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은-내 아이를 영재로 바라보면 영재가 된다
"언니, 언니는 서준이한테 너무 선생님처럼 대해. 엄마가 아니라."
2년 전쯤, 아이가 고작 여섯살이었을 무렵 동생이 내게 조심스럽게 건넨 말에 쿵, 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내가 다정하지 못하고 너무 엄격한 엄마인가, 그렇잖아도 항상 맘 한켠에 불편함이 자리하고 있던 차였다. 사실 나도 짐작하고 있었던 것을 동생이 확인시켜 준 셈이다. 동생은 이어, "언니는 서준이를 언니 반 문제아로 보는 것 같아." 라고 했다. 그 당시 나는 힘든 학생의 담임을 맡고 있었다. 난이도로 보면 교직 생활 중 단연 탑이었을 학생이다. 그 학생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매일 같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맘을 졸였다. 그러다 우려했던 문제행동이 발생하는 날엔 너무 무서웠고 힘들었다. 그 시기는 두려움과 불안이 나를 잠식하던 때였고 그것이 기어이 엉뚱한 곳까지 향했던 것이다.
'내 아이도 나중에 문제 행동을 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에 또래 아이들이 보일 법한 산만하거나 말썽을 부리는 모습이 용납되지 않았다. 아이가 개구진 행동을 할 때 마다 나는 웃음기를 거두고 단호하게 혼냈는데 동생이 볼땐 그 모습이 엄마라기보단 선생님에 가까워 보였나보다. 또 동생은 선생님같은 엄마에게서 자라는 조카를 좀 짠하게 여기기도 했다.
2년여의 시간이 흘러, 다행히도 나는 그때보단 조금 덜 선생님같고 더 엄마같은 모습이 되었다. 내 상황이 더 나아져서이기도 하고 동생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아이에게서 다른 모습을 보려 애쓴 것도 있다. 오늘 소개할 책은 그때의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책이다. 아이의 교육에 관심을 갖고 직접 참여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선생님같지 않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준 책, 바로 신재은 작가의 '내 아이를 영재로 바라보면 영재가 된다'이다.
저자인 신재은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방송인 조영구는 아마 알지 않을까 싶은데 신재은 작가는 바로 방송인 조영구의 아내이다. 유명인 부부의 영재 아들 이야기라니. 화제성만 노리고 알맹이는 없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을 법도 한데, 이 책은 정말 진정성이 넘친다. 작가의 솔직함이 돋보이고 현실적인 조언도 많아 1년 간격으로 족히 세 번쯤은 읽은 책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전문 영재기관에 테스트 신청을 했다. 검사 당일 시험장에 갔을 때, 후끈한 열기에 놀라서 왠지 주눅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지능 검사를 받기 위해 많은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올라왔다. 검사 결과, 정우는 언어 능력이 발달한 것으로 나왔고 지능이 상위 0.3퍼센트에 속한다고 했다. (중략) 그 후에 SBS <영재 발굴단>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지능검사를 또 받게 됐다. 그때도 정우는 언어 영역에서 최고점을 받았고, 지능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번 가르치면 다음 날 학교 시험에서 100점을 받아오는 걸 보면서 '얘가 집중력이 뛰어나고 공부를 하면 잘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중략)
정우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힘껏 밀어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게 좋다고 밝혔고, 그 말이 나에게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정우 맞춤형 열혈 엄마의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P. 24~25)
취학전에 웩슬러 검사를 비롯 각종 지능검사, 적성검사를 받는 세태가 과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직 초등학생도 되지 않아 아이가 완성되려면 한참 멀었는데 지금의 지능이나 적성을 안다고 그게 과연 중요한 정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분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아이가 강점을 보이는 분야를 미리 아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쪽으로. 그렇게 아이의 흥미(이 아이의 경우 책이 좋고 공부를 하고 싶다)와 강점(언어능력, 지능, 집중력 등)을 일찍 파악하면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를 막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외부의 평가와 시선에 휘둘리지 않기.' 요즘 내가 자주 하는 생각이다. 우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면서 솔직히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천재가 아닌 아이를 천재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수도 없다. 중요한 건 정우와 함께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걸로 충분하다. 물론 나도 중심을 잡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스케이트를 그만두고 난 뒤엔 주변에서 들리는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번에 누가 시험에서 100점 맞았다더라, 그 아이가 다니는 학원이 대치동 어디에 있다더라 같은 소릴 듣고 기어코 정보를 얻어내서 찾아가 보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등록을 하려고 보니 '굳이 그럴 필요 있을까?'싶은 마음에 주저하게 됐다. (중략)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을 한 권 더 읽게 하고 운동을 하게 하는 편이 나았다. 그래서 정우에게 맞는 계획을 짜서 효율적으로 공부하게 하자는 방향으로 마음을 굳혔다. (P. 33)
아이 교육 정보는 중요하다. 하지만 윗 글처럼 엄마만의 중심 잡기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갈팡질팡하는 부모의 아이는 이 학원 저 학원 전전하며 힘들 수밖에 없다. 쏟아지는 많은 정보들 중에 어떤 것을 취할 것이냐 결정하는 건 결국 부모의 가치관 혹은 현명함과도 관련이 되어 있다고 생각하기에 나도 현명해지기 위해 늘 노력하려고 한다. 양질의 컨텐츠를 많이 보고 읽으며 이렇게 글로 정리도 하면 생각이 조금이라도 더 깊어지지 않을까 기대하며 또 새긴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다른 아이들보단 내 아이를 보기로.
처음으로 해보는 영재원 생활은 정우와 나에게 신선한 경험이었다. 정우는 격주 토요일마다 근처 공립 초등학교에서 오전에 3시간 정도 수업을 받았다. 매주 주제를 정해 팀별로 실험을 하고 견학도 갔다. 아이는 그 시간을 무척 즐거워했다. 상대성 원리, 신기한 자석 롤러코스터 만들기, 재미있는 수 퍼즐 등 그날 공부한 내용을 내게 들려주기도 했다.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나는 아이를 영재원에 입학시킬 것이다.(P.28)
학교에서 영재 선발 업무를 맡은 적이 있다. 그 당시 내가 근무한 학교는 영재원에 가고자 하는 열기가 별로 강하지 않아서 업무를 하는 입장에서 솔직히 편했다. 반면 치열한 학교는 교내 선발 TO에 들어가기 위해 자체 시험을 치기도 한다고. 이렇듯 학교마다 분위기도 다르고 영재원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어서 어떤 말이 맞는지 궁금했는데 정답은 애BY애 일것 같다. 아이와 잘 맞으면 도전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청 영재원은 무료인데다 접근성이 훌륭하다는 점이 좋고 대학교 부설 영재원은 경쟁률이 더 치열하고 몇 년에 걸쳐 축적된 기관만의 영재교육 노하우가 있어 좋다. 대개 초3 하반기부터 선발하니 아이를 잘 보고 가능성이 보이면 시도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앞서 지능검사, 영재에 대한 내용들을 발췌했지만 이 책의 핵심은 영재가 아니다. 그보다 오히려 엄마와 아이의 집 공부 비법, 습관, 환경 조성 등에서 배울 점이 더 많았다.
독서를 즐기는 사람에게 서점만큼 신나는 공간이 있을까? 정우와 나에게 서점은 가장 편안하고 즐거운 공간이다. 서점에 가자고 하면 아이는 항상 기분 좋게 따라나선다. '서점=재미있는 곳'이란 공식이 내면화됐기 때문이다. (중략) 서점을 자주 가다 보니 갈 때마다 구입할 수 있는 책을 한 권으로 제한했다. 책을 잘 읽어보고 그중 꼭 사고 싶은 것 한 권만 고르라고 하면 아이는 보석 감정사라도 되는 듯 신중하게 책을 고른다. 외국 여행을 갈 때도 그 나라의 유명 서점을 검색해서 방문 목록에 포함시킨다. (중략)외국 서점은 분위기가 색다르고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책들이 많다. 모든 것이 영어로만 쓰여 있어서 완벽히 이해되지는 않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교육이고, 독서에 동기부여가 된다.(P.80)
이 부분을 읽고 나도 아이와 서점 데이트를 시도해봤다. 서점에 가서 마음껏 책과 문구류를 구경한 뒤, 원하는 것은 사주고 근처 빵집까지 갔다 오니 서너시간이 거뜬이었다. 처음 서점 데이트를 성공한 날 왠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애가 다 커서 나랑 이렇게 나오는게 가능하네, 하는 벅찬 심정으로. 육아는 내가 태어나서 한 것 중 가장 힘들지만 아이가 커가는 단계마다 다른 매력이 있어서 참 재미있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우리는 영어 레시피로 요리하는 걸 즐긴다. "오늘 메뉴는 떡국이야. 엄마는 요리를 할 테니 너는 레시피를 알려다오!" 이렇게 말하면 정우는 식탁에 앉아서 내가 준비해둔 영어 기사를 읽고 레시피를 알려준다. "재로는 뭐가 필요해?" "Rice cake, broth, egg, soy sauce, salt, garlic, pepper." (p.103)
영어로 된 유튜브 요리 채널도 즐겨 보는 편이다. (중략) 자녀가 요리하기를 좋아한다면 시도해볼 만하다. 좋아하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 체험과 영어 학습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교육법이다. 아이가 여섯살쯤 됐을 무렵 집안일에 아이를 참여시키면 아이는 큰 흥미를 보인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가 나의 도움을 요청한다는 사실이 그저 기쁜 모양이었다. 거기에 영어 기사를 접목하다니. 아이는 이 과정에서 broth라는 낯선 단어를 색으로 보고 냄새도 맡아보며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은 아이가 1학년이라 스마트폰도 쥐어주지 않았고 유튜버를 몇개의 채널로만 제한하고 있는데, 영어 요리 영상도 시도해보고 싶다.
우리는 주기적으로 누가 더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문제를 푸는지를 두고 경쟁한다. 엄마와 아들이 책상에 나란히 앉아서 기를 쓰고 서로를 이기려는 모습을 남편은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곤 한다. 학습 방식을 결정할 때는 아이의 성향을 미리 아는 것이 중요하다. 정우는 경쟁을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승부욕이 있는 성향이라 마치 게임을 하듯 학습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그런 성향을 학습에 적절히 이용하고 있다. (p.114)
아이들은 경쟁을 진짜 좋아한다. 나도 아이가 영어책을 읽기 힘들어할때 같은 시리즈를 집어들어 옆에 앉았다. 같이 읽으며 짐짓 재밌는 척을 하기도, 은근히 약을 올리기도 했다. "우와 엄마 지금 미스테리 시작됐다. 아주 재밌는 부분이야." "엄마 이제 챕터 5로 넘어간다?" 그러면 경쟁심이 발동하는지 자기도 더 집중해서 읽곤 했다. "엄마, 잠깐만 멈춰요. 저 화장실 갔다올 거예요." 라며 부탁하기도, "엄마 이 책 꼭 읽어보세요." 라고 추천하기도 했다. 이제는 내 도움 없이도 아이가 챕터북을 혼자 읽을 수 있게 되어 매 시간 아이와 영어책 리딩을 함께 하지는 않지만 그때의 기억이 좋은지 지금도 자주 "엄마, 우리 대결해요."라고 조른다.
아이들은 처음엔 얌전하게 궁둥이를 붙이고 10분도 앉아 있기 힘들어한다. 그러니 욕심을 버리고 연령대에 맞게 차차 시간을 늘려가야 한다. 또 아이를 혼자 두어선 안 된다. 공부하라면서 방문을 닫아버리면 아이들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어릴수록 더욱 그렇다. 처음에는 부모가 옆에서 지켜보며 자세를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중략) 아이 옆에 앉을 때 명심할 점은 단순히 감시자가 되면 안된다는 것이다. 부모도 공부를 하듯 집중할 수 있는 것을 챙겨 와야 한다. 부모가 감시만 하고 있으면 아이는 부담을 느끼고 재미와 의욕을 잃는다. 엄마 아빠도 자기처럼 뭔가 열심히 한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포인트다. (p.119)
정말 공감가는 부분이다. 아이의 학습 습관을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물론 바로 자세가 잡히는 유니콘들도 있겠지만 우리 애는 지금도 한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힘들다. 그러기에 옆에 앉아서 같이 나도 할일을 할 때가 많은데 이게 아이에게 동기부여가 되는지 내가 글을 쓸 때는 내 글에 관심을 갖기도 하고 자기도 쓰고 싶다며 짧은 이야기를 만들기도 한다. 아이의 학습 습관을 위해 내가 옆에 앉아있는 시간은 아이와 나 모두에게 유익한 시간임이 틀림없다.
마지막으로 환경 만들기다.
정우는 3학년 때부터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숙제와 자율학습을 하려면 기본 2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한 공간에 오래 앉아 있다 보면 공기가 금세 탁해진다. 어느 날은 나도 졸음이 오고 집중력이 떨어져서 창문을 열어 환기를 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차 한 잔을 주면서 쉬게 한 다음, 서재로 자리를 옮겨 남은 공부를 하게 했다. 현재 정우는 자기 방과 서재에 각각 2개, 총 4개의 책상을 두고 용도에 맞게 활용하고 있다. 공간을 바꾸면 아이가 산만해지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분도 계신다. 아이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정우에겐 이 방식이 훨씬 도움이 됐다. (p.125)
초등학생 시기는 본격적인 공부 마라톤을 준비하는 단계다.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걸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일단 시도해봐야 아이에게 무엇이 잘 맞고 무엇이 안 맞는지 알 수 있으며, 안 좋은 것은 습관으로 굳어지기 전에 수정할 수 있다. 그러니 아직은 자유로운 초등학생 시기를 내 아이만의 공부 환경을 만드는 연습 기간으로 삼아보는 게 어떨까? 나도 다양한 시도를 해보면서 현재의 루틴을 만들 수 있었다. (p.132)
정우 방 한 면은 전체가 책장이다. 정우가 공부할 때는 책꽂이와 등을 지게 되며 정우의 메인 책상엔 따로 책꽂이가 없다. 오직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p.137)
나 역시 저자의 조언대로 아이 공부 방과 자는 방을 분리했으며 책상을 등지는 위치에 책장을 두었다. 책장에 앉아 있을 때엔 최대한 책상 외엔 시야에 다른게 걸리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 역시 학창시절에 한 곳에서 오래 공부하는 게 힘들었다. 아이도 나를 닮아 그런가 엉덩이 힘이 좋지는 않은 것 같아 슬프다. 긴 집중력을 타고나지 못했더라도 효과를 높일 수 있는 환경을 앞으로도 고민해보고 다양하게 시도해 봐야겠다.
'나는 아이의 매니저이다.'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열혈맘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던 책이다. 나는 비록 저자만큼의 열정이 있는 엄마는 아니지만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욕심은 만만치 않으므로 솔직하게 인정해야겠다. 하지만 내 욕심만 중요해서 너무 선생님처럼 엄격해지지 않고 정말 엄마같은 엄마가 될 수 있도록 저자의 다정함과 친근함을 배우려고 한다. 또 저자가 쏟는 열정과 노력의 방향 또한 아이의 습관 형성, 영양 섭취, 학습법 찾기 등 올바른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 부러웠다. 나도 아이 매니저까진 되지 못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내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서 나중에 삶을 사는 데에 필요한 것들을 함께 익혀 나가기로 다짐한다. 혹여나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