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025.10.27-30

주간 작업일지

by 명희진

저번 주에 써서 투고했던 소설을 다시 고쳤다. 삼일은 단편의 문제점을 찾고 고치는 작업을 했다.

합평하는 그룹이나 함께 스터디하는 사람이 없으니, 내 글을 객관화하는 게 쉽지 않다. 객관화엔 거리가 필요한데, 거리에는 또 시간이 필요하니까.


김덕희의 [캐스트]를 완독 했다. 꽤 오래 붙잡고 있었는데, 낚시 이야기라 읽는 게 쉽지는 않았다. 낚시라면.... 아빠가 살아생전에 시골에 가면 가끔 배를 빌려 사람들과 나가 뭔가를 잡아오곤 했던 기억이 전부다. 아빠는 회를 참 잘 떴는데, 시골 마당에서 칼을 갈고 회를 뜨는 아빠 옆에 앉아 그걸 구경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고 [캐스트]가 그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종류의 소설은 아니다. 처음은 사채업자의 지역 개발권을 둘러싼 싸움인가.. 했는데, 마지막이 조금 급하게 닫힌 느낌이었다.


간간히 단편을 읽었다. 대산문화에 올라온 위수정의 단편 [눈과 돌맹이]를 읽었다.

2017년 동아중편 상을 받은 소설 말고는 그녀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다. 그때는 그녀의 소설이 나보다 뭐가 나은지 살피려는 질투의 마음이 컸다. 그 후로는 일부러라기보다 따라가야 할 작가가 너무 많았고 항상 그렇듯 읽어야할 책이 너무 많아 그녀까지 따라갈 여유가 없었다.

그때 읽었던 중편의 연장선 같은 느낌의 소설이었는데, 그건 나만 그럴지도 모르겠다. 배경이 나고야고 나고야 장어가 나오는데, 나는 나고야에 거의 1년을 있었어서... 나고야가 그런 분위기가 있는 줄 몰랐다. 일본을 떠올리면, 삼 개월 정도 머물렀던 욧카이치가 떠오른다. 시장 길과 동네 공원을 라파엘의 손을 잡고 산책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우리가 함께 갔던 식당과 카페가 여전히 그곳에 있을 것 같은, 그런 마을이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가고 싶은데, 그러기엔 또 현재의 내가 가야 할 곳이 많아서 이 생에 다시 그곳을 방문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고요한의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읽었다. 코로나 팬더믹으로 부부간 섹스가 금지된 국가에서 섹스가 너무 하고 싶은 한 남자의 이야기였다. 기발하고 재미있었다. 이 소설이 궁금하면 스토리코스모스에서 읽을 수 있다.


다시, 결정을... 중편으로 마무리하고자 했던 370매 소설을, 진짜 그냥 그렇게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장편 500매로 늘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쓰고 싶은 서사가 있는데, 이를 서둘러 닫은 느낌이라 완결이 안 된 글 같은 찝찝함이 내내 있어서, 다시 파일을 열었다.


타르콥스키의 [향수]를 다시 봤다. 소설에서 중요하게 쓰이는데, 너무 오래전에 봐서 기억이 잘 안 났다. 이 영화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좀 더 나이를 먹어서인지, 그동안 좀 더 아는 게 많아져서 인지,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단 한 장면도 놓칠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이었다. 모든 장면이 계산된 상징이었고 미학적으로 완벽했다. 영화를 본 후, 그 감동을 이어 [희생]까지 보고 싶었는데, 영화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라파엘과 [베이비걸]을 봤다. 라파엘은 보는 내내 아무 의미 없는 포르노라고 했고 나는 감독의 의도가 보였지만 살짝 아쉬운 영화라고 결론지었다.


요즘은 집에만 있어서인지, 잔뜩 성난 릴리(내 영어 이름)가 됐다. 라파엘이 말도 없이 고가의 운동기구를 두 개나 집에 들였다. 분명히 마당 확장 공사를 한 후에, 그곳에 짐을 만들라고 했는데, 못 들었단다. 기구가 들어오기 전에 "작은 기계 두 개가 들어올 거야."라고 했고 그래서 상식적인 수준의 홈트레이닝 기구를 생각했다. 그런데, 인부 두 명이 낑낑대며 옮겨도 힘들 정도의 전문 헬스 기계가 두 개 집 안으로 들어왔다. 반품도 안 되고... (일단 유럽은 뭐든 집에 들어오면, 그게 큰 물건이면 반품에 물건 만큼의 비용이 든다....) 그래서 잔뜩 화가 났다. 시간이 없는데, 운동 기구가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야 하고 내 책을 모두 옮겨야 하고... 뭐, 이런 문제로 이번 주는 정신이 없었다. 큰아들이, 친부모와 있을 때 해야 했던 사춘기적 행동을 자꾸 나와 한다. 근데, 얘도 반품이 안 된다.... 우리 어머님은 그런 건 생각도 안 하시는 것 같다... 아들을 너무 곱다 시 키워 내게 보냈다. 아니, 생각해 보니 그에게 간택 당했던 것 같다. 서른이 되도록 때를 기다렸다는 그는 그 버스에서 머리도 안 감고 앉아있던 내게 '호구'의 냄새를 맡았던 것 같다. 고양이가 집사를 고르듯, 그는 나를 선택했다. 동탄 가는 버스에서 내려, 그가 길을 물어볼 때, 영어 못 하는 척할걸... 괜히 영어 좀 한다고 잘난 척하고 싶어서, 몇 마디 나눠 엮여버렸다. 라파엘이 뭔가에 미칠 때, 그가 좋아서 미치는 것처럼, 나는 그의 광기에 미쳐버리겠다.


오늘 쓴 글 중에, 라파엘에 관해 쓴 부분이 아무런 막힘없이, 술술 써졌다. 그리고 다시 마음에 소리를 꺼내려니 평온했던 마음이 술렁인다. 그에게 잔소리가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지만 오늘은 정말 작업을 해야 해서... 참아보겠다. 과연 가능할지 자신은 없다...

keyword
월, 화, 수, 목 연재
이전 16화2025. 10.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