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 <아직 태어나지 않은 책>
아직 태어나지 않은 책은 물렁하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반죽 덩어리, 그 물렁물렁한 책을 베개 삼아 나는 또 시상(詩想)에 잠긴다
최승호 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책> 중에서
우리 몸 안에 방이 있다면, 그중 하나가 ‘생각’이라면 작가는 그 방에 작은 씨앗 하나를 묻어 놓는다. 씨앗은 어딘가 내 속에서 저절로 생겨나기도 하고, 길을 가다가 우연히 내 생각 속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가루처럼 보송보송했던 그것은 차츰 습기가 더해져 뭉쳐진다. 뭉쳐지기 시작한 씨앗은 다른 씨앗들과 합체해서 물렁물렁한 반죽이 된다. 반죽은 만질수록 변신한다. 처음에는 푸석푸석하게 따로 놀다가, 손의 움직임에 따라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합쳐진다. 어떤 날은 칼국수 반죽처럼 커다란 덩어리였다가, 어떤 날은 새알심처럼 아주 작은 알갱이로 쪼개진다. 반죽은 치댈수록 물렁물렁해진다.
마음속에 심어진 씨앗도 반죽처럼 자꾸 치대어야 한다. 새로운 습기를 공급해 주고 조몰락조몰락 온기를 더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잘 반죽이 된 물렁물렁한 덩어리가 세상 밖으로 나오면 딱딱해진다. 모양이 굳어진다. 고칠 수 없다. 글에 대해 작가에게 주어진 권한은 반죽 덩어리를 만질 때까지다. 첫 문장이나 마지막 문장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 문장들이 이어가는 내용도 중요하다. 이야기는 아직 내 속에 머물 때 오래 다듬어야 한다. 모든 반죽은 숙성기간을 거친다. 빵 반죽은 적절한 숙성기간을 거쳐야 많이 부풀어 오른다. 밀가루 반죽도 숙성기간을 거쳐야 더 찰지도 쫀득한 식감의 면발을 만들 수 있다.
글도 숙성기간이 필요하다. 시간을 두고 퇴고해야 하는 이유다. 태어난 생명은 어머니도 바꿀 수 없다. 책으로 묶어져 이미 독자가 읽어버린 글은 작가라도 고칠 방법이 없다. 글은 독자의 마음속에 씨앗으로 뿌려지고 다시 자라난다. 글은 태어난 세계에 멈춰있지 않는다. 이리저리 장소의 구애됨 없이 이동한다. 어떤 글은 수 천 년을 살아내기도 한다. 오래전 쓰인 고전을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것처럼, 오늘 내가 쓴 문장 하나가 내가 없는 세상에서도 여전히 살아 움직일 수 있다. 모든 글은, 모든 책은 작가보다 오래 세상에 남아 있다. 작가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만난다. 더러 그들의 삶에 관여하기도 한다. 작가가 마음을 다해 글을 써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