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시댁에서

이것도 시집살이인가?

by 명희진

시댁에 있으니 시어머니는 일이 늘었고 나는 잠이 늘었다.

처음에는 한국적 마인드로 이것저것 함께 하고 집안일도 도와드리고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그게 시어머니와 나 사이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걸 알았다.

시어머니에게 나는 아들의 아내이고 나에게 시어머니는 남편의 어머니일 뿐이라는 걸,

적당히 가깝고 적당히 먼 사이가 어울린다는 걸 십오 년을 지내며 알게 됐다.


시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는 일은 거의 없지만, 언젠가 우리 집에 온 적이 있었다. 루이가 아직 걸음을 하지 못할 때였는데, 정말 살림을 하나도 도와주지 않아서 서운하고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흉을 조금 보자면, 내가 밥을 차리는 동안 루이가 대변을 봤는데 그걸 그냥 못 본 척했다. 처음에는 몰랐나 보다 했는데, 나중에 내가 냄새가 나니까 좀 갈아달라고 부탁했는데, 비위가 상해서 못 하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손사래를 쳤다. 바로 옆에서 그냥 아이를 보고만 있었다. 기저귀를 갈기 어려우면 말이라도 해주면 고마울 텐데, 그마저도 하지 않아 루이가 대변이 든 기저귀를 내가 밥을 차릴 때까지, 정확히는 내가 아이 기저귀를 확인할 때까지 차고 있었다. 그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는 게 나를 정말 힘들게 했다. 나도 아이 낳은 지 얼마 안 됐고 더구나 힘들게 낳아서 몸이 완전히 회복되기 전이어서 서운한 마음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도 돌보며 시부모님 삼시 세끼와 스트라스부르 여행을 함께 했는데, 너무 손님처럼 계신 시부모님을 보며 동양인 정서인 외국인 며느리는 그게 참 이상했다. 그런데, 시누가 둘째를 낳고 딸에게도 비슷하게 하는 걸 보고 시어머님의 스타일인가, 하고 이해하게 됐다. 그때는 시누가 조금 불쌍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나야 뭐 엄마가 멀리 있지만 가족들은 항상 나를 걱정했고 본인들이 할 수 있는 걸 했다. 또 내가 루이를 데리고 한국에 갔을 때,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니며 그 동안 신경 쓰지 못한 산후조리를 시켜줬다. 언니는 젖몸살이 난 가슴을 뜨거운 수건으로 마사지해서 풀어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시누는 엄마가 삼십 분 거리에 있는데도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 후로 나도 시댁에서는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이상 내 일을 한다. 우리는 라파엘이 총각 때 쓰던 방에서 지내는데, 내가 문을 닫고 있으면 시어머님은 되도록 나를 부르지 않는다. 문이 열려있으면 정말 간혹, 내게 도움을 청하신다.

함께 한 시간이 좀 되다 보니 라파엘과 나 사이에도 어떤 규칙이 생겼다. 언제부턴가 라파엘 집에서는 라파엘이 시어머님을 도와 상을 차리거나 치우고 우리 집에서는 내가 하는 게 우리 사이의 암묵적인 우리만의 규칙이 됐다. 심지어 루이 밥을 챙겨주는 일도 시어머니와 라파엘이 알아서 한다. 그러니 어떨 땐 시댁에 있는 게 내겐 휴식이 되기도 한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시누를 두 번이나 만났다. 두 번이나 라는 말이 좀 의아할 수도 있으니 부연 설명을 좀 하겠다. 시누는 시댁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살지만, 그녀와는 미리 약속이 없으면 보기 어렵다. 우리가 멀리서 왔다고 이미 잡힌 계획을 바꾸거나 그러지 않는다. 한국 가족들은 하루가 멀다고 약속을 잡고 틈만 나면 얼굴을 보려고 애쓰는데, 그게 참 다르다. 그래서 이 주씩 시댁에 와 있어도 한 번만 만나도 많이 보는 거다.


이런저런 이유로 시누와는 가끔 가깝고 자주 멀었는데, 그 이유가 만나고 오면 자꾸 뒷말이 나와서였다.

원체 악의 없이 순수한 타입이지만, 만난 후에 이런저런 말이 부풀려져 들려오면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없어진다. 그것도 시어머니를 통해 그런 말을 들으면 이거 참 난감하다. 다른 유럽처럼 폴란드도 K-코스메틱과 헤어, 음식이 유행이다. 사실 폴란드는 다른 유럽에 비해 조금 더 일찍 K-코스메틱이 들어왔다. 시누는 뷰티에 관심이 많다. 이번에 내게 보톡스를 맞아봤냐고 했고 나는 한국에 가면 미간에는 맞는다고 했다. 피부과 진료를 받으니 유럽에서는 할 수 없던 것들을 하게 된다고 말하며 한국에서는 그런게 쉽고 싸다고 말했는데, 이게 또 와전되서 내게 돌아왔다.

라파엘이 시누 집에 다녀와서 시누가 쓰지도 않는 화장품을 너무 많이 산다고 말했다.

"걔는 전문가의 도움을 못 받으니까 화장품이라도 많이 사야지."

라파엘은 그야말로 넋이 나가 무슨 뜬금포인가 하고 있었는데, 나는 한 번에 이 말이 가진 의미를 알아들었다.

"네 부인은 한국에 가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데, 우리 딸은 그걸 못 하잖아. 그러니 화장품을 많이 사는 건 당연하지!"

내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요새는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말이 전달되는 게 스트레스가 쌓일 정도로 부담스럽다. 가까운 사람과도 그런 일이 종종 있어 오해가 겹친다 싶으면 거리를 두려 애쓴다. 안타까운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오해를 풀려 하면 할수록 이상하게 꼬인 실은 더 꼬여 결국엔 끊어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라파엘이 어머니와 시누가 한 말들을 내게 옮길라 치면, 나에게 말을 옮기지 말라고 선을 긋는다. 본인은 피가 섞인 가족이니 어떤 말이든 듣고 용서와 이해가 빠르지만, 내 경우에는 아무래도 '시'자가 붙다 보니 그게 쉽지 않아서다. 그럼에도 어떤 것들은 귀에 들려와 박힌다. 이유 없이 만들어내는 말장난 같은 소문이 비방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나는 그 사이 그 모든 것을 무시할 만큼 단단해졌을 뿐만 아니라 무료한 폴란드 생활을 하는 시어머니와 시누에게 나의 등장이 꽤 재미난 소재라는 것도 알고 있다.


지난 십오 년간, 우리 시댁 테이블에는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친척들이나 지인들의 소식이 오르곤 했다. 어떤 친척은 십삼 년 전, 시할머니의 장례에서 본 게 다인데도 시댁 식구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밥상에 올리고 이런저런 뒷담화 나누길 즐긴다. 이 이야기가 시작되면 나와 크리스토프(시누의 남편)의 시선이 공중에서 마주친다. 영어가 서툰 그는 나와 사적인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데, 이럴 때 허공에서 부딪힌 그의 시선은 내게 "또 시작이네."라고 말하고 있다. 모르지만 그도 내 시선에서 나와 같은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라파엘과 시누는 여러 면에서 참 비슷해서, 내가 폴란드어를 조금만 하면 그와 이 두 남매의 이야기를 좀 진지하게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또 어찌 보면 신실한 신앙인인 그가 동성애와 퀴어 문화에 대해 보수적인 의견을 내는 걸 못 알아들어서 다행이다 싶다. 알아들으면 나는 분명 토론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릴 거기 때문이다. 또 그 토론의 끝은 십 년 간 서로 얼굴 보지 말기가 되거나 관에 들어갈 때까지 서로 안 보는 최악의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유럽 생활 십오 년차가 넘어가는 나는, 이제 '저녁이 있는 삶'이 어떤 건지 이해한다. 이런저런 풍파로 지친 이, 삼십 대를 보낸 나는 언제나 지금처럼 잔잔한 삶을 꿈꿨다. 그런데, 이렇게 잔잔한 삶을 살다 보니 때론 새로운 인물의 등장이 무던한 일상에 잠깐의 활력이 된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니 우리 시어머니에게 외국인 며느리인 나는 얼마나 더 그럴까. 그나마 여행도 많이 다니고 정기적으로 한국 가족에게도 방문하는 우리에겐 한 장소에서 나고 자란 그들에 비해 이야깃거리가 많기도 하니까. 내가 그들에게 도마 위에 싱싱한 활어가 될 수는 없지만, 숙성된 광어 정도야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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