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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 극복하기

2022년 5월의 이야기

by Applepie

교실에서 만나는 학생들 중 내가 가장 지도하기 싫고 어려운 아이들은 바로 무기력한 학생들이다.

올해 만난 A도 그랬다. 4학년인데도 '제가 몰라서', '모르고'라는 말을 자주 썼다. 제가 '모르고' 숙제를 안했어요. '모르고' 가위를 '못'챙겨왔어요.(한달째 안가져옴)

나는 그 소리가 듣기 싫어 여러번 말했다. 'A야, 모르고 라는 말 습관적으로 쓰지 마. 그건 상황을 빠져나가려는 변명에 불과해. 이제 4학년이니까 스스로 챙길 수 있어. 모르고가 계속되면 의도적인거고 잘못이야.'

이런 A가 수업태도는 좋았을까, 당연히 엉망이었다. 40분 수업동안 집중하지 못해 난리였다. 몸을 배배 꼬다가 화장실을 간댔다가 연필을 깎는댔다가... A의 책상 위에는 자연스레 발생한 지우개 가루가 아니라 멀쩡한 지우개를 뜯어서 만든 지우개 잔해가 수북했다. 한숨이 나왔다. 아프다는 말도 어찌나 자주 하는지, 내가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아픔(목이 아파요, 머리가 아파요)을 자주 호소했다. 나는 A를 지도하는게 너무 싫고 어려웠다. 물론 유독 이런 학생들을 잘 보아 넘기지 못하는 내게도 뭔가 문제가 있을 것이다. 오은영 박사님 책에선 '똑부러지게 하지 못하는 아이'를 참지 못하는 부모는 부모 본인에게 아킬레스건이 있는거라던데, 그런 학생을 참지 못하는 교사인 나도 그럴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똑부러지는'정도까지 바라는게 아니다. 그저 기본적인 시도라도 하면 감사하겠는데 A는 기본이 안되어 있었다.

어제는 수채화 수업을 했다. 미술은 기본적으로 재밌어서 아이들이 좋아하지만 동시에 꽤 지구력을 요하는 과목이다. 더군다나 수채화 첫 시간이라 용구와 기법에 대한 이론 수업을 길게 한 후 명암 표현을 위해 아이들 모두에게 같은 나무를 그리라고 했다.

아주 익숙하게도 A가 한참 미완성인 그림을 가지고 나와서 내민다. '망했어요.' 그렇지, 망했어요도 A의 아주 단골 멘트다. '수채화는 덧칠이 가능해. 다시 살려봐.' 자리로 돌아간 A가 잠시 끄적거리나 싶더니 5분도 안돼 아까와 별 차이 없는 그림을 들고 다시 온다. 짜증과 무기력이 가득한 얼굴이다. '어떻게 살려요?'
나는 냉정했다. 사실 6시간째 수업이라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뾰족한 말이 나왔다.
'A야, 네 그림이잖아. 선생님한테 어떻게 살리냐고 물으면 어떡해? 네가 정말 그림을 살리려는 마음이 있니? 그냥 안하고 싶은건 아니야?' 그래도 어린 아이인 A는 날카로운 나의 말에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이번엔 꽤 오래 붓질을 하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방금 너무 뾰족했음에 아차 싶었던 나는 옆으로 가서 과한 칭찬을 마구 날려줬다. 이것봐. 우와 그림이 점점 멋있어지는걸! 얘들아, A그림이 아주 멋지게 살아나고 있어. 채찍 후 달콤한 당근으로 A는 기분이 좋아 훨훨 날았다. 충분한 시간이 지나고 A가 그림을 제출했을 때 나는 A의 그림을 칠판에 게시했다. 그리고 초콜릿급 당도의 당근을 주었다. 무기력이 심한 A가 귀찮음을 제쳐놓고 이만큼의 결과를 보여줬을 땐 그만큼의 칭찬을 쏟아 부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여러분, A가 중간에 포기했다면 이런 멋진 그림이 나오지 못했을거에요. 끝까지 그림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A를 칭찬하고 싶습니다.'
반 아이들 전체 앞에서의 칭찬이라니, A는 싱글벙글해져서 하교했다.


한창 A를 지도하기 힘들때, A의 1학년 담임선생님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1학년때도 비슷한 모습이었댔다. 지금과 다른점이 있다면 '우리 엄마가~'를 말 시작마다 붙였댄다. 우리 엄마가 이거 안해도 된댔어요, 우리 엄마가 공부 열심히 할 필요 없대요. 그렇지, 애는 잘못이 없지. 부모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흡수해 자랐겠지 싶어 A를 삐딱하게 바라본 내가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가끔 교사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생각한다. A 부모님이 가르쳐 주신 삶의 태도가 그럴진대, 내가 그걸 바꾸려고 채찍질 해도 되나. 아님 부모님의 가르침을 존중하고 그걸 바꾸지 않는 범위내에서만, 그럼 별로 애쓰지 않아도 되나.
(대개의 채찍질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게 마련이니.) 모르겠다. 하지만 어제는 은은한 성취감이 나를 감쌌다. 그만하겠다는 아이를 몇번이나 돌려보내, 멋지게 완성된 그림을 자랑하고 싶을 뿐이다. 왼쪽이 A의 그림, 그리고 정말 부끄럽지만 오른쪽은 내가;;;;; 시범차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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