일이야 있겠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다행히도 배고프고 졸려서 칭얼대는 아기를 돌봐야 하기에 절망에 빠져 있을 시간조차 없이 바쁘게 지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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