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하려니 아직도 크리스마스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지금 우리는 시댁인 폴란드에 와 있다. 비행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차를 타고 폴란드 시댁으로 온다. 고양이까지 데리고 우리는 차를 타고 언제나처럼 네덜란드에서 폴란드로 간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더는 중간 호텔이 라이프치히나 드레스덴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쩌다 보니 독일 유학 중인 조카가 그 길의 가운데에 있어 조카를 만나 저녁을 먹었다. 조카가 있는 이 작은 소도시에 올해에만 벌써 세 번째다. 이제는 제법 길도 익숙해지고 상점들도 눈에 익었지만, 여전히 이렇게 한적한 도시에서 사람들은 뭘 하며 사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다들 저기 숨어서 운동을 하고 있구나."
내가 말하자 조카가 웃으며 "숨어서가 아니라 그냥 운동을 하는 거야."라고 내 말을 지적했다.
또 한참을 한적한 도시를 달리며 불 켜진 집안을 보고 내가 "다들 집에 숨어서 크리스마스를 즐기나 봐."라고 말하자 조카는 "그러게 다들 숨어있네."라고 나의 술래잡기 놀이에 합류했다.
조카와 '사쿠라'라는 레스토랑에 갔는데, 거기서 베트남 웨이터가 한국어를 잘해서 놀랐다. 내가 아줌마처럼 이것저것을 묻자 조카가 그만하라며 면박을 줬다. 근데, 왜 외국에 동양 퓨전 음식점 이름은 다 '사쿠라'일까.
호텔 방에 불을 끄고 조카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고 다음 날 맥도널드에서 맥모닝을 먹고 헤어졌다. 맥모닝 한 세트에 7유로가 넘어서 허걱 했던... 삼천 원 하던 맥모닝은 이제 선사 시대의 이야기가 됐다.
늦은 밤이 돼서야 우린 폴란드 시댁에 도착했다.
짐을 풀기도 전에 1월에 출간될 장편 소설의 표지를 정리해 출판사에 보내고 답을 기다렸다. 출판사에서 만든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 디자이너를 직접 찾아서 다시 표지를 만들었는데, 그 과정에 내가 얼마나 미숙한지를 느꼈다. 어쨌든 새벽까지 기다려 표지에 대한 답을 듣고 다시 기다리고... 3시간을 자고 일어나 다시 표지를 결정해야 했다. 다음날 오전이 돼서야 표지를 결정하고 잠깐 잘 수 있었다.
내가 자는 동안 라파엘과 루이는 시내에 나갔다. 이번 년도부터 폴란드는 24일도 공휴일로 정했고 그래서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다. 식당이나 카페도 대부분 두 시까지 영업을 하거나 간혹 네 시까지 영업을 하는 곳이 있을 뿐이었다. 정부가 보수 정권을 바뀌면서 폴란드는 일요일에도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다. 갑자기 폴란드로 오게 된 우리는 부모님과 가족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는데, 살 수 있는 곳이 없어 난감하다.
시어머님은 다른 날처럼 혼자서 크리스마스이브 식사를 준비했다.
공대를 나와 평생 직장 생활을 한 시어머니는 요리에는 재주가 없다. 시할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시할머니가 아이들을 돌보며 요리와 집안일을 했기에 더더욱 그렇다. 오죽하면 루이도 할머니 집에서는 소시지와 빵을 먹는 걸로 알고 있으니까.
그래도 시어머님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있다. 그런데 어제 크리스마스 만찬은 마음이 아팠다. 시부모님이 은퇴하신 게, 십 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시아버지는 오래전에 다리 수술을 했고 심장 수술도 했다. 이제는 하루가 다르게 노쇠한 시부모님이 보인다.
어제 종일 부엌에서 뭔가를 하시던 시어머님이 저녁 만찬으로 내놓은 건 바르쉬치라는 비트수프와 잉어튀김이 전부였다. 이전에는 열한 가지에서 열두 가지의 음식이 테이블에 놓였고 세 가지 종류의 케이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음식은 잘 못하지만 테이블을 꾸미는 걸 좋아해서 새로운 식탁보와 장식을 사는 걸 좋아했었다. 계절에 맞는 꽃을 사서 꽃병에 꽂아두길 즐겼고 자잘한 소품으로 집안 분위기를 바꾸는 걸 좋아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모든 게 집에서 사라졌다. 자잘한 보수공사 시기를 놓친 집은 시부모님처럼 낡아갔다. 집안의 식기류와 물건, 시부모님의 옷.... 모든 게 천천히 낡아가고 있었다.
보통은 식사를 하고 라파엘과 시어머님이 그릇을 정리하는데, 어제는 설거지를 내가 먼저 했다.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하지 말라고 말리는데, 씻을 그릇을 계속 옆에 놔주며 "릴리가 해서 빨리 끝났어. 고마워."라고 마치 내가 설거지를 하는 게 미안하다는 듯이 다정하게 말했다. 언제부턴가 나는 시댁살림에 손을 대지 않았다. 시어머님과 나의 성향이 워낙 다르기도 하고 냄새나거나 익숙하지 않은 음식은 아예 드시지 않기 때문에 뭔가를 해드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모든 게 어제는 조금 죄송하게 느껴졌다. 시어머님도 폴란드 며느리를 맞아 다정하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을까. 언젠가 루이가 사귀는 친구를 데려왔는데, 기본적인 의사소통 말고 안 되면 나도 너무 속상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국에 엄마가 생각났다. 나는 일 년에 한 번, 여름에 엄마를 만난다. 그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약해진 엄마와 마주하게 된다. 내가 얼마나 더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오래 시부모님과 크리스마스를 지낼 수 있을까.
그럼에도 아직 크리스마스는 끝나지 않았다.
오늘은 시누네 가족이 온다. 그들과도 거의 일 년 만에 만나는 거다. 시누가 결혼하면서 마치 지참금을 빼가듯 시댁의 가세는 기울었다. 이 이야기도 하고 싶은 데, 이건 아마도 소설에서 다른 식으로 쓰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