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코부코
둘째 조카가 고양이를 입양했다.
내가 루이에게 "누나가 고양이 샀대." 하니까 루이가 "입양이야."라고 단호히 고쳐줬다.
조카가 고양이 이름을 지어달라고 했다. 나는 내심 기뻤지만, 그 마음이 들켜 일이 어긋날까 봐
"내가?" 하고 되물었다.
"응, 이모 이름 잘 짓잖아."
야홋! 그디어 내 꿈을 이룰 수 있게 됐다. 나는 조금 생각하는 척 하며 조카가 안달나게 하루 정도 뜸을 들였다. 마치, 너무 바빠서 고양이 이름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다는 듯이. 하지만, 내 마음에는 이미 고양이 이름이 내정돼 있었다.
부코부코!
"부코부코 어때?"
조카는 말이 없었고 역시 부코는 어려운 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실, 둘째 조카는 내 브런치 따위는 들어오지도 않기 때문에 부코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페이스톡을 하게됐다.
"고양이 이름은 정했어?"
"응. 부코로 했어."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고 조카는 부코가 봉재인형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랙돌이 봉재인형이라는 뜻이 있는데, 부코도 그렇다고. (부코 이름은 2025년 9월 17일 작업일지에 자세히 나와 있다)
어쨌든 그 아이는 부코가 됐다. 이렇게 쉽게 내 꿈이 이뤄지다니. 내년에도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
요새는 내내 글만 쓰고 있다. 글을 쓰고 읽는 게, 내가 하는 일의 전부다. 사람도 안 만나고 이웃을 봐도 되도록 말을 섞지 않으려고 애쓴다. 작업을 끊고 루이를 데리러 가는데, 그 감정이 끊기는 게 싫어서 사람을 피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영어나 네덜란드어를 할 때 실수가 잦아진다. 더구나 요새는 다 한국어로 된 책만 읽고 있어서 더 그런 것 같다.
얼마전에 루이가 친구 집에서 플레이 데이트를 하고 온 적이 있다. 그 엄마가 루이를 데려다 줬는데, 내가 미안해서 다음 주 화요일에는 우리 집에서 하자고 했다. 바쁜게 대강 정리 될 것도 같고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내내 그 친구 집에서 놀아서 그렇게 하고 싶었다. 네덜란드어로 했는데, 말을 하면서도 내 말이 꼬이는 게 느껴졌다. 그 엄마가 알아듣지 못하고 내게 다시 물었고 결국엔 영어로 얘기했다. 그렇게 보내고나서 뭔가 삶의 균형이 무너진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는 조금 힘들겠다는 생각도 했다. 어떻게 해야 균형을 찾을 수 있을까?
내년에는 더치공부도 마저 끝내야 할 것 같고 또 다른 어떤 시작을 해보려 IELTS 시험도 봐야할 것 같다. 루이 학교 공부도 좀 봐줘야 하고... 할 일은 많은데, 마음만 급하다. 그러다보니 자꾸 느려지고 쳐진다.
기분 전환을 하려 단편 하나를 읽었다. 스토리코스모스에 고요한 작가의 [고양이 안락사]을 샀다. 별 생각 없이 결제하고 읽었는데, 단숨에 읽어버렸다. 필력이 느껴지고 현실감도 있고. 그래서 고요한 작가의 다른 단편인 [사람과 사람 사이]도 결제했다. 다음 독서 목록에 그의 책을 넣을 생각이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