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1월이다.
작년 12월 31일에 불꽃놀이를 보며 다짐했었나?
잘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니 별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그 전년도 까지는 뭔가 으쌰으쌰 하는 게 있었는데, 이번 연도에 기억나는 거 하나는,
머리에 하고 싶은 말을 남기지 않기였다.
진숙이에게 "나는 이제 뇌가 혓바닥에 붙었다고 생각할래."라고 농담했던 기억이 난다.
그게 올해 나의 목표라고. 다른 사람이 볼 때 나는 꽤 할 말은 하고 사는 사람이다.
뭔가 삐그덕거리면 잘 못 참는다. 문장에 오류처럼, 오래 남아 나를 괴롭히니까, 그냥 따져 묻는다.
그런 마음을 먹어도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뱉고 살 수는 없다.
우리에겐 입장이라는 게 있고 나도 협소할지언정 사회생활은 하고 살아야 하니까.
또 무작정 아무 말이나 뱉는 무뢰한이 목표가 아니기도 하고.
오늘 아침에 소설 거절 메시지를 받고, 거기에 대한 감사 메시지를 쓰고, 그러고 나니 오전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걸 알았다. 엄마에게 내가 쓴 난해한 소설을 읽어줄까, 하고 물었고 엄마는 어차피 할 일도 없으니 읽어보라고 했다. 그래서 나의 난해한 세계관으로 독자와 닿을 수 없다는 판단을 받은 소설을 엄마에게 읽어줬다. 엄마는 삼십 분 정도를 집중해서 듣고 다 읽고 내게 질문했다. 마치 북토크처럼.
"복잡하지만 이해 못 할 정도는 아니구먼."
엄마가 말했다. 역시 우리 엄마네. 우리 엄마라 객관성이 없고 그래서 힘이 없다. 그래도 내겐 힘이 된다.
인이 박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오전에는 집중이 안 돼서 그냥 청소를 했다.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 널고 설거지하고 콩나물국을 끓였다. 머릿속은 내내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했고 내가 나를 견디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하루 종이 장편을 다시 읽으며 문장이 어색한 부분을 다시 찾아 한국 시각으로 아침에 출판사에 보냈다. 그리고 4시간을 자고 일어나 보냈던 단편에 거절 메시지를 확인했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조금은 실망했다.
엄마와도 오랜만에 긴 통화를 했다. 엄마가 조그만 텃밭을 가꾸는데, 일을 하며 유튜브를 듣는다고 했다. 자식들에게 재산을 안 주려는 부모들 이야기를 듣는데, 이해가 안 된다고. 그러면서 엄마는 우리에게 너무 줄 게 없어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요새는 화가 난다. 바꿀 수 없는 후회는 하지 말라고 짜증을 냈다. 엄마도 할아버지에게 받은 게 없으면서. 그러면서 엄마가 내게 뭐가 후회되는지 물었고 나는 더 놀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했다. 마흔 넘어 인생이 이렇게 어딘가에 묶일 줄 알았으면 더 신나게 놀아야 했다고.
"그래도 우리 가족 중에 넌 많이 놀았지. 항상 밖으로 돌고."
"그러니까 엄마도 되지도 않는 후회하지 말고 놀아. 놀 수 있는 걸 하면서 놀아."
엄마랑 종로에 놀러 나가고 싶었다. 이번 여름에는 같이 많이 못 놀았다. 내년엔 좀 자주 만나서 놀아야겠다.
루이가 유도 갔을 때, 조금 잤다. 자면서도 잘 자지 못 했는데, 예민해지면 내가 참 버겁다. 나도 내가 버거운데, 내 주변 사람들은 얼마나 내가 버거울까.
어쨌든 집중이라는 걸 좀 하려고 요새 젊은 작가들의 단편을 몇 개 읽었다. 나를, 이 지독한 자기혐오에서 끌어올려 줄 어떤 글을 기대했지만, 그런 글을 만나지 못했다. 넷플릭스에 [미지의 서울]을 그냥 틀어 놓고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일란성쌍둥이 이야기인데, 12월에 나올 내 장편도 일란성쌍둥이 이야기다.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나...
뭐라도 끼적여보자, 하고 노트북을 일 층에서 가지고 오다가 [영란]이 생각났다. 공선옥 소설가의 소설인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소설을 무지하게 좋아한다. 공선옥 작가 소설을 대체로 좋아하지만 특히 [영란]을 좋아해서 때때로 꺼내 다시 읽곤 한다. 슬픈 이야긴데, 나이가 들수록 영란이 이해가 된다. 처음, 이 소설을 펼쳤을 때, '아, 이 작가 이 이야기 어떻게 풀려고 하지?"라는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오늘, 다시 [영란]을 펼쳐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읽을 게 산더미고 쓸 게 너무 많은데, 그래도 이 기분으로 계속 앞으로 나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영란]이라면 나를 다시 작업으로 돌아가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독자란 뭘까?
벌써 두 번째, 독자를 이유로 거절 메시지라는 걸 받았다.
가끔, 나는 이 독자가 정치인이 자주 언급하는 국민과 비슷한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새로운 시도를 위해 자생적으로 형성된 진취적이고 전위적인 실험적 공동체를 다시 제도권으로 회수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걸까? 어릴 때는 다른 대안이 있을 거라 믿던 일들이 그럴 수 없으므로 닫혀버린다. 그래서 나이를 먹으면 보수적이 되나 보다. 경험이, 말해주니까. 헛짓거리하지 말고 그만 현실에 순응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