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3_자녀와 정신적 분리 도와준 고양이

by 홍홍

내가 막내로 자라며 사랑도 많이 받았지만 애로사항도 많았다. 언니, 오빠가 넷이다 보니 심부름을 많이 했다. 멀리서 살다 가끔 집에 오면 아무래도 낯설다 보니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나에게 찾아 달라는 등 부탁이 많았다. 어릴 적엔 내 의견도 말하지 못하고 끙끙거리는 성격이어서 겉으로 티는 안 냈지만 속으론 무척 귀찮았다. 이런 성장 배경 때문인지 나는 우리 삼남매 중 막내한테 마음이 많이 갔다. 알게 모르게 형과 누나한테 힘의 차이로 인한 부당함과 억울함이 있어도 제대로 저항도 못 할까 봐 괜히 걱정했다. 이런 걱정이 사랑으로 둔갑하여 막내는 세상 사람들이 다 알 정도로 엄마의 사랑을 받는 아이가 되었다. 사실 어느 집이나 막내가 귀염둥이 아니던가.

사랑을 받으려고 그랬는지 막내는 반찬 투정도 없이 밥도 잘 먹었다. 다른 집에 있는 된장국에도 밥 잘 먹는 아이가 바로 우리 막내였다. 몸도 통통해서 뽀뽀하고 안아주기도 편했다. 어릿광대짓도 많이 해서 온가족에게 웃음을 주는 사랑스러운 막내도 자랐다. 그러다가 중2가 되니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해서 고등학교를 전교1등으로 졸업했다. 엄마가 늦게 오는 날에는 밥도 곧잘 해놓고, 엄마 얘기도 잘 들어주는 정말이지 완벽한 아이로 성장했다. 이런 막내를 향한 내 사랑은 너무나 티가 나서 통화하는 목소리만 들어도 큰아들과 통화하는지 막내와 통화하는지 주변에서 알 정도였다.

아이는 잘 자랐는데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내가 자녀와 정신적 분리를 거부했던 것이다. 사실 우리 막내는 어린이집도 24개월 때 제 발로 들어갈 정도로 의젓했다. 하지만 내가 막내를 놓아줄 수 없어서 항상 ‘애기’라고 부르며 응석받이처럼 대했다. 토정비결을 보면 항상 나오는 얘기가 있다. 나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우리 애기였다. 애기는 고등학교때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늘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서울대학생이 되었다. 아이는 진작 엄마와 분리되었는데 내가 아이와 분리될 마음을 먹지 못하고 있었다. 20년간 내 몸처럼 여겼던 애기와 어떻게 분리할까 고민하던 무렵에 홍이가 나타났다.

예상치 못한 홍이와 조우를 통해 새로운 사랑을 알게 되었다. 사실 막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앞만 보고 달렸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직업을 바꾸기 위해 혹은 경력 유지를 위해 계속 공부도 했고, 두 살 터울 삼남매 뒷바라지도 했다. 드디어 막내까지 대학에 진학하면서 나는 마라톤의 반환점에 도달한 느낌이었다. 반쯤 왔다는 안도감에 물도 마시고 옆을 한 번 둘러보다가 홍이와 맞추친 것이다. 그 만남이 그냥 스쳐가지 않고 인연이 되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종, 즉 고양이와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면서 다른 우주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색다른 아름다움에 눈떴다.

홍이의 여러 가지가 아름다운데 대표적인 네 가지만 적어 본다. 크고 동그랗고 아름다운 눈, 오똑한 콧날, 작은 턱, 풍성한 머리털이다. 산에서 홍이랑 놀고 있자면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며 고양이가 참 예쁘다고 했다. 난 고양이를 가까이 보는 것이 처음이어서 홍이 외모가 어떤지 잘 알지 못했다. 처음 만난 고양이가 홍이였으니 다 홍이처럼 생겼는 줄 알았다. 나중에 더 많은 고양이를 만나면서 홍이가 보기 드문 미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예쁜 홍이에게도 아픈 사연이 있다. 내가 만날 당시 홍이는 4개월령이었는데 엄마가 없었다. 그리고 형제가 둘이 더 있었는데 너무 예쁘게 생겨서 오가던 사람들이 다 훔쳐 갔다고 했다. 즉, 홍이가 형제 중에서 덜 예뻐서 거처에 남아 있었다. 도대체 형제 고양이들은 얼마나 예뻤을지 상상했다. 여러 매체를 통해 예쁜 고양이를 보면 홍이 형제들이 저 정도 미모는 되었나보다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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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이가 미묘인지 분간도 못하던 시절에 내 마음을 끈 건 홍이의 성격이다. 처음 만난 나와 재미있게 놀고 다른 사람들과도 무척 잘 어울렸다. 그리고 집에 데려왔더니 분별력까지 있었다. 밖에 살던 고양이를 처음 집에 데려올 때 나는 고민이 많았다. 사람과 잘 생활할지도 걱정이고, 자연에서 놀던 고양이니 집생활이 오죽 답답할까 싶었다. 하지만 집에 들어온 홍이는 놀 장소도 잘 분간하고 세간살이를 일절 건드리지 않았다. 화장실도 잘 사용하고 밥도 잘 먹었다. 온가족의 사랑과 관심 속에 한 가족이 된 것이다. 이처럼 완벽한 홍이한테 푹 빠지면서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던 막내와의 정신적 분리에 드디어 성공하게 되었다.

내가 인생의 한 계단을 더 오를 수 있도록 도와준 고양이 홍이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이다. 아직도 홍이를 보면 감탄할 일도 많고 고마운 일도 많다. 무엇보다도 매일 명화를 감상하는 것 같다. 고양이의 변함없는 아름다움은 질리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도 동물과 인연맺기를 통해 인생의 깊이를 더해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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