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수컷들의 세계
'남자는 서열의 동물'이라는 말이 있다. 남자 형제 하나 없이 자매들과만 자랐으며 여고와 교대를 졸업하여 남자와의 접점 자체가 적었던 나는 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채로 수십년을 살았다. 그러던 내가 이 말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교직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였다.
지금에야 엄근진을 기본 모드로 장착하고 있지만, 제자들과 겨우 띠동갑이던 십수년 전의 나는 가르치는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장난기 가득한 선생님이었다. 철이 덜 든 모습으로 아이들과 농담을 주고 받기를 일삼던 그 시절, 1년에 한두번꼴로 치던 장난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급식을 먹으러 줄을 설때 '번호 순(역순), 키 순(역순)'등으로 명하던 순서를 '외모순'으로 서라고 말할 때였다.
"오늘 급식은 외모순으로 먹겠습니다. 남자 한 줄, 여자 한 줄, 각각 외모 순으로 서세요. 선생님은 여러분의 순서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외모가 뛰어나다고 생각하면 앞에 서도 좋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내 마음엔 장난기가 가득했고,
"아, 선생님 그게 뭐예요!!" 라고 말하는 아이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져 있었으니 시작은 정말이지 재밌자고 한 놀이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놀이에서 나는 남학생과 여학생의 줄을 서는 양상이 확연히 다르다는 흥미로운 발견을 했으며, 그 후 학생들의 서열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1년에 한 번씩은 이 짓궂은 놀이를 했다.
'외모순으로 줄을 서라.'
이 난감한 주문에 여학생들은 일단 단짝의 손을 잡고 뒤로 빠진다. 고개를 흔들면서, 나는 앞으로 못 가. 니가 가~ 하며 줄 서는 데에 매우 소극적이다. 모두가 뒤에 서려고 하기 때문에 줄이 완성되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어쩌다 앞에 서게 된 학생들도 자꾸 뒤를 돌아보곤 한다.
그런데 남학생들은 어떠한가.
그들이 2학년이든 3학년이든 4학년이든 시작은 비슷하다. 반에서 나대기 좋아하는 학생 한둘이 아이들 줄을 세우는 것이다.
"자, 현범이는 앞으로 와야지." (모두의 지지로 현범이가 맨 앞으로 간다)
재밌는 건, 나대는 본인 역시 4~5번째에 선다는 것이다. 당당하게 "나는 여기 설거야!" 하면서. 본인 이후로 줄을 어떻게 서는지는 신경쓰지 않는다. 내 앞의 3~4명이 내가 납득할만한 아이들이면 되는 것이다. 소극적이고 쭈뼛쭈뼛하는 남학생들 몇이 줄의 뒷부분에 별 불만없이 자리하는것으로 줄서기는 끝난다. 속도도 매우 빠르다.
여기서 내가 발견한 흥미로운 공통점이란, 모두가 거의 만장일치로 추대하는 '외모 킹'이 있다는 것(그런데 그것이 교사의 눈으로 볼때는 과연 공정한가 의문이 들지만), 서로 앞에 서겠다고 싸우지 않고 착착착 줄이 세워진다는 것- 이 두 가지이다. 퍽 재밌는 발견이었지만 나도 이제는 재미보다 효율과 공정을 선호하는 마흔줄의 교사가 되었고, 또 요즘같이 민감한 때에는 이런 놀이를 안 하는 것이 이롭다는 판단에 놀이를 중단한 지 꽤 되었으므로 이 놀이는 한동안 나의 기억에서 잊혀져갔다.
그러다 다시금 이 기억이 소환된 것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였다. 입학식 날, 유치원에서부터 친하던 친구-성격이나 성향이 그림처럼 닮아 있어 싸우지도 않고 부모가 보기에도 매우 흐뭇했던-와 같은 반이 되어 좋다고 폴짝폴짝 뛰며 잘 지내더니 어느 날 부터 다른 아이의 손을 잡고 하교를 했다. 지민이라는 새로운 그 친구는 한 눈에 봐도 외모가 수려했고 2학년도 아니고 3학년쯤 되어 보일 만큼 키가 컸다. 거기다 학부모 수업 공개의 날에도 그 친구는 튀었다. 가장 먼저 손을 번쩍 들어 자진해서 발표를 하는 모습이 자신감에 넘쳐 보였기에 나 역시 그날부터 지민이를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교하는 내 아이와 지민이는 정말 즐겁고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지민이는 인기가 많겠지, 이해가 간 한편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나오는 아들의 기존 베프 하준이는 쓸쓸한 표정이었는데 나는 그게 마음에 쓰여 하교한 아이에게 물었다.
"셋이 다 같이 나오면 되지, 왜 둘만 나와?"
"저는 같이 가자고 했는데 하준이가 바쁘다고 했어요. 걔는 지민이를 별로 안 좋아하나봐요."
아이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고
"그래도 하준이 마음이 쓸쓸할 수 있으니까 네가 챙겨줘. 가장 친한 친구잖아."
좋지 않던 하준이의 표정이 못내 신경 쓰였으나 '누구랑 놀아라, 누구랑 놀지 말아라.' 처럼 부모가 개입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좋을 게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내 역할을 다했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한번씩 하교한 아이에게 쉬이 넘겨지지 않을 말들을 듣곤 했다.
"엄마, 그런데 지민이는 청소할 때 애들이 자기 말을 안듣는다며 짜증내요."
"점심시간에 축구하는 멤버는 지민이가 정해요. 주전선수랑 예비선수를 나눠줘요."
"나머지 친구들이 너무 못해서 지민이가 친구들을 훈련시켰어요."
"공격수는 지민이만 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어요. 지민이가 가장 킥을 잘 차니까요."
비록 내가 그 현장에 있진 않았지만 아이의 말만 듣고 추측해보자면 지민이는 벌써 남학생들 사이에서 1인자로 굳혀진 것 같았다. 게다가 속없는 나의 아들은 지민이가 시켜주는 주전선수 자리에 퍽 만족하고 있는 듯했으며 지민이와의 관계가 더 공고해지기를 바라는 것 같아 보였다. 놀이터고 키즈카페에 데려가며 내가 놀이친구를 만들어주던 아가아가한 시기를 지나 스포츠와 피지컬, 공부, 기세 등으로 서열화되는 어린 수컷의 시기에 내 아이가 진입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렇다면 나도 유아기 엄마의 마음가짐을 버려야 할 터, 언제까지 아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환경을 만들어 줄 순 없지 않나.
"친구사이는 대등한거야. 누가 누굴 훈련시키고 역할을 정해 주는 게 아니야. 그런 지민이의 말과 행동이 부당하다고 느껴지면 그렇게 말하면 돼. 지민이가 주는 역할이 맘에 안 들거나 너도 공격수를 하고 싶어서 말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다른 친구들이랑 놀아도 되고."
머릿속은 걱정으로 가득했지만 나는 다만 이렇게만 말했으며 나머지는 아이의 몫이리라 생각한다. 직접 부딪혀보며 맷집을 기를 것이냐, 서열 2~3위에 만족하며 달콤한 굴종을 이어갈 것이냐는 판단부터 시작해 아이는 수없는 시행착오를 겪어 나갈 것이다. 그런 시간이 쌓이다 보면 친구관계에 있어 더 이상 엄마인 나와도 다른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 가겠지. 그러다 곁에 더없이 좋은 친구들도 남을 것이고 내 아이 역시 누군가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길 기대해도 될까.
태어난 지 7년 남짓 된 아들의 성장에 십수년 전의 제자들이 한참 동안 머릿속에 머물다 갔다. 자타공인 맨 앞에 서던 친구는 지금도 친구들 사이에서 대장일까, 나서지 못하고 쭈뼛쭈뼛 뒤에만 머물던 친구들은 사춘기를 지나며 자신감을 더 갖게 되었을까, 모터달린 손과 입으로 친구들의 자리를 정해주던 까불이들은 지금도 그럴까?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 아이들이 십년의 세월을 넘어 육아를 하는 내게 종종 나타나 힌트를 주는 것을, 나는 정말이지 고맙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