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칸방, 그리고 맏며느리의 자리
2장. 단칸방, 그리고 맏며느리의 자리
어머님은 늘 그 시절을 ‘제일 고달팠던 때’라고 말씀하셨다.
결혼하고 어렵게 살림을 나섰지만, 얼마 못 가 시댁 식구들이 죄다 다시 들어오셨단다.
시아버님, 시어머님, 시동생들까지…
그 단칸방 하나에 다 같이 모여 지내야 했던 시간.
그 좁은 방에서 아궁이 불을 지피고, 끼니를 챙기고, 집안 대소사를 혼자 떠안다시피 하셨던 어머님은 그때를 떠올리실 때마다 한숨부터 쉬곤 하셨다.
살림만 하셨던 것도 아니었다.
주단학 화장품을 손수 바르며 이 집 저 집 방문해 판매하시기도 했고,
생선이며 야채며 도매로 사다 장에 내다 팔기도 하셨단다.
공사장 인부들 밥을 짓기도 하고, 밥솥 하나로 수십 명 식사를 해결하시던 일도 있었다고.
말 그대로, 안 해본 일이 없었다고 하셨다.
겉보기엔 조용하신 분이었다.
하지만 안으로는 단단하셨다.
자기 뜻을 쉽게 굽히지 않으셨고, 다소 고지식하다는 말도 들으셨지만 그건 어머님만의 방식이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있으셨고,
그 기준을 허투루 넘기지 않으셨다.
때론 예민하게, 때론 무섭게 느껴질 만큼
말씀은 없지만 눈빛 하나로 사람을 멈추게 하시던 분.
그 단호한 기운 안에, 어머님의 책임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어머님은 그 좁은 단칸방 안에서도
어지러운 사람들의 중심을 지키셨고,
가난과 시집살이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으셨다.
나는 그런 어머님을 지켜보며
‘맏며느리’라는 말의 무게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