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이는 내 장갑을 물어갔고, 이내 내 마음 속에 들어왔다. 내 마음에 여유가 있어서 그랬는지 화는 하나도 안났다. 우리는 같이 있을 운명이었다. 그렇게 운명의 끈은 홍이와 나를 묶기 시작했다.
한창 추운 1월 어느 날 오후 끝자락에 나는 숲속 약수터로 향했다. 공기는 차가웠지만 상쾌했다. 12월 24일 5시에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셋째 아이가 서울대학교 합격증을 보여주는 순간 나는 자녀들의 입시를 모두 끝냈을 뿐 아니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는 만족감에 한창 들떠 있었다. 내 인생의 한 가지 과제를 마친 만족감에 젖어 있던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밖은 춥지만 마음은 따뜻했다. 그저 여유로운 마음으로 운동삼아 동네 약수터를 찾기 시작했다. 불암산 초입에 있는 이 약수터는 산행의 이정표 같기도 하고 엄동설한에도 허연 김을 내뿜는 약수가 나오는 신비로운 곳이었다. 볕이 좋을 땐 어르신들도 나와 앉아 계시는 곳이었다. 난 그곳이 참 좋았다.
흘러가는 약수가 아깝기도 해서 난 2리터짜리 생수병 세 개를 챙겼다. 마침 공군에 입대한 아들의 책가방을 몰래 꺼내어 생수병 세 개를 넣고 매일 산에 올랐다. 샘물은 하루쯤 실온에 두었다가 집에서 기르는 식물들의 목을 축였다. 수돗물보다는 광물도 많고, 아무튼 자연스러우니 식물에게도 좋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힐끗 곁눈으로 나를 지켜보는 누군가를 보았다.
뒤돌아 보니 바로 뒤에 작은 새끼 고양이가 조용히 앉아있었다. 흰 눈이 쌓인 갈색산을 배경으로 햇빛에 빛나는 부드러운 노란색 털을 갖고 있었다. 눈은 밝은 녹색이었다. 그 고양이는 가만히 앉아서 호기심에 가까운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고양이를 보았다. 사람 가까이에 겁 없이 앉아있는 고양이가 참 신기했다.
다시 물 뜨기에 열중했다. 새로운 통에 물을 받기 시작했기에 가죽장갑이 젖지 않도록 신경썼다. 물이 대롱에서 졸졸 나오기 때문에 물이 병으로 잘 들어가도록 물 받는 내내 잡고 있어야했다. 내 가죽장갑은 검은색 가죽으로 만들어졌는데 손목 부분에 부드러운 토끼털을 두른 것이 특징이었다. 예쁘기도 하고 털이 바람들어가는 것을 막아주어 따뜻하기도 했다. 병뚜껑을 닫을 때가 되어 장갑을 잠깐 벗어서 약수터 가장자리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장갑을 벗은 김에 고양이 사진도 한 장 찍을 요량이었다.
휴태폰을 꺼내 고양이가 앉아 있는 모습을 찍는 순간, 아기고양이가 내 장갑이 놓여 있는 곳까지 튀어올랐다. 장갑에 붙은 털이 신기하다는 듯 살펴보면서 코를 움찔거리더니, 앞발을 재빠르게 움직이며 그 털에 닿으려고 몸을 움찔움찔 움직였다. 보드라운 털을 한번 만져보고 싶은가보다. 아니면 무슨 새처럼 느껴졌던 것일까? 그 모양도 신기해서 사진에 담는다. 장갑의 털에 고양이의 앞발이 드디어 닿는가 싶더니 그것을 입에 물고 산 위로 냅다 달리는 것이 아닌가!
"아가야"라고 불렀지만 아기고양이는 장갑을 입에 물고 숲 속으로 빠르게 올랐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때 내 나이가 50살이었는데, 작은 새끼 고양이한테 장갑을 빼앗긴 것이다. 아기고양이가 저렇게 대담하다니, 그리고 나는 이렇게 나약하다니. 하지만 이렇게 생각만 할 뿐 나는 그 자리에 멀거니 서 있었다. 한참이 지나자 고양이가 빈 입으로 내려왔다. 한참을 장갑을 물고 뜯더니 재미가 없어졌는지 장갑은 내팽개쳐 두고 내려온 것이다. 결국 나는 장갑이 버려져있던 늙은 참나무 옆으로 간신히 기어올라 장갑을 집어 왔다. 아, 자존심 상해! 난 나이 50에 어린 고양이한테 장갑이나 빼앗기는 한심한 인간이 되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막내 출신인 나는 울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내 장갑을 물어갔던 홍이는 이내 내 마음 속에 들어왔다. 내 마음에 여유가 있어서 그랬는지 화는 하나도 나지 않았다. 우리는 같이 있을 운명이었다. 그렇게 운명의 끈은 홍이와 나를 묶기 시작했다. 다시 생각해도 생생하고 뭉클하다.
이런 만남이 인연이 되어 다음에 만날 때부터는 같이 노는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고양이 이름이 홍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저녁마다 홍이를 찾아 숲으로 갔다. 홍이와 가까이 지내며 알게 된 것이 있다. 많은 친절한 사람들이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지만, 아무도 그들과 놀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집에서 털실을 가져와서 작은 장난감을 만들었다. 고양이들은 뭐 하고 노는지 검색해 봤더니 낚싯대에 달린 쥐를 사냥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엉성하게 만든 털실 낚시대를 가지고 매일매일 약수터에서 놀았다. 세상이 놀이터인 듯 실을 쫓고, 뛰고, 굴러다니는 홍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정말 꿈만 같았다.
곧 홍이는 숲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홍이의 노란 털은 지난 가을에 말라 떨어진 갈색 참나무잎과 흡사했지만 늘 윤기로 빛나고, 녹색 눈은 내가 오는 것을 보며 빛나기 시작했다. 홍이는 늘 놀 준비가 되어있어서 언제 어디서든 내가 숲에 들어서면 나를 향해 달려오곤 했다.
4월이 되어 숲의 색이 변하고 공기도 시원해지면서 홍이를 집으로 데려올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더 이상 떨어져 지낼 수가 없이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평소 홍이를 품에 안으며 부드럽게 가르랑거렸다. 그날도 아침부터 홍이를 만나 안아주었다. 하지만 케이지에 들어가서 우리 집으로 오는 5분간 홍이는 무척이나 슬프게 울었다. 순간 홍이를 다시 놓아줘야 하는지 고뇌에 빠졌지만 그래도 여름은 집에서 나야 할 것 같아서 집으로 데려왔다. 홍이가 놀라지 않게 최대한 케이지의 수평을 유지하며 집으로 달렸다. 산책하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봤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홍이한테 괜찮다는 말을 계속하며 달렸다. 숨이 찼지만 홍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주었다. 계속 달리며 홍아! 홍아!를 연신 되뇌었다. 내 숨도 점점 가빠졌다.
집에 도착했을 때 홍이는 한동안 케이지에서 나오지 않더니 구석구석을 탐색했고 결국 창가의 아늑한 장소를 찾아 몸을 웅크리고 잠이 들었다. 그리하여 내 장갑을 물어간 작은 노란 고양이는 내 곁을 절대 떠나지 않는 친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