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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복수 Sep 21. 2024

산책, 그리고 명상

'자연의 풍경 속에서 우리 자신을 재발견하고 유쾌한 전율을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은 가장 아름다운 분신현상이다. 땅에서 그런 느낌을 받는 사람은 분명 행복할 것이다.'        -니체-


산책, 나는 산책을 즐긴다. 


코로나로 집 밖 출입이 쉽지 않았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비교적 사람이 적은 시간대를 찾아 새벽같이 일어나 아파트 뒷산 둘레길을 운동, 명상삼아 상쾌한 공기로 머리를 깨우기 위해 다니던 것이 어느덧 이제는 하루라도 빠지면 안 되는 습관이 되었다. 가끔 몸이 찌뿌둥하거나 만사가 귀찮을 때, 전날 숙취로 머리가 아플 때, '오늘 하루는 집에 있을까?'라고 싶은 날도 이제는 나도 모르게 몸이 먼저 반응을 해 신발을 신고 있다. 빠질 수 없는 일과가 되었다.  


그렇게 나의 산책은 매일, 아침마다 시작되는데 중요한 것은 인적이 드문, 조용한 아침 일찍, 6시 이전에 출발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누구보다 더 조용한 아침 산책길을 느낄 수 있고, 새벽의 투명하고 깨끗한 공기를 접할 수 있으며, 아침을 울리는 상쾌한 새소리에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하루를 시작한다. 알람소리에 맞춰 멍하니 겨우 이불속에서 일어나 커피 한잔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이전의 아침과는 질이 다르다는 것을 확연히 느낀다.  

  

그리고 나는 아침 산책을 통해 명상을 한다. '명상'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가부좌자세가 아닐까 싶은데 알고 보면 그만큼 어려운 자세가 없다. 조용한 방 한가운데에 앉아 촛불하나로 방을 밝히고 돌아가지도 않는 내 양 발등을 교차시켜 무릎 위에 틀어 힘겹게 올린 자세가 가부좌 자세이다. 게다가 허리를 꼿꼿이 펴고 눈을 감고 무념무상에 빠져야 한다는데 내 눈꺼풀은 자꾸만 떨리고 몸은 땀으로 젖어든다. 오만가지 생각, 잡생각은 다 떠오른다. 가부좌는 나 같은 중생이 쉽게 할 수 있는 자세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걷는다. 인간이라는 동물의 움직임 중 가장 기본이 걷는 것이며 이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무심히 걷다 보면.. 내가 한 발자국 내밀어 땅을 밀고 나가는 건지, 내 몸이 움직이니 발이 딸려오는 건지 혹은 어깨에 붙어 자연스럽게 흔들리는 내 양팔이 추가되어 흔들리며 밀고 나가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이 걷는다.

 

그렇게 내가 걷는 건지, 걷는 것이 나를 걷게 하는 건지 모를 때.. 텅 빈 느낌으로 걷다 보면 산책은 어느덧 나를 조용한 방 한가운데로 놓아둔다. 매일 색이 조금씩 바뀌는 푸릇푸릇한 나뭇잎은 방을 은은하게 밝혀주는 촛불이 되고, 스치듯 하다가도 어느덧 다가오는 바람들은 내 손과 이마, 얼굴과 목을 감싸 그 힘들다는 고통의 가부좌 자세를 만들어 준다. 마지막으로 바람과 섞이는 아침의 상쾌한 공기가 내 콧속을 파고들 때 즈음, 나는 명상에 빠진다. 


사실 매일 산책을 한다고 하더라도 명상에 빠진다는 느낌은 그리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가끔 자연과 나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고 동화되는 느낌, 떨림, 심지어 이것을 오르가슴이라 해야 할지 고민되는 그러한 전율을 느낄 때, 나는 내가 명상에 빠져들고 있구나 그리고 진정한 기쁨을 맛보고 있구나를 느낀다. 그래서 나는 매일 산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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