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와 폴란드의 새해맞이.
올해 우리는 폴란드에서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보냈다. 그전에는 매해 폴란드에서 새해를 보내다가 코로나 시기부터 네덜란드에서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보냈다. 그리고 다시 2년 만에 시댁인 폴란드에서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보내게 됐다.
폴란드에서 지내는 내내 눈이 내렸다. 26일에 시누네 집에 다녀오면서 차로 쏟아지는 눈을 보며,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가 떠올랐다. 전에는 이 책을 여름에 읽었는데, 겨울에 그것도 눈이 쏟아지는 폴란드에서 읽으니 그 느낌이 더 강했다. 콧등에 떨어져 차갑게 녹는 눈의 감각을 소설 속 주인공의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원래는 26일에 루이를 시누에게 맡기고 아우슈비츠 박물관에 갈 계획이었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다시 읽으며 인간과 폭력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그 연상이 자연스럽게 아우슈비츠로 이어졌다. 지금 계획하는 소설 말고 장기적으로 내내 생각하고 있던 소설에 아우슈비츠(오시비엥침)를 한 배경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아우슈비츠 박물관은 여러 번 방문했지만 시내는 간 적이 없었다. 다음 소설에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지역을 거쳐 폴란드에 자리 잡은 여성과, 러시아 시베리아에 잡혀갔다가 살아남은 여성이 등장하는데, 그들을 모두 그리기에 내 역량이 충분할지 모르겠다. 이 소설은 언제쯤 쓸 수 있을 지도 사실 불확실하다. 아주 오래전부터 머릿속으로 어떤 장면들이 떠올랐는데, 요즘에 그 생각이 조금 더 구체화되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내년쯤, 자료가 어느 정도 모아지면 초고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름에 아우슈비츠는 네 번 정도를 경험했다. 원피스를 입었는데, 다리 사이로 땀이 흐르는 게 느껴질 정도로 더웠다. 겨울에, 아주 추운 겨울의 아우슈비츠를 보고 싶었다. 그런데 티켓이 모두 매진이었다. 1월 초까지는 티켓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라파엘과 카토비체 시내를 걸었다. 한인 식당에 가서 따뜻한 국에 흰쌀밥을 먹자, 위염이 조금 좋아지는 것 같았다. 아들을 놓고 둘이 하는 데이트가 우린 즐거웠는데, 루이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울었다. 배가 고팠는데 먹을 게 없었다고. 우리가 시누네로 돌아가는 길에 한국 치킨과 김밥을 잔뜩 사갔는데, 자기는 충분히 먹지 못했단다. 하루 종일 배가 고파서, 자기는 내내 굶은 느낌이었다고...
네덜란드에서는 그 해의 마지막 날에 올리볼른을 먹는다. 12시가 되면 올리볼른 이 든 그릇을 들고나가 이웃과 함께 나눠먹으며 불꽃놀이를 즐긴다. 올리볼른을 직접 튀겨서 먹는 가정도 있다는데, 우리는 보통 트럭에서 사서 먹는다.
네덜란드 정부는 내년부터는 새해 폭죽놀이를 금지한다고 알렸다. 화려한 불꽃놀이를 더는 못 보는 게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매번 이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생각하면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네덜란드에서는 폭죽놀이로 인한 화재가 더 많았다. 암스테르담 본델파크 안에 본델교회에 불이 났다. 이 교회 앞으로 나도 자주 지나다녔는데....
폴란드도 네덜란드와 비슷하다. 마지막 저녁을 거하게 먹고 12시까지 기다린다. 11시 30분쯤에 어머님이 케이크와 샴페인을 준비하면 함께 간식거리를 준비하곤 했다. 밖에서 나는 요란한 폭죽 소리를 들으며 12시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서로 안고 가벼운 키스를 하며 축복의 말을 나눈다. 케이크와 샴페인을 홀짝이며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 밖에 나가 폭죽 터지는 것도 보고 거리를 조금 걷다가 들어와 간식을 조금 먹으며 다시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눈 후, 자리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든다.
다음날 늦은 아침을 다 같이 모여서 먹기 시작하는데, 이때 여러 종류의 햄과 빵, 샐러드가 놓인다. 여기까지가 내가 기억하던 폴란드에서의 12월 31일이었다. 올해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시부모님은 1950년 생이다.
시어머니는 1월 1일에 태어났고 시아버님은 1월 15일에 태어났다. 그래서 시어머니는 항상 새해 덕담을 나누는 동시에 생일 축하를 받는다. 생일이 큰 행사와 겹치니 생일다운 생일을 보낸 적이 없다. 또 본인 말고는 음식을 준비할 사람이 없으니 생일날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 나라면 그것도 싫을 것 같다.
우리는 루이 스키 장비를 돌려줘야 해서 31일에 스키장에 다녀왔다. 스키 강습을 끝내고 초밥을 사서 집에 올 계획을 세웠지만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식당들이 일찍 문을 닫았다. 집에 오는 동안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는데 받는 곳이 없었다. 어렵게 문 연 초밥 집을 찾았는데, 그곳도 한 시간 일찍 퇴근한다며 주문을 거절했다. 결국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간단하게 크림스파게티와 스테이크를 만들어 저녁을 먹으니 열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짐 정리를 조금 하고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11시 40분이 됐다. 평소라면 어머님이 케이크와 샴페인을 준비할 텐데, 조용했다. 카운트다운 10분 전에 부랴부랴 디저트를 준비하고 다 같이 모였다. 여러모로 이번에는 시부모님의 노쇠함을 체감한 명절이었다. 덕담을 나누던 중간에 아버지가 중심을 잘못 잡아 쓰러졌다. 눈 깜짝할 사이였고 그래서 아무도 아버님을 잡지 못했다.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머리를 문에 부딪혔다. 순간, 모든 게 멈춘 것 같았다. 밖에서 폭죽이 연달아 터졌고 함성이 들렸다. 아버님은 그대로 누워 혼자 일어나려 애쓰고 있었다. 라파엘이 도와주겠다고 하자 라파엘의 잘못도 아닌데 욕을 했다. 양쪽 고관절 수술로 지팡이를 짚는 아버님은 신음을 뱉으며 소파에 상체를 기대고 엎드렸다. 우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있었다. 아버님은 유독 어머님과 라파엘에게만 화를 내며 엉덩이를 들어 의자에 앉았다.
"이제 다 괜찮아. 정말 괜찮아."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깊은 숨을 쉰 아버님이 뱉은 말이었다. 뭔가 어색하고 찝찝한 마음으로 우리는 덕담을 나눴다. 그 사이에 시누가 전화로 새해 인사를 했고 아버님은 조금 더 앉아 있다가 방으로 돌아갔다. 루이는 내내 내 품에 안겨있었다. 할아버지가 쓰러질 때 자기가 바로 옆에 있었는데, 잡아주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우리가 얼마나 더 시부모님과 새해를 함께 보낼 수 있을까? 내가 얼마나 오래 한국에 엄마를 볼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하루가 다르게 약해지는 부모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 미래를 설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아직 어리고 부모님은 연로해지는데,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된 채로 다시 한 살을 먹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