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봐 줬다, 둘째 봐 줬다 정신이 없지만 아빠는 인내합니다. 첫째 봐 주다 둘째가 오빠는 너무 오래 봐 주고 자기는 안 쳐다본다고 입이 나와 있습니다.
이때 아빠도 인내해야 합니다. 이 귀한 시간에 아빠가 먼저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해 폭발하면 안 됩니다.
아빠도 노력해야 합니다. 화가 나려다가도 순간 화를 멀리서 바라보려 노력하면 스스로 가슴에 차 오르려던 묵직한 뭔가가 조금씩 내려갑니다. 몇번 이쁜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후회하고 욱 하고 후회하고를 경험해 보고 배운, 배워 실천중인 제 나름의 노하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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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아이의 사회숙제는 여전히 고난위도입니다.
한학기도 안 지났는데 고조선에서 시작해 벌써 영조와 정조시대를 달리고 있습니다. 진도가 초고속열차 수준입니다. 나같았으면 내달음치는 진도에 숨이 넘어가고 가슴이 답답해 했을 겁니다. 아이도 비슷한 감정 어디 즈음인 것 같지만 참는 것 같습니다.
둘때아이는 아직 수학에 자신감이 없어 합니다.
다른 아이들은 수학을 잘 하는데 자기만 못 한다고 합니다. 다른아이들은 엄청난 속도로 빨리 푼다, 자기가 가장 늦게까지 푼다 합니다. '괜찮다 괜찮다' 해 줍니다. '빨리 푼다고 잘 하는 게 아니란다. 천천히 푼다고 못 하는 게 아니란다. 천천히 생각하며 끝까지 풀어보려는 습관을 들이면 지금은 느리고 부족한 것 같이 보여도 나중에는 오히려 니가 수학을 더 잘하고 있을 거야~' 라고 긍정의 말을 반복해 줍니다.
아이의 수학수준은 사실 연산입니다. 더하기 빼기. 연산을 빨리 하면 좋지만, 이게 나중에 고등수학을 빨리 푸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아이는 아직 모를 겁니다. 지금 느리면 뒤쳐진다 싶을 겁니다. 이해가 됩니다. 친구들과 비교되고 뒤쳐진다는 불안함. 아빠가 아이 입장이라도 그럴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까지 공부해 본 이 아빠는 압니다. 시간이 필요할 뿐이지 연산실력은 나중에 다 비슷해 진다고. 올라갈수록 수학의 실력은 빨리 푼다고 좋은 공식을 많이 안다고 좋은 해법이 있다고 잘 하는 게 아니란 것을.
지금처럼 늦게 풀더라도 나 스스로 생각하며 이렇게 저렇게 풀어보려고 하고 그렇게 해서 풀어내는 모습에서 나온다는 것을. 그 느림이 어느순간이 되면 빨라지게 되는 것 뿐이란 것을. 아빠도 실패와 경험을 통해 배웠으니.
이 아빠에겐 참 쉬워보이는데 아이는 덧셈을 맞기도 했다 틀린 답을 쓰기도 했다 합니다. 이전에는 틀리면 화가 났습니다. 지금은 화를 안 내려고 노력합니다. "다시 한번 해 보자~ 다시 생각해 보면 떠오를 거야~" 라고 긍정의 말을 해 줍니다. 희한하게도 그게 효과가 있습니다. 아빠도 신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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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답을 씁니다. "00야~ 아니지, 이렇게 쉬운 걸 모르면 어떻하니~?" 보다는, "00야~ 거~의 맞았는데, 우리 다시한번 생각해서 풀어 볼까?" 합니다. 그렇게 기다려주면, 아이가 습관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풀던 모습에서 골똘히 다시한번 생각해서 풀어보려고 합니다.
시간이 걸립니다. 그때 참견하거나 잔소리를 하면 안 됩니다. 시간이 흐릅니다. 보통 이때 부모는 속이 터집니다. 아빠도 그랬었습니다. 그래도 참고 기다립니다. 아이는 눈을 굴리며 이리저리 생각합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다음 쓰는 답은 맞습니다. 간혹 살짝 빗겨갈 때도 많습니다. 이때도 한번 더 기회를 주면 답에 접근을 합니다.
침묵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실은 아이는 속으로 연산의 논리를 생각하면 암산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빨리 풀라고 재촉을 하면 불안해서 더 못 풀거나 전혀 맞지않는 답을 툭툭 내뱉어버립니다. 게 중에 하나 맞아걸리겠지 하고...
그러나 충분한 시간을 주고 생각하게 하면 눈을 굴리고 손가락셈도 하고 또 생각하고 하며 풀아냅니다. 어른이 보기에 참 답답해 보일 수 있습니다. 이때 욱 하면 엄마아빠가 집니다.
이때 욱해 성급히 대하면 이 세상에 천재로 태어나 빛을 본 우리 아이들을 망칩니다. 다 아이의 뇌는 다릅니다. 서로 다른 뇌를 회전시켜 생각할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저 아이는 저 아이의 뇌로 저렇게 생각해서 풀 테지만, 이 아이는 이 아이만의 뇌로 저렇게 풀지 않고 이런방식으로 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풀고 있는데 어른이 저런 얘기를 하면, 잘 돌리고 있는 뇌를 탁 하고 중단시켜 버릴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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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아이가 숙제로 학교게시판에 올린 자신의 글을 보고 또 보고 합니다. 자기 글이 마음에 안 드나 봅니다.
다른아이들 글이 더 잘 쓴 것 같다며 부러워하는 눈치입니다. 아빠는 첫째에게 무한 칭찬, 폭풍 칭찬, 엄청난 놀라움, 오버를 해 줍니다.
아빠는 살짝~ 학교게시판에 올린 다른 아이들의 글을 빠르게 읽어봅니다. 아이들의 다양한 소재, 다양한 글솜씨들이 느껴집니다.
일부러 아이에게 좋게 얘기해 줍니다. 아빠는 네 글이 가장 잘 쓴 것 같다고. 이런문구, 이런문구 봐봐, 너무 잘 쓰지 않았냐고, 어떻게 이런 좋은 문구를 쓸 생각을 했냐고. 아이가 탭으로 문구를 수정했다 지웟다 합니다. 결국은 처음 쓴 그 글 그대로 둡니다.
아이에게 말해 줍니다.
"00야~ 글은 누가 더 잘 쓰고 누가 더 못 쓰고...를 다른 사람이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단다. 모든 글은 다 나름의 가치가 있고 속 뜻이 있단다. 다른 아이가 더 잘 쓰고 내 글은 못 쓰고... 이런 기준이라는 건 없는 거란다. 내가 나만의 필체로 내 고유한 생각을 쓴다면 그게 최고의 글이 되는 거란다. 혹 남이 내 글을 평가하더라도 평가로 받아들이지 내 고유한 글이 잘못되었거나 그런 건 없단다. 오히려 독창적인 글이 좋은 글이란다. "
"다만, 그런 건 있단다. 과거에는 글을 다소 만연체로 길게 길게 썼는데, 이제는 글을 짧게 간결하게 쓰는게 좋단다. 그래야 읽는 사람도 이해하기 쉽고. 미국에 헤밍웨이라는 유명한 작가가 있는데 그 분은 글을 짧고 쉽게 써서 인기가 많단다. 그런 점들만 생각하면 쓰면 되지, 누구 글이 더 좋고 안 좋고는 쉽게 판단할 수가 없단다. 니가 쓴 글에 자부심을 가져~" 라고 말해줍니다. 긍정의 말을.
물론 세상에서 인기를 끄는, 좋다고 하는 글이 있는 건 맞습니다. 좋은 필체란 것도 있고 좋은 구성의 글이란 게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자라는 아이에게 부정의 말보다 긍정의 말, 자신감을 주는 말을 해 주고 싶습니다. 긍정의 말이 아이가 더 글을 써 보고 싶어하고 더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보고 싶어하게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애엄마가 늦게 퇴근합니다.
애엄마는 맞은편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아빠와 아이가 숙제하는 모습을 쳐다봅니다. 중간중간 훈수도 뜨고 맞장구도 해 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