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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당신의 부재

박준 시 <팔월> 전문

by 따시

너는 팔월에도 없는 사람이다

-박준 시 <팔월> 전문


......

그러다가

어느날

그를 닮은 누군가를 스칠 때, 그가 좋아하는 어떤 것을 볼 때, 느닷없이 밀려드는 그리움이 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안에서부터 울컥 슬픔이 몰려나오는 그런 때가 있다.

그때 비로소 당신의 부재가 내게 다가온다.


엄마는 일흔두 살에 내 곁을 떠나셨다. 엄마가 떠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저 거기 잘 계시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길을 가다가 구부정하게 걷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짧은 파마머리며 허름한 옷차림이며 영락없는 엄마였다. 하마터면 ’엄마‘ 하고 부를뻔했다. 그렇게 당신의 부재는 때때로 내 마음을 훑으며 각인시켰다. 머리카락이 세면 머릿속도 하얗게 변해가겠거니 했지만, 세월이 지나도 그리운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의 뇌는 기억을 왜곡시킨다고 했다. 그러더라도 이별에 대한 기억은 오래 남는다. 이별은 서로 몸이 멀어지는 순간이 아니라 나의 기억 속에서 당신이 사라지는 순간이 이별인 거다. 아직 내게 당신의 기억이 있는 동안은 이별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기억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당신 손의 온도를 느낄 수 없을 때, 당신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 때 내가 목소리 높여 불러도 당신이 대답하지 않을 때 당신의 부재는 또다시 내 마음을 아리게 훑어낸다.


팔월이 시작되었다. 더위가 잠깐 빗속으로 숨었다. 햇볕을 피해 점점 더 빠르게 움직이던 아침 시간에 잠깐 틈이 생겼다. 내일쯤에 비가 그치고 나면 징검다리에 앉아 발을 담글 수 있겠다. 팔월은 더위가 한풀 꺾이는 계절이다. 찌든 땀 냄새에 지겨워진 사람들에게 아주 작은 바람 하나 건네며, 이제 곧 다른 계절이 올 거라고 속삭이는 달이다. 며칠 여름 감기에 시달렸다. 유난히 더위를 느끼는 여름이다. 당신은 팔월에도 없는 사람이다.


*훔친문장 제1권의 연재를 마감합니다. 그동안 관심가져 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훔친문장 제2권과 다른 콘텐츠로 곧 연재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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