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put yourself in someone’s shoes
“시험에 ’엠퍼시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나왔다고 한다. 아이는 이 질문에 ’스스로 누군가의 신발을 신어보는 일‘이 라고 답했다.
‘To put yourself in someone’s shoes‘라는 ’남의 입장이 되어본다‘는 뜻의 관용 표현이다.“
- 브레디 미카코,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다》
‘새벽’
학창시절 지역구대회 백일장 주제였다.
새벽을 보내는 사람들이 신는
다양한 신발 발자국 소리를 글감으로 잡아
써 냈던 기억이 있다.
반지하에 살면 그 사람의 옷차림 보단
발자국 소리가 더 또렷히 들리기도,
보여지기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장통에 살았던 나는 새벽 장터에서 분주히 자신의 속도를 잘 유지하며 삶의 현장에 있는 분들을 만나곤 했다.
특히 엄마와 함께 한겨울, 내다 팔 물건을 사러 남대문 시장 골목골목을 시린 손을 호호 불어가며 쫄래쫄래 따라다니던 기억은 찬바람이 부는 계절이 되면 자주 떠오른다.
(사실 옥수수며 호떡이며, 나는 먹는 재미에 따라다녔던 초딩이었지만.)
그때 나는 그 풍경이 너무 좋았었다.
열심히 자신의 공간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
어둠이 채 걷히지도 않은 새벽,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자신의 삶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이 곳에 모여든 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렇게 나는 현장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다.
사랑방 같던 엄마의 가게는
공사 현장에 있던 조선족,무당 할머니, 시각장애 아저씨, 부부싸움 후 도피처로.
각각의 사연과 이유를 가진 사람들이 다녀갔다.
공사 현장에 화장실이 없어 우리 가게 화장실을 쓰던 조선족 아저씨.
미안한 마음이었을까,
그는 자주 내 손에 브라보콘 하나를 쥐여주었다.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이가 있어
타지에서 일하며
화장실조차 마음 놓고 갈 수 없는 하루를 견디면서도,
그는 늘 열심히 였다.
나의 포커스가 왜 ‘사람’ 인지
스치는 순간들을 왜 잡아두는가는.
‘애정’을 기반으로 한 나의 오랜 습관인듯.
나의 애정 안으로 들어오는 것들에게는
(무형이든 유형이든 사람이든 자연이든)
무한한 사랑과 애틋함과 응원을
끊임없이 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다> 책을 읽다
러닝하며 만난 새벽 풍경이 오버랩 되었다.
쉬이 보이지 않는 시간,
새벽.
분주하지만 착실한
발걸음으로 하루를 여는 누군가 덕분에
오늘을 무사히 또 시작한다.
감사한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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