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이 궁금해요
새벽, 이호 해변을 걸으며,
걷는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걷는다.
13년 전, 한 달 살이로 제주에 와 처음 걸었던 올레길이
나를 이곳에 머물게 했다.
완주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그 해 겨울, 바람 무서운 줄 몰랐던 나는
제주의 겨울을 온몸으로 느끼며 걸었다.
무리한 탓에 무릎이 나갔고
지팡이에 의지해 눈과 비바람을 맞으며
한 걸음씩, 리본을 따라 올레길을 정방향으로 걸었다.
맞바람임에도 우회의 길을 알지 못하던 때다.
(지금은 안다. 바람 방향에 따라 걷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한발짝 내딛기 어려운 바람을 우비와 지팡이에 의지해 걷는 나를 보고 제주 할망들은 “미쳤다”고 했다.
맞다. 미쳤었다.
미치지 않고는 살 수 없던 날이 내게는 여러 번이었다.
그렇게라도 걷지 않으면, 그 겨울
제주에 내가 남아 있을 이유를 찾지 못했으니까.
끝장 보자는 마음으로 그 당시 완주 조건이었던
425km, 26개 코스를 완주했다.
함께 걷는 동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빠르면 5시간, 길면 8시간.
길 위에서는 자연스레 마음이 열렸고
여행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비밀들을
더 쉽게 꺼내기도 했다.
(이 경험은 비단 길위에서만은 아니였다. 쉐어하우스에 살던 시절, 며칠, 몇주간 여행 오던 사람들이 그랬다.)
올레길 자원봉사자 ‘아카자봉’ 선생님들은
제주의 식생과 문화, 역사를 알려주셨고,
호기심 많던 나는 끊임없이 질문하던
‘특이한 어린 올레꾼‘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제주올레에서 일하게 되었다.
완주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완주증을 발급하고,
길을 안내하는 올레길 안내사가 되었다.
아니, 되었었다가 맞을지 모르겠다.
지금은, 아니다.
길치였지만 길을 안내하며
친절과 진심을 무기로 삼고
마음을 내주는 것을 즐기며 한 일이었다.
사실 걷기는, 오래전부터 내게 익숙한 일이었다.
중고등학생 시절엔 토욜일,
친구 몇명과 버스를 타지 않고 골목골목을 걸어 몇 시간을 걸어 집에 오곤 했다.
지금도
생각이 많을 땐 걷는다.
생각을 내려놓고 싶을 때도 걷는다.
생각을 정리하거나 말을 골라야 할 때도 걷는다.
누군가와 깊게 이야기하고 싶을 때도 걷기는 좋은 행위다.
특히, 같은 방향을 보며 걷는 일은 여러 수고를 덜어준다.
서로의 표정을 신경 쓰지 않고
이야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론 혼자 올레길을 걷기도 했다.
아무와도 약속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그 자유 속에서 나는 나를 돌볼 수 있었다.
상황에 따라 걷는 행위의 의미는 달라졌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내가 ‘같이 걷자’고 제안한다면,
그건 당신이 궁금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시간을 함께 하고 싶다는 뜻이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혹여 걷는걸 제안하지 않는다고
서운해 하지 않았으면 한다.
상대가 원할 것 같은 방식으로 제안하는
센스 정도는 장착되어 있으니
내게 말한다.
걷는 일이 지치질 않게 되길.
#새벽#두시간#어싱#걷기#이호해변#걷는다는것#제주도#제주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