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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4_그것이 왜 결함일까?

-예소연 『사랑과 결함』

by 홍홍

일 년째 되는 날 나는 사랑 기계를 분해했다. 저번에 분해했을 때보다 검은 것이 더 끼어 있었지만 역시나 결함이 생길 만한 문제는 아니었다. 부품들을 깨끗이 소독하고 다시 사랑 기계를 조립하려 하는데 조립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보관해두었던 도면을 꺼내 펼쳐봤지만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기계가 있던 자리에 무덤처럼 쌓인 부품들을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혹은 할 말을 다 잃은 사람처럼 가만히 응시했다.

「동반자」 일부 (차도하, 2024)

예소연의 『사랑과 결함』를 읽던 시기에 같이 잡고 있던 차도하의 시집 『미래의 손』에 수록된 「동반자」를 읽으며 묘하게 등장한 ‘사랑, 결함’ 두 단어가 눈에 띄었다. 작가는 무엇을 사랑, 그리고 결함이라고 칭하는 것일까? 깊이 생각했지만, 여전히 어렵다. 사랑하는데 결함은 그리 큰 문제는 아닌지, 사랑하는데 결함이 있으면 안 되는지, 결함을 극복하고 사랑을 이루어야 완전한 사랑인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표제작 「사랑과 결함」에서는 가족 간의 사랑과 이성간의 사랑이 주로 서술된다. 등장인물의 삶에서 사랑과 결함이 무엇일지 찾아보았다. 이야기의 중심축에 화자의 고모가 있는데, 부모도 없이 나이 차이가 큰 어린 남동생을 혼자 키웠다.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자신은 혼기를 훌쩍 넘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선을 봐서 만난 애 딸린 남자와 서둘러 결혼했지만 폭력에 못 이겨 금방 도망 나왔다. 가정을 이룬 남동생의 집에 기거하며 어린 조카딸인 화자에게 무한한 사랑을 준다. 고모는 정신과 약을 처방받아 먹었는데, 고모가 가지고 있는 결함은 이러한 정신병력이 아닌가 싶게 다른 가족들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젊음을 바쳐 키워낸 남동생마저도 ‘정신병도 유전’이라는 말할 정도였으니까. 각자 흠뻑 사랑을 주는 대상은 있지만 뫼비우스의 띠처럼 어디에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전진하기만 한다. 누군가를 온 마음 다해 사랑하지만, 가정은 증오로 가득하니 참 아이러니하다.


나에게 흠뻑 사랑을 주던 고모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엄마를 증오하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엄마가 나에게 흠뻑 사랑을 주던 고모에 의해 삶을 비관하고, 나를 포함해 그 모두의 사랑을 받는 아버지는 우리 중 누군가가 죽기 전까지 절대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아주 오래전부터 깨달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정신병도 유전이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삶을 그러저럭 살아올 수 있었겠지. (중략)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고모나 엄마나 그저 나에게 끔찍한 사랑을 흠뻑 물려주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아직도 그 사랑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 사랑과 결함이 나를 어떻게 구성했는지도. (182~183쪽)


사랑에 공식이 있는 것일까? 그 공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요소는 결함이 되는 것일까? 남녀가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원만히 살아야 하고, 정신병도 없어야 하는, 기계에서 찍은 듯 똑떨어지는 것이 사랑일까. 그렇지 않으면 결함이 있거나 결함을 물려주게 되는 것일까? 사랑기계 혹은 사랑 공식에서 나머지로 나온 ‘부품’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부품을 다시 모으면 사랑이 될까, 될 수 없을까.


이런 질문이 이어지는 작품은 「우리 철봉하자」이다. 여성 주인공인 맹지와 석주는 헬스장 관장님도 헷갈릴 정도로 비슷하다. ‘남자없이는 못 산다’고 고백하던 맹지와 ‘남자없이도 현재 잘 살고 있는’ 석주는 철봉을 한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는 손쓸 없을 만큼 좋아하는 석주는 힘겹게 철봉에 매달리면서 더는 쓸 손이 없게 만든다. 두 손을 모두 맹지에게 다 쓰고 싶기 때문인 것 같다. 두 손으로 철봉에 매달리는 것은 서로에게 매달리는 일이 아니었을까. 둘은 같이 살기로 한다. 어쩌면 세상의 공식으로 보자면 결함이 있지만 자신감 훈련을 시작한다.


「팜」과 「그 개와 혁명」에서는 정지아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겹쳐 보였다. 이념을 위해 살아왔던 부모님이 이제는 시퍼런 젊음을 뒤로 하고 귀농을 했거나 귀천을 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고집스럽게 살았던 나날이다. 비록 현실에 타협했다고 누가 눈을 흘길지 모르겠지만 사랑을 위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아직 농사가 서툴고, 자연농법을 고집하는 아버지, 한때 날리는 운동권이었던 아버지 ‘태수씨’는 끝까지 자기의 꿈을 펼친다. 자기 밭을 혹은 자신의 장례식을 자기 뜻대로 꾸몄으니까. 세상에서 한 발 물러나 보이지만 그들은 삶에서 진 것이 아니다. 그러한 결함(자신이 느끼기에 혹은 타인이 보기에)을 안고도 계속 사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품고 있는 미숙함으로 다른 가족은 상처를 입을 수 있다. 그래서, 어쩌면, 사랑은 결함을 내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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