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신청서를 제출하며
2020년 11월의 이야기
그저께 드디어 복직신청서를 제출했다. 교무실 책상에 앉아 휴직기간을 세어보는데 출산휴가 포함 따악 만 3년을 채웠더라. 3년이라니, 처음부터 오래 쉬어야겠단 생각은 없었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대응하다 보니 이리됐을 뿐이다. 임신 중기부터 조산기가 있어서 휴직을 당겨 썼고 출산 후엔 양가 부모님 도움을 받기가 여의치 않으니 애가 어린이집 적응하고 나면 복직해야지 했던 게 지난 9월. 그런데 원래 다니던 학교에 자리가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럼 난 광주 전역으로 튕길 수 있는데 그 부담을 지기는 힘들었다. 이제 난 세 살짜리 아이가 있고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라도 튀어와야 하는 입장이 아니던가.
많은 사람들은 휴직기간을 '쉰다'라고 표현한다. 심지어 육아휴직의 당사자도 많이들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나는 한순간도 쉬는 기분이 들질 않았다. 더 솔직히 말하면 백 미터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자주 바빴고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기도 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고도 그랬다. 등원이라는 건 또 왜 이렇게 벅찬지. 어린이집 가는 것을 싫어하는 애를 억지로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챙겨서 보내는 일이 나한텐 참 힘들더라. 그래도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야 내가 유일한 숨통인 발레수업을 갈 수 있으니 필사적으로 보냈다. 중간에 코로나로 3주씩 가정 보육할 땐 정말 하루하루를 버텼다. 육아는 그렇다 치고 집안일은 뭐 완벽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가족들의 저녁 반찬을 만든 적은 한 달에 몇 번 손에 꼽을 정도고 집은 늘 엉망이었다. 냉장고에는 양가에서 받아온 오래된 반찬과 재료들이 시들시들, 곰팡이를 피우지나 않음 다행인 정도. 그럼에도 계속 바빴다니 내가 봐도 헛웃음이 난다.
어찌어찌 체중은 완벽히 돌아왔으나 생기가 없어 보였다. 눈가 주름은 왜 이렇게 빠르게 생기는지. 난 자주 아이가 없을 시절의 내가 그리웠다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아이에게 못할 짓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사랑스러운 아이가 있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러나 이제야 고백한다. 나의 휴직기간은 쉼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3년 휴직을 다 쓰는 것은 부의 상징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부의 상징이든 뭐든(그것도 아니지만) 나에겐 그다지 행운이 아니었음을 밝힌다. 나는 아이 존재 하나로 내 삶이 충만해지는 그런 밝고 따뜻한 엄마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이제야 인정한다. '존재 자체가 예술', '예뻐서 보고만 있어도 넘어가겠다.'는 친구의 인스타를 보며 불편하고 뾰족한 마음이 들기도 했음을, 힘든 하루를 보낸 후 '아기 미소 한 번에 마음이 스르르 풀리는' 매직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음을, 나는 아주 울퉁불퉁한 엄마라는 것을 이제야 완전히 받아들인다.
4개월쯤 후엔 아마 지금 이런 글을 쓰는 것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아니 아주 높은 확률로 그럴 것 같다. 워킹맘은 더 숨이 턱턱 막힐 테지, 너무 바빠서 욕을 달고 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육아와 집안일만이 온전한 내 일이 아니게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직장에 나가더라도 그곳이 주는 활기가 있고 동료들을 매일 볼 수 있으니까. 또 달에 한 번씩 월급이라는 보상도 주고 매일 점심밥도 남이 차려주니까. 대책 없더라도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게 나쁠 것 같진 않다. 끌려서 어쩔 수 없이 복직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뭐. 과거와 오늘과 미래의 나를 응원한다. 그리고 울퉁불퉁한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한다.