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장편을 조금 썼다. 중간중간 집안 일하면서 [미지의 서울]을 봤는데, 거기 회사에 나오는 인물들이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게, 또 화면을 보면서도 그 이중성을 눈치채기 어려워,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앞, 뒤가 없다. 그게 장점이고 단점이다. 그래서 내 인물들도 앞, 뒤가 없는 것 같다. 지금 와 보니, 내가 왜 그토록 직장 생활을 견디지 못했는지 알겠다.
앞뒤가 다른 인간이 되는 내가 싫었던 것 같다. 뭐, 사회적 가면을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그때 융을 읽고 있었고 나는 속으로 '페르소나 같은 소리 하네...' 뭐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사람들은 내게 직설적이라고 하는데, 나는 은유적이며 환유적인 그들의 화법에 자주 상처받는다. 뒤로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 때, 혹은 그런 이야기를 내게 전한 그 사람이 나와 가까운 사람이었을 때, 상처는 더 크다. 내게 그 이야기를 전한 이가 술을 마시기 전까지는 얌전한 연꽃 같은 사람이었을 때는, 더 오래 생각하게 된다. 그와 대화를 하려면 항상 술이 필요하니까, 진심을 들으려면 술을 들이부어야 하는 관계를 젊을 때는 많이 했던 것 같다. 요술 램프를 문지르듯, 술을 들이부어야 뭔가를 말하던 인간들과의 관계는 술 깬 후 숙취 같은 관계일 뿐이었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됐다.
루이 네덜란드어 언어 테스트 결과가 나왔다. -여기서 오해를 없애기 위해, 네덜란드에서 다문화 아이가 언어치료를 받는 건 일반적이다. 이건 정부에서 보험으로 지원된다. -별로 좋지 않게 나와서 어제, 오늘은 그걸 공부하고 분석했다. 이 언어치료사로 바꾸고 9개월이 지났다. 저번에 치료사와도 거의 일 년을 함께 했는데,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지만 어디로 바꿀 데가 없어서 기다리고 있던 게 화근이 됐다. 멜라니(전에 치료사 이름)는 정말 시간 때우러 나온 사람 같았다. 루이가 들고 나오는 자료는 달랑 한 장이었고 그마저도 기초 단어들이었다. 여름 방학이 끝나자마자 테스트를 한다는 말도 없이 테스트를 했는데, 루이 실력이 오히려 퇴보했었다. 그래서 자료를 받아 다시 봤고 루이가 확실히 아는 것들도 다 틀린 걸로 돼 있는 걸 봤다. 루이에게 멜라니가 이 테스트 질문들을 -그때는 루이가 빨리 읽기가 잘 안 될 때였다-잘 설명했느냐고 물었고 루이는 아니라고 했다. 전에도 몇 번 지나는 말로 멜라니는 수업 중에 맨날 통화해,라고 했는데... 그걸 그냥 지나친 결과가 이런 식으로 올 줄 몰라 당황했었다.
다시 새로운 언어치료사와 약속을 잡고 테스트를 다시 했다. 결과는 확실히 더 높았다. 이해력은 최상인데 인풋이 없었고 이번에도 결과는 비슷했다. 아무래도 우리 환경이 더치 사용이 없다 보니 그게 티가 나는 것 같다. 루이는 혼자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영어는 늘었다. 일부러 영어 읽기를 안 가르치고 있었는데, 한국에 있을 때 옥외 광고 같은 걸 읽기 시작하더니 그냥 읽게 됐다.
언어치료 기간이 말이 9개월이지, 앞뒤 두 번은 테스트에 한 달에서 한 달 반을 쓰고 방학 8주를 빠졌고 그 사이에 스케줄이 맞지 않아 몇 번 더 빠졌다. 게다가 수업 시간은 공식적으로 30분인데, 20분 정도밖에 안 된다. 이번 수업에는 실습생들도 많아서 내내 실습생들이 수업을 한 것도 있고. 걸리는 게 너무 많다. 그렇게 따지니 9개월을 따져도 12시간에서 15시간이 수업의 전부였고 거기서 반 정도의 수업만 한 거다. 공식적으로 언어가 입력이 되려면 일주일에 두 번 적어도 30분 이상은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것들을 매번 일일이 설명하고 따져 묻는 게 쉽지 않다. 이런 걱정 때문이었을까, 어제 꿈자리도 뒤숭숭해서 일찍 잠에서 깼다. 멍하니 있는데, 루이가 화장실에 갔다가 내게 와서 안겨 잠들었다. 마음이 아팠다. 다국적 아이로 자라야 하는 루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람들은 루이가 크면 다 루이에게 좋을 거라고 하지만, 나는 이제 잘 모르겠다. 근데 아무리 줄여도 세 개 이하로 언어를 줄일 수가 없다. 나중에 중학교에 가면 독어나 프랑스어를 배워야 할 텐데, 내가 독어를 조금 보니까 네덜란드와 비슷하지만 또 다르다. 네덜란드어는 A2까지는 그냥 꿀맛이다. 너무 쉬워서 딱히 뭘 하지 않아도 된다. 근데 B1이 되면서 확 어려워진다. 발음도 지역마다 다 다르다. 이 조그만 나라에서 다들 발음을 다르게 하고 또 서로 못 알아듣는다. 난 아직도 그들이 진짜로 못 알아듣는 건지, 그런 척하는 건지 궁금하다.
언어치료 후에는 바로 학교 미팅이 있었다. 루이 학습에 관한 거였다. 다행히 루이가 잘하고 있다고 했다. 읽기, 쓰기, 수학 다 괜찮다고. 근데 역시 발음과 말하기에서 약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그건 뭐 알고 있었던 거니까. 아는 인풋이 너무 적다고 했고 집에서도 인풋을 늘리겠지만 학교에서 문법을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루이는 '외국인이 배우는 네덜란드어로'로 배워야 할 것 같다고 오래전부터 얘기해 왔는데, 생각해 보면 선생들도 다 자기 모국어고, 영어도 기본적으로 잘 하지만 학원을 다니거나 그렇게 배우진 않았을 것 같아 내 부탁이 무리하다는 걸 알았다.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습법이 다르고 외국어로서 더치 교습법이 다르다. 근데 그 차이를 공교육에서 가르쳐 달라고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미치자, 조금 난감해졌다. 다시, 루이에게 적절한 학습법이 뭔지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경험상 최고의 공부는 전공법이다. 가장 무식한 게 효과가 가장 빠르다. 루이의 읽기도 그렇게 학습시켰다. 근데 그러려면 내가 온종일 루이와 앉아 씨름을 해야 한다. 국제학교도 대안이 될 수 있겠지만, 나는 루이가 네덜란드에서 이들과 같은 교육을 받고 자라길 바란다. 그리고 네덜란드어가 좋기도 하고.
그리고 루이를 기다리면서 정보라의 [아이들의 집]을 읽었다. 이제 반쯤 읽었는데, 뭐랄까... 뭐랄까... 인물 이름을 정리하면서 읽고 있다. 일단 끝을 다 읽어야, 이 이야기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저녁을 하고 치우고 그러고 나서 오늘은 새벽까지 작업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오늘 원고지 50매 정도를 쓰려고 계획하고 있었는데, 잘 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