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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쓴다는 것

박연준 시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by 따시

쓴다는 것은 ‘영원한 귓속말’이다. 없는 귀에 대고 귀가 뭉그러질 때까지 손목의 리듬으로 속삭이는 일이다. 완성은 없다. 가장 마음에 드는 높이까지 시와 함께 오르다, 아래로 떨어뜨리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박살은 갱생을 불러온다.

반연준 시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중에서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나? 학교 때 숙제를 뺀다면 아마도 결혼 하고 나서 간혹 쓰던 일기에서부터 시작으로 쳐야 할 것이다. 아니다. 그 전에 잠깐 작가를 흉내 냈던 적이 있다. 가상의 대상에게 편지를 쓰고, 짧은 단편소설도 썼다. 작품이라고 할 것은 없지만 한 시절 풋풋했던 내 모습이라 어느 구석엔가 잘 모셔두었다. 시어머니와 불화가 있으면 말로 하지 못하는 것을 글로 썼다. 칸칸이 모눈으로 줄이 쳐진 표지가 예쁜 노트를 샀고 일하는 틈틈이 글로 쓰며 감정을 풀었다. 말하자면 자기 치유의 글쓰기였다. 막연했지만 혹시 작가가 된다면 이런 모든 경험이 재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 기억은 시한이 짧아 그때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사연들은 벌써 가물가물하다. 책장 어느 구석엔가 놓인, 오래된 상자를 열면 그 속에 봉인되었던 시간이 터져 나오겠지만 아직은 열고 싶지 않다. 지금은 지금의 감정들을 잘 버무려 글로 쓰는 일을 해야 한다.

본격적인 글쓰기라면 826일 전에 시작한 모닝 페이지를 꼽아야 한다. 단연코 이 글이 내 모든 글의 시발점이다. 그날 아침 일찍 일어나 노트를 열고 만년필을 잡았을 때 어떤 계획도 하지 않았다. 글에 대한 구성도 없고 당연히 기승전결 같은 어려운 말들이 끼어들 만한 자리도 아니었다. 그러나 날마다 썼다. 아침에 일어나면 의식을 치르듯이 쓴다. 모닝페이지는 노트에 만년필로 쓰므로 잘못 쓰여진 문장은 고치지 않고, 쓴 글을 다시 읽지도 않는다. 글로 남겨져 있긴 하지만 마음으로 흘려보낸 명상 같은 것이다. 박연준 시인의 말대로 그것은 “‘영원한 귓속말’이다. 없는 귀에 대고 귀가 뭉그러질 때까지 손목의 리듬으로 속삭이는 일이다. 완성은 없다.” 작품으로 내기 위해 쓴 글이 아니므로 퇴고를 하지 않는다. 그렇게 써낸 시간이 필력이 되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높이까지 시와 함께 오르다, 아래로 떨어뜨리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박살은 갱생을 불러온다.”라는 말이 나의 말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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