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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1.10

by 명희진

매번 느끼는 거지만, 시간이 정말 빠르다.

이렇게 빨라도 괜찮을까 싶게 빨라, 빠르게 도망가는 시간을 뒤쫓는 기분이다.


토요일에 한글학교 끝나고 루이 플레이 데이트가 있어 늦게 까지 밖에 있었다. 집으로 오니 기운이 없어 대충 밥 먹고, 조카와 통화하면서 잤다. 원래 다음 주에 조카에게 가려고 했는데, 베를린에 친구들과 놀러 간다고 해서 크리스마스 때나 볼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조카가 베를린에 가지 않게 됐다고 그냥 오라고 했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았고 역시 무슨 일이 있었다. 사람관계가 쉽지 않다는 조카에게 다 별일 아니라고 위로해 줬다. 정말 어지간한 건 별일이 아니다. 나는 항상 조카에게 인생은 네가 너와 가까워지는 거라는 말을 하곤 한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사람에게 치이는 것도, 너의 취향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겪어야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


그래서 다시 바빠졌다. 뭘 좀 해다 주고 싶어서, 김치를 조금 담그고 잡채가 먹고 싶다고 했는데, 잡채도 조금 하고 생크림 케이크도 만들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 틈틈이 글도 써야 하니까. 집도 정리하고 루이 공부도 봐줘야 하고. 모든 엄마들의 삶은 엇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번 주까지는 장편을 마무리하고 다음 주 초에 퇴고를 끝내야, 보내고 싶은 곳에 보낼 수 있다. 빨리 끝내고 싶은데, 체력과 시간이 안 된다.


뭔가 내 문제를 말하면, 나는 그냥 말하는 건데, 상대가 거기서 내 흠을 찾고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일정 나이가 된 이후, 나는 이런 소모적이 관계를 모두 정리한 상태다. 여기에 시간을 쏟을 여유가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 내가 얼마나 잘 사는지 감시하려는 사람을 경계할 시간과 에너지가 내겐 없다. 그런 일은 30대 후반 이후로 끝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그마저도 힘든데, 나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사람에게 쓸 시간은 없다. 아마도 내년에는 더 협소하고 작은 관계망을 갖게 될 것 같다. 이 모든 걸 차단해도 우리는 인간인지라, 감정의 덫에 빠지니까. 그럴 때는 그냥 지나가게 두는 게 가장 좋다.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브런치 이웃에게 이기호 작가의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을 추천해 드렸는데, 읽지도 않은 책을 추천해 내내 걸려서 샀다. 아마도 [사탄 탱고]를 다 읽고 12월에나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책욕심은 많아서 방현석 선생님의 [범도]도 샀다. 선생님 책은 [세월] 후에 오랫동안 안 읽어서 궁금하다. 이 소설을 십 년 넘게 집필하셨다는데, 무척 궁금하다. 정유정의 소설을 읽어볼까, 잠깐 고민을 했는데 처음에 안 맞은 소설은 그냥 읽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아 담지 않았다. 이북리더기에 사고 안 읽은 책이 수두룩하다. 그건 책장에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나를 기다리는 친구들이 있는데, 누구를 더 만날 수 있단 말인가. 이들과 보내기에도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내년부터는 소설 작법 책을 다시 읽고 공부를 좀 해야겠다. 요새 한국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게, 문장도 서사도... 감흥이 없다. 너무 슬프다. 소설은 뭐지? 순소설은 뭘까? 문학은 뭐지? 이런 고민을 다시 하게 됐고 나름 심각해졌다.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 올해까지는 쓰고 싶은 소설을 쓰고 내년부터는 공부를 하면서 써야 하는 소설을 쓰려고 한다.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셰어] 작가 노트를 써야 하는데, 한 줄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내 작가 노트가 작품을 망칠까 봐 두렵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우습지만, 조카 말로는 내가 그릇이 작아서 그렇단다. 나도 내 그릇이 작아 슬프다. 담고 싶은 건 많은데, 뭔가를 담으려면 하나를 내려놔야 한다. 간장종지만 한 그릇에 뭘 더 담을 수 있을까. 지금도 버겁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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