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적끼적...
오늘은 일지를 쓰는 날이 아닌데, 한글학교도 2주간 방학이고 루이 학교도 일주일간 가을 방학이라 집에 있다. 원래대로라면 독일을 거쳐 오스트리아를 다녀오며 폴란드 시댁에 들려야 했지만, 우리 셋다 아파서 가지 못했다. 가면서 조카에게 주려고 산 물건들이 부엌에 그대로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일주일을 넘게 단 한 발자국도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저번 주 금요일 오전에 루이를 학교에 등원시키고 라파엘이 오후에 픽업했으니, 일주일 하고 하루가 됐다. 그 사이 나는 삼시 네 끼를 만들고 루이와 함께 짱구 극장판 4편을 봤다. 드라마도 많이 봤다.
아플 때, 남궁민이 나오는 [우리 영화]를 봤다. 2편이 남았는데, 끝은 안 봐도 될 것 같다. 흥미롭고 재밌어서 웃고 울면서 봤다. 그러다가 이 드라마가 멜로와 신파, 성장 등등... 모든 장르를 한 데로 섞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어제 머리를 식힐 겸, 머리는 이미 많이 식히고 있지만, 그래도 쿨링 다운 하려고 [달까지 가자]를 봤다. 이거 또한 요물로, 재밌어서 내내 배꼽 빠지게 웃으며 봤다. 그러면서 내내 소설을 고쳤다. 그동안 써둔 것을 묶을 요량으로, 이게 책으로 나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단편 9편과 중편 1편을 엮었다. 어제 새벽까지 작업하고 오늘 하루 종일 했다. 그래서 점심에 라파엘과 루이가 운동 갔다가 나와 함께 외출이라는 걸 하러 다시 집으로 왔는데, 내가 또 못 나간다고 해서 둘이 축구를 하러 갔다. 작업을 도저히 끊고 샤워를 할 수 없었고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내가 쓴 글을 엮고 고치는 작업을 하다 보니, 참 많이도 썼다는 걸 알았다. 부지런히 열심히 했으니 이제 이것들이 단편집으로 엮여 세상에 나오면 좋겠다. 그런 출판사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부지런과 게으름을 동시에 떨고 있다.
금요일엔 [사탄탱고]를 읽었다. 아무래도 오래 걸리지 싶은데, 읽으면서 이건 문학이다 싶었다. 그러니까 나는 항상 순소설을 한다는 건, 문학에 가까운 글을 쓰는 거라고 생각해 왔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그러면 어떤 이들은 이 말에 반발하며 문학을 무엇으로 구분하냐고 묻는다. 그건 그냥 알게 되는 것 같다. 많이 읽고 쓰다보면, 또 그런 고민을 자주, 생활처럼 하다보면 기준이 생기는 것 같다.
그냥 나의 작은 깨달음을 공유하자면(건방져 보일까봐 걱정되지만....), 한강의 소설을 예로 들자면.... [검은 사슴]은 순소설이다. 이 책은 장편소설의 정수를 보여주고 나는 이 책을 무척 좋아한다. [소년이 온다]는 서사적 시에 가깝다. 하지만 [작별하지 않는다]는 문학이다. 이것은 이전의 한강의 소설과는 다르면서도 같은 결을 이룬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을 때, 그때는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이었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지인에게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을 것 같다고 했고 몇 개월 후에 정말 한강이 받았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지루하고 지겹게 읽혔다. 문장 하나하나에 놀라면서도, 그것을 따라가기 어려웠다. 나는 평론가가 아니니 왜 그런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랬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이 소설이 상을 받았을 때, 이 소설을 이해한 그들을 존경하게 됐다. 심지어 조카는 주인공이 언제 제주도 집에 도착하냐고 물었고 1부를 읽고 아직까지 2부를 읽지 못하고 있다. 그 아이는 [소년이 온다]가 좋다고 했고 나는 [작별하지 않는다]가 좋았다.
그런데, 이 소설의 놀라움은 책을 완독 한 후에 생겼다. 책의 이미지가 나를 쫓았다. 머리에 내가 겪은 일처럼, 이해할 수 없는 행간과 문장들이, 마치 눈으로 본 것처럼 나타났고 나는 완독 후에 소설을 이해하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이 소설... [사탄탱고]- 놀라울 정도의 세계관이다. 읽고 있는 모든 독서가 이 책 하나로 하찮아졌다. 기쁘면서 슬프다. 이런 작가를 알게 돼 기쁘고 나의 세계관이 협소해 슬프다. 언젠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우리가 고아였을 때]를 읽었는데, 그때도 그의 세계관에 놀랐다. 그건 정말 문장과 서사,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않은 완벽한 소설이었다.
그래서... 나의 원대한, 계획은... 세계관을 넓히는 거다. 뜬금없이, 그런 계획을 갖게 됐다.
*여기 나오는 책의 짧은 평은, 작가의 개인적 견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