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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나의 유년

김애란 산문 <<잊기 좋은 이름>>

by 따시

때론 교육이나 교양으로 대체 못 하는, 구매도 학습도 불가능한 유년의 정서가. 그 시절, 뭘 특별히 배운다거나 경험한단 의식 없이 그 장소가 내게 주는 것들을 나는 공기처럼 들이 마 셨다.

-김애란 산문 <<잊기 좋은 이름>> 중에서


나의 어린애 시절은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고향이다. 유복했거나 즐거웠던 특별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난한 농부였던 엄마. 산비탈의 기울어진 초가집. 두어평 방, 동이 물이 꽁꽁 얼던 헛간 같은 부엌. 젖은 솔가지로 불을 지피느라 부엌에선 항상 매운 연기가 났다. 부엌보다 더 큰 외양간은 비어있고, 마당 끝에는 사철 냄새나는 두엄더미가 있는 집. 그 가난했던 어린애 시절이 왜 늘 가슴을 아리게 하는 나의 고향일까.

그곳은 나의 많은 처음들이 있는 곳이다. 받아쓰기 공책으로 사용했던 누런 비료 포대. 써지지 않는 연필심에 침을 묻혀 꾹꾹 눌러쓰다가 귀한 연필심을 부러뜨렸던 앉은뱅이 책상. 아장아장 기어 다니다가 부딛쳐 눈썹을 찢긴 첫 흉터, 봉숭아 꽃물을 들이고 다음날 아침 손톱에서 피가 난다며 앙앙 울던 곳. 바지랑대에 묶어놓은 검정 고무줄. 씹던 껌을 붙여 놓았던 흙 바람벽.


나는 그곳에서 무서움과, 초조함과, 슬픔과, 즐거움과, 외로움과, 가난함을 “공기처럼 들이마”시며 익혔다. 그것은 누군가 애써 가르쳐 주지 않았고, 저절로 알아진 것들이었다. 구멍가게 할머니는 졸고 있었고, 동전이 없는 나는 달달하게 진열되어 있던 둥근 빵을 손에 들고 튀어 옥수수밭으로 숨었다. 들켰는지, 빵값을 물어 주었는지는 모르겠다. 크림빵이었는지 단팥빵이었는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내 기억속에 함께 일을 도모했던 작은언니는 그 기억이 전혀 없다고 했다. 동행이 친구였을까? 아무도 모르게 나 혼자 했던 것일까? 어쩌면 빵을 훔쳐 먹었다는 기억 자체가 가짜 기억일까? 고향이 아직 거기에 있고, 고향과 함께 늙어가는 사람들이 그곳에 있다면 나의 희미한 기억들은 조금더 선명해질 수 있었을까? (나의 고향은 오래전 국가시설에 수용되었다) 나의 어린애 시절 경험들은 기억속에 밀폐된채 봉인되어 있다. 그 시절로 갈 수 없고, 그 장소로 가도 추억할 수 있는 것들은 아무것도 없다. 고향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눌 친구들과는 오래전에 헤어졌고, 모든 기억들은 스스로 만들어 가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늘 고향이 그립다. 거기 뒷동산에 흐드러지게 피던 참꽃이 그립고, 붉은 흙마당이 그립고, 먼지 뽀얗게 날리던 신작로가 그립다. 지렁이가 비처럼 떨어져 내리던 낮은 초가 지붕도 그립고, 미루나무 세 그루 서 있던 작은 우물가도 그립다. 아기 무덤 때문에 지날때마다 숨이 턱에 차오르도록 뜀박질을 하던 산모퉁이 길도 그립고, 손바닥에서 쇳냄새가 나던 회전그네도 그립다. 읍내에서 단발머리를 예쁘게 자르고 온 모습을 보고 샘났던 동무가 그립고, 책보속에서 달그락거리던 필통소리가 그립다. 방문을 열면 휘리릭 꺼져버리던 등잔불이 그립고, 마당 가득 떨어져 내리던 붉은 알밤이 그립다. 여름밤 마당에 펼쳐놓은 멍석위의 두레반, 그 위에 양푼채 올라있던 찐 감자와 삶은 옥수수가 그립고, 누워서 별을 헤던 그 밤의 하늘이 그립다. 별하나 나하나, 별둘 나둘, 결국 그리운 것은 별 헤는 방법을 가르쳐 주던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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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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