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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드립을 들은 날

2022년 4월의 일기

by Applepie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담임이다. 오늘 교직 생활 처음으로 아이의 입에서 '어쩌라고 니에미'라는 말이 나오는 걸 들었다. 물론 내게 한 말은 아니지만 같은 반 친구에게 한 말이다. 두 아이를 불러놓고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고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게 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있다. 생일 축하 노래를 '왜태어났니~'로 바꿔 부른 경험은 다들 있을 것이다. 이것의 요즘 초딩들 버전은,(아니, 전국의 초딩들이 이렇게 부른다고 믿고 싶지 않다. 그냥 우리 학교 버전이길) '왜 태어났니, 왜태어났니. 어차피 x질걸 왜 태어났니.'라고 한다. 이걸 내 귀로 듣고 귀가 더러워지는걸 넘어 영혼이 더러워지는 기분이었다. 가만히 서서 구정물을 뒤집어 쓴 기분. 정신 차려보니 점심 시간이더라. 하루 중 단연 제일 좋아하고 기다리는 시간, 일요일 밤 출근하기 싫을 때면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다음날의 식단표를 체크하기도 하는, 하루 한 번 합법적으로 '남이 해준 밥' 을 먹는 고귀한 시간에 나는 멍하니 있었다. 밥이 모래알 같이 느껴졌다. 온 몸에 힘이 쭉 빠지고 마음에도 힘이 없었다. 그냥 아이들 얼굴을 그만 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밥을 대충 먹고 교실로 올라왔다. 기초학습 보충지도가 있는 날인데 해당 학생이 안 보인다. 이것도 익숙하다. 몇 번이고 오늘은 공부하는 날이다 일러뒀는데. 그래, 네가 하기 싫다는데 어쩌겠니. 나도 모르겠다. 네가 만들어준 휴식시간이니 고맙게 즐길게. 생각했다.


난 이제 학생의 말에 눈물 흘릴 만큼 여릿여릿한 신규 교사가 아니다. 오늘 들은 저 말은, 저걸로 비롯한 내 마음의 상처와 환멸은 한달쯤 지나면 기억도 잘 안날지 모른다. 그런데 이 감정은 어째야하나. '뭘 해야할지 모르겠는' 이 감정 말이다. 어른이 쓰기에도 민망한 말을 일상으로 쓰고 나와의 약속을 틈만 나면 어기려고 하는 아이들을 내가 그림책 몇 권 읽어준다고 바꿀 수 있을까. 하루 5~6시간 남짓의 수업이 저 아이들의 영혼을 다시 맑게 해줄 수 있을까. 아닐 것 같은데, 내가 별로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데. 생각하다 보니 이건 무력감이라고 칭하는게 맞겠다. 저 아이들을 저렇게 만든건 누구일까. 내가 동네의 거친 형들을, 유해한 유튜버들을 도저히 이길 수 없겠다는 생각만 깊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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