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복희 시 <필통 사랑>
<연필 사랑>
초등학교 어린 시절
문화 연필 열 자루를 면도칼로 깎아
필통에 가지런히 넣어두던 아버지
문복희 시인 <필통 사랑> 부분
첫아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대형마트에 가서 문구를 한 보따리 샀다. 직장을 가진 엄마의 마음에 ’혹여 아이의 준비물을 제때 챙기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하는 조바심 때문이었다. 곰돌이 그림이 그려진 문화 연필을 한 다스 샀다. 뾰족하게 깎아 일일이 이름표를 붙이고 필통 속에 가지런히 채워주었다. 아이는 크면서 자기만의 문구를 선호했고 이름표 붙였던 연필 중 어떤 것은 지금도 서랍 속에 뒹굴고 있다.
그때, 나의 필통을 채워준 것이 누구였는지는 기억조차 흐릿한데, 달그락거리던 필통 소리만은 선명하다. 학교를 오가던 길은 좁은 산길이었다. 오래된 무덤을 지나야 하는 길이었다. 날이 저물도록 학교 운동장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괜히 등골이 오싹해서 산모퉁이에서부터 뛰기 시작했다. 뛰는 나의 몸에 묶인 책보 속에서 연필도 덩달아 뛰었다. 숙제하려고 필통을 열면 연필심이 부러져 있었다. “맨날 뛰어다니니 연필이 다 곯지” 가윗날로 연필을 깎아주시던 엄마에게 혼나던 기억은 아직 생생하다. 연필이 귀했던, 흐릿한 연필심에 침을 묻혀가며 꾹꾹 눌러 글씨를 쓰던 시절이다.
중고교 때는 뾰족하게 연필을 깎아 필통에 채워놓는 것이 좋았다.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샤프도 있었지만, 나는 연필이 좋았다. 글씨를 쓸 때 노트 위에서 들리는 사각사각 소리와 촉감이 좋았다. 나는 몽당연필도 좋아한다. 모나미 볼펜 깍지에 끼워서 사용하면 열심히 공부한 것 같아 뿌듯했다.
사무실에서 정착한 연필은 끝에 고무가 달린 노란 HB 동아연필이었다. 고무 달린 연필은 산처럼 쌓여있는 종이 서류를 넘길 때 유용했다. 문명의 발달로 점점 연필의 용도가 사라졌다. 여기저기 뒹굴고 있는 연필들을 모아다 뾰족하게 깎아 연필꽂이에 꽂아 놓는 것을 즐겼다. 결국 버리게 된 연필들은 퇴직할 때 가지고 왔다. 쓰임새도 없는 연필을 서랍 속에 차곡차곡 넣어놓았다. 아이의 문화연필부터 나의 동아연필까지 크기도, 무늬도 색도 가지가지다. 서랍을 열면 거기에 엄마와 나와 딸아이의 한 시절이 가지런하게 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