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작년에 너는 유럽으로 왔어. 독일에서 유학을 하게 됐는데, 네덜란드로 넘어와서 우리가 짐을 함께 옮기기로 했지. 2주 정도 일찍 네덜란드로 건너와 너는 나와 함께 시간을 보냈어.
네가 유학을 결정한 건, 2024년 여름이었어. 사실 너는 친구와 함께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지. 언니가 내게 네가 유학을 하는 건 어떨지 물었고 우린 정말 번갯불에 콩 볶듯이 우리의 결정을 네게 알렸어. 너는 조금 고민하더니 바로 아이엘츠 공부를 시작했어. 시험을 보고 대학을 알아보고 대학에 원서를 넣는 이 모든 일을 몇 개월 만에 끝내버리더라. 그동안에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말이야. 내가 자주 너를 ‘알바몬’이라고 놀리곤 했는데, 내 입장에서는 아르바이트 면접을 다니며 유학 비용을 모으는 네가 신기하면서도 대견해서 그랬어.
네가 오고 우린 기숙사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알아봤어. 이불과 베개, 숟가락과 젓가락, 냄비와 그릇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필요했지. 우리 중 아무도 유학이라는 걸 해보지 않았으니 알 리가 있나. 그래도 이케아에 가서 이것저것 필요한 걸 사고 네가 한 주 동안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그렇게 우린 개강 며칠 전에 독일로 향했어.
기숙사 방문 시간이 11시에서 2시까지여서 우린 전날 마그데부르크에서 하룻밤을 잤어. 마그데부르크를 너 때문에 다시 방문한다며 나는 좀 투덜댔지. 그곳은 정말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거든. 8년 전에 그곳에서 우린 아토스(고양이)를 잃었어. 아주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호텔에서였고 아토스는 갑자기 심장이 멈췄어. 그 유령이 나올 것 같던 호텔 때문이라고 나는 내내 생각했지.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었지만, 겨우 하룻밤을 묵는 거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거든. 그 밤에 아토스는 정말 많이 울었어. 우린 여행을 자주 다녔고 어떤 호텔을 그는 좋아했으니까. 괜찮을 줄 알았어.
근데 다음날 아토스가 쓰러졌어. 영어가 익숙하지 않던 호텔 관계자는 동물 병원에 연락해 달라는 말을 못 알아듣고 앰뷸런스를 불렀어. 구급대원은 화를 내고 떠났고 나는 차갑게 식은 아토스를 품에 안고 있었어. 일련의 소동 후에 나는 우리가 네덜란드에 있었다면 아토스를 충분히 살릴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 조금만 빨리 동물 병원으로 옮길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자주 했어.
근데, 그곳에 너 때문에 다시 가게 된 거야. 오 년 만이었어. 폴란드를 오가면서도 나는 마그테부르크에는 가지 않았어. 지나면서 그곳의 이름이 적힌 표지판을 보는 것 만으로도 아토스가 생각났거든. 그때 그 도시가 내 고양이를 죽인 것 같았어. 독일인의 무뚝뚝함이, 다른 언어를 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고집이 오해를 만들고 시간을 끌어 내 고양이를 앗아갔다고 생각했어.
그 밤 너는 내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지 물었어.
나는 굳이 가야 한다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지. 너는 왜냐고 묻지 않았던 것 같아. 그건 너무 당연한 거였을지도 모르겠어. 내가 조금 철이 든 건 그때 이후였으니까.
너는 아주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어 그게 어떤 기분인지 모르겠다고 했어. 친구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정말 슬플 것 같다고. 하지만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지.
“이모는 죽을 때 어떨 것 같아?”
네가 물었지. 어떤 답을 기대했을까.
“야호! 드디어 끝났다.”
정말 나는 그런 기분일 것 같았어. 고됐고 최선을 다했고 그래서 다시 되돌리고 싶지 않은 삶이었다고 나는 말했지. 너는 조금 슬픈 것 같았어. 어쩌면 나도 그때가 되면 조금은 마음이 아플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지나온 삶을 되 돌아 다시 사는 건 정말 하고 싶지 않아. 충분히 좋았고 아주 많이 애썼고 그래서 이젠 편하고 싶은 마음일 것 같아.
이 모든 이야기를 한 건, 어린 왕자를 말하고 싶어서야.
사는 동안 우린 모두 누군가를 잃어. 그게 삶이라고 하면 너무 뻔한 말인가.
어린 왕자가 장미를 떠났듯이 어른이 된다는 건 너의 작은 별을 떠나 세상을 여행하는 거야. 여행 중에 너는 아주 많은 장소에 닿을 테고 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거야. 네가 그들 모두를 좋아할 수 없듯이 그들도 모두 너를 좋아할 필요는 없어.
처음 어린 왕자를 읽은 건 열다섯 이었어. 그때 나는 어린 왕자와 장미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아. 나는 누군가의 특별한 장미가 되고 싶었고 내게도 어린 왕자처럼 나를 돌봐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혹은 그 반대가 될 수도 있겠지.
‘참으로 얄궂은 별이로군!’ 아주 메마르고 뾰족뾰족하고 험하고, 게다가 사람들은 상상력이라곤 없이 남이 하는 말만 되풀이하니.... 나의 별에 있는 꽃은 항상 먼저 말을 걸었는데....
또한 어린 왕자가 사막 여우와 친구가 되는 과정을 좋아했어. 이 부분은 너무 유명해서 말할 필요도 없지. 하지만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여우와 어린 왕자의 말을 기억하면 좋을 거야. 만나기 전에 가슴이 뛰는 관계를 많이 맺어. 그게 너를 지탱하는 힘이 될 거야.
“아니야. 난 친구를 찾고 있어. 그런데 ‘길들인다’다는건 도대체 뭐야?” 어린 왕자가 또다시 물어보았다.
“그건 너무나 잊혀져 있는 일인데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관계를 맺는다고?”
“그래.” 여우는 찬찬히 설명을 시작했다. “넌 나에게 아직 수많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꼬마아이에 불과해. 그러니 난 너를 필요로 하지 않아. 그리고 또 나 역시 너에겐 아직 수많은 다른 여우들과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지. 너는 나에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아이가 될 것이고, 나는 너에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되는 거지....”
“아, 이제 좀 알 것 같아. 나에겐 꽃이 하나 있는데.... 그 꽃이 나를 길들였나 봐....”
..... 중략....
“내 생활은 단조로워. 나는 병아리를 쫓고, 사람들은 나를 쫓지. 병아리는 모두 비슷하고 사람들은 다 비슷비슷해. 그래서 난 좀 심심해.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이면 내 생활은 해가 돋는 것처럼 환해질 거야. 난 다른 발자국 소리와는 다른 발자국 소리를 알게 되겠지. 다른 발자국 소리들은 나를 땅 밑으로 기어들어가게 하지만 네 발자국 소리는 음악 소리처럼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낼 거야. 그리고 저길 봐! 밀밭이 보이지? 난 빵을 먹지 않으니까 밀은 내게 아무 소용도 없어. 밀밭을 봐도 나에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그게 슬프단 말이야! 그런데 너는 금빛 머리칼을 가졌어. 그러니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정말 근사할 거야! 밀은 금빛이니까 네 생각이 날 테니까 말이야. 그러면 나는 밀밭 사이를 스쳐가는 바람 소리도 좋아하게 될 거야.”
정말 근사하지 않니?
누군가 네 머리 색과 비슷한 색만으로 너를 떠올리고 거길 스치는 바람마저도 좋아하게 되는 것 말이야. 이후의 이야기를 꼭 다시 읽길 바랄게. 정말 멋진 일이 이 책 속에서는 일어나고 있거든.
그리고 성인 돼서 다시 어린 왕자를 읽었을 때, 나는 뱀에게 고통 없이 자기를 별로 돌려보내 달라는 어린 왕자의 말을 되뇌었어.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로 돌아가기 위해 죽음을 선택해. 아, 물론 어린 왕자는 이야기에서 '죽음'이라고 말하지 않아. 그는 "나는 오늘 나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해. 자신이 죽는 것처럼 보일거라고 조종사에게 말해. 자신의 육체는 소행성 612호에 닿기에 너무 무겁다고 말하지.
"나는 아픈 것 같아 보일 거야.... 어쩌면 죽는 것처럼 보일지도 몰라. 다 그런 거야. 그런 걸 보러 올 필요 없어. 오지 마."
"사람들은 어디 있니? 사막은 좀 외롭구나...." 어린 왕자가 마침내 다시 입을 떼었다.
"사람들 가운데서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야." 뱀이 말했다.
어린 왕자는 한참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넌 참 이상하게 생긴 짐승이구나. 손가락처럼 가느다랗고...."
"하지만 난 왕의 손가락보다 더 힘이 세단다." 뱀이 말했다.
어린 왕자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넌 힘이 셀 것 같지 않아.... 다리도 없고... 여행도 할 수 없잖아...."
그러자 뱀은 "난 너를 배보다도 더 먼 곳으로 데려갈 수 있어." 라고 말했다.
뱀은 어린 왕자의 발목을 팔찌처럼 휘감으며 다시 말했다.
"난 나를 건드는 사람마다 제가 태어난 땅으로 되돌려보내 주지. 하지만 너는 순진하고 또 다른 별에서 왔으니까....."
어린 왕자는 아무 데꾸도 하지 않았다.
"너처럼 연약한 아이가 이 돌맹이 투성이의 지구에 있는 걸 보니 가여운 생각이 드는 구나. 네 별이 몹시도 그릴울 때면 나는 언제든 너를 도와줄 수 있을 거야. 난...." 뱀이 말했다.
"그래, 아주 잘 알았어. 근데 넌 왜 그렇게 자꾸 수수께끼 같은 말만 하니?"
"나는 그 모든 걸 풀 수 있다구." 뱀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들은 침묵을 지켰다.
최근에 다시 어린 왕자를 읽었어. 그리고 나는 애도를 봤어. 이번엔 비행기 조종사의 시선으로, 어른이 된 나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읽게 됐어. 가여운 어린 왕자는 지구에서 길을 잃은 우리 모두 같기도 했어. 또 어쩌면 우리가 잃게 될 소중한 누군가처럼 느껴지기도 했어.
“아저씨가 밤에 하늘을 쳐다보면 내가 그 별들 중의 하나에서 살고 있고, 또 웃고 있을 테니까 아저씨에겐 모든 별들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일 거야. 아저씨는 웃을 줄 아는 별들을 갖게 되는 거야!”
그러면서 그는 또 웃었다.
“언제든 슬픔은 가시게 마련이니까 아저씨의 슬픔이 가시게 되면 아저씨는 나를 알게 된 것을 기뻐하게 될 거야. 아저씬 언제나 나의 친구로 있을 거야. 나와 함께 웃고 싶을 거고, 그래서 이따금 괜히 창문을 열겠지... 그럼 아저씨 친구들은 하늘을 쳐다보고 웃는 아저씨를 보고 꽤나 놀랄 거야. ‘그래 난 별을 보면 언제나 웃음이 나온다네!’ 그들은 아저씨가 미쳤다고 할 거야. 그럼 난 아저씨한테 못할 짓을 한 게 되겠는데....”
그러니까 경은아, 이 그리움의 고리는 끝나지 않아. 토성의 고리처럼 말이야. 그건 서늘한 멜랑콜리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또 다정한 관계인지도 몰라. 나는 이런 다정한 관계들을 네가 많이 맺으면 좋겠어. 결국 혼자 남겨질 걸 알면서 길들여지길 원했던 사막여우처럼 말이야. 밀밭을 스치는 바람만으로도 네가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고 또 누군가가 너를 떠올릴 수 있다는 건 정말 근사한 일이잖아. 그 그리움만으로 가슴이 뛴다는 것도. 불행하게도 모두가 이런 인연을 맺으며 사는 건 아니야. 또 모든 관계가 그리움으로 남진 않아. 하지만 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말한 어린 왕자처럼 자신이 원하는 걸 말 할 수 있는 용기와 또 상처 받을 걸 알면서도 '길들여지기'를 원하고 그 방법을 알려준 여우처럼, 실패하고 상처받는 걸 두려워하지 않길 바라.
이 모든 다정한 관계에도 어린 왕자가 자신의 별로 돌아간 건, 그가 장미에게 길들여졌고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야. 어린 왕자와 장미의 관계는 다른 어떤 관계보다 특별하기 때문이겠지. 어린 왕자가 길가에 핀 장미들에게 한 말처럼 말이야. 어린 왕자와 장미는 아주 드문 사랑을 한 것 같아. 서로를 위해 죽을 수 있는. 그리고 나는 언젠가 네가 너만의 장미를 만나길 바라고 있어.
"너희들은 아름다와. 하지만 속이 텅 비어 있어. 누구도 너희들을 위해 죽으려고 하지는 않을 거야. 물론 나의 꽃도 지나가는 행인들에겐 너희들과 똑같이 생긴 것으로 보이겠지. 하지만 그 꽃 한 송이가 내게는 너희들 모두보다 더 중요해. 나는 그 꽃에게 물도 주고, 유리고깔도 씌어 주고, 바람막이로 보호해 주기도 했어. 그리고 나는 그 꽃에서 벌레도 (나비를 보게 하려고 두 세 마리는 남겨두지만) 잡아주었단 말이야. 그리고 나는 그 꽃이 불평을 하거나 자랑을 늘어놓거나, 때로는 말없이 침묵을 지키는 것까지 귀를 기울이고 들어 주었어. 그건 꽃이 바로 나의 꽃이기 때문이야."
청년사에서 출간 된 [어린 왕자]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