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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빛 Nov 17. 2022

비교하면 안 된다. 다양성을 인정해야

유연근무하는 아빠

비교하면 안 됩니다. 아이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내아이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 내아이 친구의 다양성과 존엄성을 인정하면 ☞ 공동체의 다양성을 인정하게 되고 ☞ 나아가, 내아이와 내아이 친구가 자라나 함께 살아갈 세상이 잘 사는 세상이 될 수 있습니다. 


, 유튜0에 보면, S대를 보낸 부모의 교육법, 강남쪽집게학원의 공부법에 대해 소개한 책과 동영상이 인기를 끕니다. 좋은 대학에 보냈다는 성공담에 대한 책은 몇만 부가 팔리고 동영상은 조회수가 어머어마합니다. 참 많이도 찾아보고 읽어본 것 같습니다. 제목이 꽤 자극적이어서 뭔가 대단한 보석이나 일급비밀을 찾은 거 같아 재빨리 읽어보고 들어보면 실망이 큽니다. 에이~ 결국 다 자기자랑이네..하게 됩니다.


아빠는, 전에 이런 책과 동영상을 보고나면 많이 부러워했습니다. 샘도 났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성공사례를 자신도 따라해 봐야겠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게 있습니다. 아이를 학교에서 데려와서, 씻기고, 밥 먹이고, 책 읽히고, 숙제 같이 봐 주고, 아이보다 먼저 진도부분 공부하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있었던 일 같이 얘기하고, 아프면 직장일 하다 달려오고, 약 먹이고, 새벽까지 물수건으로 닦아주고, 두아이 싸움 말리고, 혼도 내 보고.. 아이 키우면서, 아이와의 교감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느끼는 게 있습니다. 첫째아이와 둘째아이 다르고. 우리아이와 남의 아이 다르고. 나 어렸을때와 내자식 다르고. 다 다르다는 것. 다양하다는 것. 다양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다양성을 깨닫고 다양성을 존중하게 되면서 바뀌게 된 게 나와 남을 비교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내 아이와 남을 비교하지 말자~ 는 것입니다. 비교해 봤자 좋고 나쁜 건 그 순간의 기분 뿐이고, 또 사실 서로 처한 환경이 달라 일률적으로 한 가지 잣대로 비교한다는 게 맞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걸 간과하고서 자꾸만 서로 다른 나와 남, 내아이와 남의아이를 비교한다면 정작 내 삶, 내아이의 삶은 없어지거나 의미없어지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왠지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의 것을 쳐다보고 관심갖기에 앞서 내 삶, 내 아이의 삶에 집중하고 충실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의 공부를 가르쳐보면 첫째아이와 둘째아이의 이해도와 사고력이 다 다른 걸 깨닫게 됩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 보면 스펀지처럼 받아들이는 두 아이의 흡수력이 다르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됩니다. 노는 모습을 보면 첫째와 둘째가 좋아하는 놀이가 뭐고 잘 하는 쪽이 어느 쪽인지 짐작이 갑니다. 아이의 능력은 무궁무진하고 성장할 시간이 많아 어떻게 클지 아직은 잘 모르고 또 함부로 섣불리 판단을 하면 안 되겠지만 말입니다. 그림그리는 모습, 큐브하는 모습, 레고하는 모습, 책 읽는 모습,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책의 제목, 유투브에서 찾아보는 놀이..를 보면 조금은 짐작이 갑니다.


내 두 아이도 이렇게 다른데, 내아이와 남의아이는 얼마나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절대로 내 두 아이를 비교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과 내 아이를 비교해선 되겠는가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생각을 자꾸 하게 되면서 책과 유투브에서 인기있는 성공사례를 담담하게 바라보는 눈이 생기고 있습니다. 아주 초연해 진 건 아니지만, 조금씩 이성적으로 나와 남의 다름을 구별하는 분별력을 키워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라는 사고를 하게 되니 다른사람의 성공사례가 무조건적으로 부러워만 보이거나 따라해야될 목표지점으로만 보이거나 하는 조급함 같은 것도 없어지게 되는 게 참 신기합니다. 아이를 잘 키워 좋은 대학에 보낸 사람은 그 나름의 이유가 분명 있을 거라고 인정하고 박수를 쳐 주는 여유가 맘 속에 자리잡기 시작했고, 그 사람이 한 방법은 그 사람에게 맞는 방법이지만 나의 아이에겐 맞을 수도 있지만 안 맞을 확률이 더 높을 거라고 방법의 다양성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도 생깁니다.


너도 나도 불안한 마음에 영어학원, 수학학원, 사회학원에 아이를 보내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학원이 가지는 장점과 단점이 모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원이 영리를 목적으로 학부모의 조급함과 불안함을 이용하는 것도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아이와 부모가 주도적인 학습을 하며 해결하기 힘들고 가려운 부분을 도와주는 학원의 기능 또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나같이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들이 불안함과 조급함에 흔들리지 말았으면 합니다. 남의 아이와 내 아이의 다름을 존중하고, 남과 내가 처한 환경이 다 다름을 인정했으면 합니다. 이 방법이 아니면 안 된다며 혼란을 주는 사교육의 유혹 속에서 굳건히 중심을 잡고 의연하게 각자의 길을 뚜벅뚜벅 갔으면 바랍니다.


어떤 아이는 그림을 참 잘 그립니다. 어떤 아이는 강아지에 대해 참 잘도 압니다. 어떤 아이는 탁구를 참 좋아합니다. 어떤 아이는 기괴하고 엽기적인 책을 좋아합니다. 어떤 아이는 학교에서 하는 화초 키우기에 열성을 다하고 두각을 나타냅니다. 어떤 아이는 야구를 좋아해 야구부에 들어가는 게 작은 바램입니다.


공부 잘 하는 아이 빼고는 다 둔재 취급받는 세상은 이젠 갔으면 좋겠습니다. 운동은 머리 나쁜 사람이 한다는 그런 말 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보니 세상밖 성공의 순서는 성적 순이 아니었더라.. 그걸 나중에 알게 되었더라.. 라고 뒤늦게 웃픈 후회를 하는 그런 교육, 그런 가치관은 이젠 좀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세상, 다양한 아이들이 존중되는 세상이었음면 좋겠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은 다 다르게 태어납니다. 다 다양하게 태어나기 때문에 누가 천재고 누가 아닌 것 없이 다 천재로 태어납니다. 다 천재인데 이 사회가 천재인 아이들을 몰라보고 둔재로 치부하고 둔재로 키웁니다. 한 가지 잣대로.


아이를 키우며 되레 아빠가 성장합니다.

어른이 참 나빴다는 걸 느낍니다. 아이의 다양성을 깨닫기만 해도 세상이 달라보이는 것을. 우리는 모두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이기적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좋은 방법이 있으면 이기심에 나만 알고 남에겐 안 알려주려 했겠지요. 어치피 어떤방법이란 건 다른사람에겐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사람이란 다 다른 조건에서 다른 생각을 하며 자라온 다른 존재이므로 한가지 방법으로 안 통한다는 걸 몰랐기 때문에. 사람이 다 다르다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했다면 서로를 존중하고 무시하지 않았을 텐데. 이 아이가 공부 아닌 다른 어떤 걸로 성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한 가지 더 관심있게 들여다 보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


내 아이와 남의 아이는 다릅니다. 뇌구조, 이해의정도, 살아온환경, 신체조건. 이 아이들이 크면 서로서로 경쟁의 대상이 절대 아닙니다. 내 아이와 남의 아이는 경쟁해서 밟고 올라가야할 경쟁자가 아닙니다. 다 다르기 때문에. 그래서 경쟁자 취급하듯 좋은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나만 갖고있고 남에게 잘못된 정보를 흘려주고 그래선 안 됩니다. 오히려 내 아이도 잘 되고 남의 아이가 잘 되는 모습을 그려야 합니다.


내 아이가 컸을 때의 세상, 큰 세상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 아이가 컸을 때 제2의 IMF가 와서도 안 되고 제2의 우크라이나사태가 와서도 안 되고 주식폭락사태가 와서도 안 됩니다. 내 아이가 컸을때 국민연금이 바닥이 나서도 안 됩니다. 내 아이가 컸을때 질적으로 잘 살고 정신적으로 행복한 세상이 되려면 내 아이만 잘 되서는 안 됩니다. 내 아이의 친구들도 다 잘 되어야 합니다. 각 분야에서 내 아이의 친구들이 잘 되어 전체적으로 이 세상의 질적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즉, 공동체가 잘 되어야 내 아이도 그 공동의 혜택을 보게 됩니다. 다시말하면, 서로 다른 내 아이와 남의 아이가 다 잘 되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잘사는 공동체가 형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모든 부모가 바라는 것이지, 아이가 커서 이 세상이 어둡고 살기힘든 세상이 되는 걸 절대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양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나아가선 장려하고 추천해야 합니다.  


20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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