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타 크리스토프(1986).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될 때 상중하 세 권으로 나왔다. 비밀 노트, 타인의 증거, 50년간의 고독이 각 제목이다. 기억이 무엇인가, 거짓말은 무엇인가, 살아낸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
상. 비밀 노트
주인공은 쌍둥이 소년들. 배경도 시기도 알 수 없다. 전쟁 중이며, 어느 나라의 국경에 살고 있다. 아이들 이름은 끝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오리무중이라 책을 놓을 수 없다. 아이들이 겪는 사건, 주변 인물들은 간단히 서술되지만 이야기만 있고, 감정은 없다. 기괴하기도 하고, 해학적인, 은밀하면서도 불안한 그들의 삶에 연민을 느낄 틈도 없다. 아주 특별하고도 묘한 매력이 있는, 전혀 접해본 적 없는 문화권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수많은 일을 마치 한 몸처럼 겪은 쌍둥이들. 쌍둥이라 다행이다 싶을 때 쌍둥이 중 한 명이 국경을 넘는다. 이후에 쌍둥이들은 각각 어떻게 살았을지 궁금해서 바로 ‘타인의 증거’를 집어 들게 된다.
중. 타인의 증거
어랏? 이게 이어진 책인가 싶다. 문체가 확 달라졌다. 다만 등장인물에 이름이 붙여졌는데, 남아있는 쌍둥이 루카스이다. 이 편에서는 할머니 집에 남은 루카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세월이 지난 것 같아도 십대, 아저씨라고 불려도 십대. 예전엔 알고 있었던 것을 모르는 루카스. 뭔가 이상하다 갸우뚱할 때쯤 쌍둥이 형제는 존재하지 않았단다! 그럼 상권은 뭐지, 하는 의문을 잠시 접어두고 하권을 펼친다.
하. 50년간의 고독
하권은 국경을 넘은 쌍둥이 클라우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럼 정말 쌍둥이가 맞았던 것일까? 온갖 고생을 하고 외국에 살다 다시 고향으로 찾아온 클라우스는 고국에 남은 루카스를 찾아 헤맨다. 정말 ‘그들’은 ‘그들’이었을까? Lucas – Claus. 같은 알파벳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시 배열하면 또 다른 사람을 가리키는 오묘한 이름. 그들은 서로가 서로였고, 떨어져 있었지만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50년의 세월을 넘어서도 한결같이 그리워했지만, 결국 외면한다.
거짓말
거짓말은 존재를 증명할까, 부정할까. 왜 거짓말을 할까? 중편에 세가지 거짓말이 등장한다. 클라우스라는 이름, 18세라는 나이, 국경을 넘은 자의 신원이 거짓말이다. 그럼 국경을 넘은 사람이 루카스인거야?
왜 거짓말을 해야할까? 무심하게 서술되지만 전쟁은 계속되고 있고, 여기저기 포탄이 떨어져 죽거나 불구가 된다. 그런 와중에 남편은 다른 사랑을 하고, 다른 생명이 자란다. 남편의 부정에 아내는 제정신이 아니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진다. 더불어 존재도 흩어진다. 더 이상 어쩌란 말인가? 어떻게 견디란 말인가. 삶을 위해 거짓말을 택한다. 견디기 위해, 견디도록 하기 위해서. 그 거짓말은 50년간 계속되고 존재는 파멸을 맞는다.
3권을 다 읽고 나서 다시 1권을 펼쳐보며 다시 내용을 확인한다. 전쟁을 겪으며 한평생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간 이들, 감정을 꾹 숨기고 사실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자신의 아픔을 딛고 삶을 채워가는 이들, 모두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